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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Oct 25. 2019

최악의 미세 먼지를 줄이는 가장 빠른 길

절약, 그 낭만적 철학 -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않습니다.

태백산맥도 이길 수 없는 미세먼지


산신령이라든가, 옥황상제라든가, 옛날옛적 미신을 졸업한 지 오래다. 그런데 강원도 동해시에 살면서 어마어마하게 높이 솟은 태백산맥을 마주할 때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겹겹이 쌓인 모습이 장엄하기도 한데다가, 더 든든한 건 우월한 기후 생성자이기 때문이다. 동쪽 바다와 태백산맥의 환상적인 협동 덕분에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더군다나 미세먼지로 대한민국이 끙끙 앓을 때, 태백산맥 너머 바닷가 동네는 그나마 편히 숨 쉴 수 있다.


이러니 산신령님과 선녀님을 졸업한 서른 한 살 애 엄마도 태백산맥'님'을 보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막대한 양의 중국발 미세먼지에는 태백산맥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미세먼지에 흐려진 태백산맥을 보면, 창문을 닫아 놓아도 숨쉬기 두렵다.


미세먼지 수치가 300을 넘어서 '외출자제' 경고를 보노라면, 영화 <인터스텔라>의 모래 폭풍이 곧 우리의 현실이 돼 버릴 듯하다. 태백산맥도 막지 못하는 미세먼지를 보면, 환경파괴는 이미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건 아닌가 두렵다. 


미세먼지 '매우 나쁨'을 기록한 날. 태백산맥 한 줄기가 통째로 사라졌다. (왼) 평소 두타산의 모습 (오)


영화에서는 늘 영웅이 등장했다. 위험하고 다급한 상황일 때면, 미국을 중심으로 뛰어난 과학자, 리더십있는 정치인이 빠밤!하고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줘 왔다. 나 같은 일반 시민들은 위기 상황에서 벌벌 떨고만 있으면, 알아서 다 해줬다. 

현실에서도 누가 다 해 줄 알았다. 상상해봤다. UN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대응하는 강력한 규제가 동원되는 거다. 예를들어 최소한의 교통 수단과 공장 생산만을 허락하고, 탄소배출량을 일시 정지할 특단의 조치라도 나올 줄 알았다.

심각한 기후 변화 앞에서 전인류가 합심할만도 한데, 사람들은 아마존강을 개발하는 브라질 대통령만 비난했다. 동네 뒷동산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상가와 아파트를 올리는 데 거리낌 없었다. 넓고 긴 고속도로, 고속열차가 자기 지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국민청원을 이용하기도 했다.

자동차와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탄소배출량과 경제성장은 연결되어 있었다. 경제력은 안보와도 직결되어 있으니, 어느 누구하나 나서기 어려웠다. 영웅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영웅은 나타날 수 없었다.


원인은 하나,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 그리고 '대량 폐기'


미세먼지뿐일까. 혹한, 혹서, 때로는 이례적인 가을 태풍들까지. 이 모든건 화석 연료를 태움으로써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화석 연료는 먼 중국 공장 이야기만은 아니다. 당장 내가 쓰고 있는 노트북은 화석 연료를 태운 전기가 있어야 쓸 수 있다. 또한 이 노트북을 만든 중국 공장에서도 전기를 사용했을 것이며, 배와 트럭를 타고 우리집으로 유통되는 과정까지 석유를 사용했을 것이다.


우리가 돈을 주고 교환하는 모든 재화(가령 난방, 옷, 장난감 등)에는 '화석연료'가 빠질 일이 거의 없다. 생활의 편리함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사치품에 길들여진 우리로 인한 기후변화는 돈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 말은 즉, 소비를 줄임으로써 화석연료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후 변화를 더디게 하고, 미세먼지를 줄이는 가장 빠른 길은 '사지 않는 일'이다. 


살까 말까 할 때 사지 않는 일. 환경을 지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어설픈 환경 지킴이 백 명을 기다린다


1년 내내 방심할 수 없는 미세먼지는 물론, 쓰레기 대란과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위기감을 느꼈다. 세 번의 가을 태풍에 자주 가던 빵가게가 물에 잠긴 모습을 보았다. 참담했다. 나는 작은 개인이었기에 무기력하게 견뎌야 하는 걸까.


아니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살까 말까 망설일 때, 사지 않는 것. 덜 쓰는 일, 절약은 비교적 쉬우면서도 환경을 살리는 본질적인 일이다. 


대량 소비에 가려져있던 '대량 생산'과 '대량 폐기'를 기억해야 한다. 사지 않는다면 생산과 폐기에서 발생할 탄소 배출물을 줄일 수 있다. 덜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점점 과잉 소비에 위기감을 느낄 때, 표를 의식한 친환경법들도 하나 둘 고개를 들 것이다. 쇼핑이야 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힘이 센 투표다.


역사는 인류를 위해 흘러가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하나 둘 움직여야 한다. 그저 시대 흐름에 몸을 맡겨 버리다보면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나를, 당신을 역사와 정의가 챙겨주지 않는다. 역사가 책임져주지 않는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역시 몸을 움직여 실천하는 일이다.


우리는 완벽한 환경 운동가는 될 수 없지만, 누구나 어설픈 환경 지킴이는 될 수 있다. 마트에서 할로윈 장식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손에 들었던 잭 오 랜턴을 내려놓기부터 해보자. 살까 말까 망설여질 때 물건을 내려놓기. 어렵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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