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처 생활이 남겨준두 번째답
지금 당신에게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 의원과의 인터뷰를 잡으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당신은 이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당장 어떤 행동을 먼저 할 것인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은 '일단 연락을 시도해보기'이다. 이메일이든 전화든 바로 인터뷰 요청을 해보는 것이다. 내가 말한 답은 거창한 방법도 아니고 인터뷰 성공이 100% 보장된 방법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시도해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무작정 미국의 의원들한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봤다. 한국과 일본의 대미 로비 실태를 비교해보는 아이템을 취재하면서 내가 이메일로 인터뷰 요청을 보냈던 사람들만 약 53명. 이 중 2/3 가량은 답변조차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성사된 인터뷰도 8건에 달했다. 연락을 취한 횟수에 비해 성공시킨 비율은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건의 인터뷰를 잡는 과정에서 얻은 것은 훨씬 컸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에서 해외 소식을 취재하기에는 여러 환경이 매우 제한된 상황이다. 무작정 해외 출장을 갈 수도 없었다. 출국할 때 자가격리 2주, 입국할 때 자가격리 2주를 보내고 나면 꼬박 한 달이라는 시간이 그냥 흘러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팀에서 인터뷰를 하고자 했던 대상은 주로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 교육부 관계자들, 언론인 등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을 품은 채로 우선 여러 명의 의원들에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 메일을 보낼 때는 MBC가 한국에서 어떤 언론사인지, 우리 팀은 어떤 이슈를 취재하고 있으며 왜 인터뷰를 요청하는지에 대해 이메일을 작성해서 보냈다. 몇 차례 문을 두들겼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메일을 보낼수록 점차 대답 없는 벽에다 대고 나 혼자 하염없이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받는 수많은 메일들 중 내 이메일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터뷰 요청]이라고 말머리를 달아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정말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인지 가뭄에 콩 나듯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취재가 계속해서 진행되면서 인터뷰를 잡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도 이어졌다.
시도한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었다. 우선, 한인단체를 통해 인터뷰하고자 하는 의원과 연결을 부탁하는 것이다. 미국 메릴랜드 주의회에서 위안부와 관련된 내용의 결의안을 발의했던 두 의원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인터뷰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보좌관 또는 의원실의 스케줄러를 공략하는 것이다. 처음에 의원의 공식 이메일 주소를 찾고 나면 무조건 의원의 메일 주소로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보좌관 또는 스케줄러가 이메일을 확인하고 이 내용을 의원에게 보고해서 인터뷰 일정을 잡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경우가 많았다. 뉴욕 주의회 의원과 진행한 인터뷰가 여기에 해당되는 사례였다. 이후 의원의 이메일 회신이 없는 경우는 보좌진의 이메일로 팔로우업을 해 답변을 받기도 했다. 마지막 방법은 일단 전화를 해보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답변은 오지 않자 우리가 시도해본 방법이다. 놀랍게도 이 마지막 방법을 통해 일본을 위해 워싱턴에서 활동 중인 로비스트와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기자의 중요한 능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한국과 일본의 대미 로비 실태에 대한 취재 과정, 그리고 인터뷰를 시도해보는 과정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을 찾아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능력은 2가지다. 첫 번째는 강단 있는 태도, 두 번째는 사람을 대하는 능력이다.
대미 로비 취재 과정에 있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까지 필요했던 능력은 강단 있는 태도이다. 처음에는 '일단 해보자'라는 마인드가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되든 안 되는 우선 부딪혀 보는 것이 나에게는 후회가 남지 않는 선택이었다. 이번 아이템에서 '일단 시도해 보자'하고 시작한 것이 8개의 인터뷰라는 결과물로 내 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성사시킨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필요했던 능력은 사람을 대하는 능력이다. 인터뷰이가 좀 더 편안하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지금까지 내가 학보사, 세미나 등의 활동을 하면서 진행했던 인터뷰는 대부분 질문지에 의존했다. 게임에서 퀘스트를 통과하며 나아가듯이 첫 번째 질문이 끝나면 두 번째 질문, 또 그다음 질문을 그냥 이어나갔다. 질문지에 있는 질문들을 모두 하고 나면 인터뷰는 끝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취재에서 진행한 인터뷰는 달랐다.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은 미리 구상을 해놓고 인터뷰를 하면서는 마치 지인과 대화를 하듯이 하려고 했다. 실제로 선배들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기도 하고 내가 직접 질문을 던지기도 하면서 인터뷰하는 법을 배웠다. 질문지만 바라보고 인터뷰를 했던 예전과는 달리 우선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이 하는 대답에서 또 궁금한 이야기를 그때그때 물어봤다. 또, 아주 중요한 정보가 되지 않더라도 좀 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이 생길 수 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자는 글을 쓰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또 사람을 대하는 직업인 것 같아"
기자에 대해 들었던 가장 인상 깊었던 말 중 하나다. 보통 기자라고 하면 글을 잘 쓰는 사람을 쉽게 떠올리곤 한다. 취재한 내용을 글로 잘 풀어내는 것은 기자의 중요한 자질일 것이다. 그러나 리서처 일을 하면서 글을 잘 쓰는 것만이 기자의 자질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기자의 중요한 능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다시 묻는다면 나는 "강단 있는 태도,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