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좋아하던 책방이 있었다. 상수와 합정 사이 이층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책방이었다. 조금 특별한 것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님이 직접 하시는 책방이라는 사실일 테다. 코로나 시절, 어쩔 수 없이 며칠째 집에 콕 박혀있던 날이었다. 평소처럼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가볍게 운동을 하려고 티비를 틀었는데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그다지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유명하지 않지도 않은 딱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영화였다. 재미있다고 소문난 영화도 아니었는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운동복을 입은 채 소파에 앉아 그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배우님이 하는 연기를 제대로 보게 되었다. 주연도 조연도 아닌 거의 조조조연으로 나오는 영화였지만, 영화에 나오는 분량이 길어야 오 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배우님의 존재가 머릿속에 강렬하게 새겨졌다. 그렇게 배우님이 궁금해진 나는 검색을 해보다가 실제로 책방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우면 연예인인데, 연예인이 책방을 운영한다니. 책방을 운영하는 연예인은 처음 보는데. 직접 그의 손길이 묻은 책방이 궁금해져 책방을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 나올 이야기는 책방을 처음 간 날의 이야기이다.
책방 사장님은 두 명. 배우님과 배우님의 실제 절친이었다. 운이 좋으면 배우님을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예쁜 원피스에 하얀 구두를 신고 책방을 찾았다. 책방에 들어가자마자 알 수 없는 향이 확 퍼졌다.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무거운 따뜻함이 느껴지는 향. 앉아계신 직원분께 이 향이 무엇인지 여쭤보았다. 디퓨져인가 싶었는데 인센스 스틱을 피워낸 향이라고 하셨다. 향 이름은 레인 포레스트. 책방 분위기와 어울리는 이름이 참 예뻤다. 책방에서만 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따뜻한 향이 그리도 좋았다. 책방에서 처음 맡아본 향이라 그런지 더욱이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짙은 향 아래에는 수많은 책들이 묵묵히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를 시키고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책이었다. 한참 동안 책을 읽다가 뒤를 돌아보니 책방 안에 있는 손님이 나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배우님과 함께 책방을 운영하는 친구분이 오셨다.
그제서야 창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비가 오면 안 되는데. 나 우산 안 가져왔는데. 누가 봐도 빈손으로 온 듯한 멋쩍은 손을 보고는 사장님이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우산 없으세요?"
"네.."
내 작은 대답을 듣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시고는 책방 안에 있는 창고에 들어가셨다. 무언가를 열심히 찾으시더니 하얀색 땡땡이 무늬가 그려져 있는 길다란 초록색 우산을 꺼내 오셨다. 우산을 빌려줄 테니 쓰고 가라고 하셨다. 우산을 건네받으며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무사히 집에 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다시금 빗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우산을 챙겨 나가야지 싶어 집 안에 있는 우산꽂이 앞으로 향했다. 어제 책방에서 빌려준 우산이 눈에 띄었다. 조심스럽게 우산을 꺼내들자 책방에서 맡았던 향이 코끝 깊숙이 들어왔다. 우산에 책방의 향기가 깊게 배어있는 듯했다. 그리고 서둘러 다른 우산을 집어 들었다. 빗물에 그 향기가 지워지지 않도록.
지금은 책방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날 처음으로 책방을 찾은 이후로 거의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거의 매일 책방을 다녔다. 덕분에 책 읽는 것에 재미를 붙였고,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쓰는 취미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책방을 다시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지만, 책방에서의 향만큼은 아주 선명히 남아있다. 비가 잔뜩 오는 날 숲속에서 날 법한 상쾌한 향. 비가 막 그치고 빗물을 머금은 풀잎에서 느껴지는 싱그러운 향. 그리고 비 오는 날 선뜻 건네준 우산에서 나던 따스한 향. 내가 그 향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따스한 향기만큼이나 따뜻했던 마음의 온기 때문일 테다. 나는 오늘도 내가 사랑하는 레인 포레스트 향을 떠올리며 책방에서의 하루를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