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죽음을 연주하는 그대를 위하여
소설같은 에세이
처음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몇 가지의 의문이 들었다. ‘나’는 누구고, ‘나’가 있는 ‘여기’는 대체 어디이며, ‘나’는 왜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 앞뒤 설명 없이 다짜고짜 계속 죽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화자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책을 좀 더 읽어보자고 마음먹고 페이지를 넘기다가, 문득 이 글이 소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웠다. 만약 소설이 아닌 누군가의 실재하는 이야기라면 어쩌지.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책의 앞표지에 당당하게 소설이라고 써져있는 글자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는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한 문장이 등장하고야 말았다. 이는 읽자마자 내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이제야 고백건대,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속에서 소설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화자의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이 맞는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 책의 내용들이 저자가 직접 겪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시에 내 마음도 함께 찢어졌다. 이 책에 나온 감정들을 모두 실제로 느꼈던 걸까. 그렇다면 어떡하지. 지금 이 사람은 괜찮은건가.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아픔은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 소설같은 에세이, 에세이 같은 소설. 이 사실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을지 모를 책의 귀퉁이를 끝까지 잡고 있게 하는 힘이 되주었다.
죽음에 대하여
어렸을 때는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나와 멀리 동떨어져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지금은 때때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죽기 바로 직전에는 무슨 생각이 들지, 죽을 때 많이 아플지, 죽은 이후에는 과연 어디로 갈지. 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나는 아직 사는것이 좋다.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있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이렇게 안일한 나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나에게 경고를 주었다고 말할수도 있겠다. 죽음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과,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두 사람 중 죽음이 닥쳤을 때 누가 덜 고통스러울까. 이제는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조금씩 준비해야겠다. 그 준비가 바로 지금을 잘 사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반복되는 고통
우리는 어쩌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타인이 나에게 털어놓은 고민거리와 힘든 속사정을 경청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만 듣고 그것을 백퍼센트 이해하기는 어렵다. 잠시 타인의 아픔에 공감을 해줄수는 있을지언정, 그 고통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다. 적절한 리액션을 보여주고, 괜찮은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 대신 묵묵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자연스레 그렇게 한 것도 같다. 화자가 자신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조용히 들어주는 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에, 나는 계속하여 그 아픔을, 그 고통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는 것이 화자의 고통을 덜어내는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자동 피아노처럼 반복되는 그녀의 고통이 끝날때까지 반복해서 들어주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살아야겠다
“죽고싶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 중 하나이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수없이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죽고 싶다는 말로 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살고싶다고 소리치는,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누구보다 살고 싶으니 제발 내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붙잡아달라고 말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그녀는 입 밖으로 말을 내뱉을 때마다 죽고싶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것은 그녀가 말한 것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아닌, 이미 그녀를 덮어버린 ‘죽음’이 이야기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그녀가 정말로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간절히 믿고싶다. 살아있는 한 죽음은 피할 수 없을 테지만, 그 순간을 앞당기지는 않았으면 한다.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는 순간이 찾아와도, 그 언젠가가 부디 지금은 아니길 바란다. 그래서 당분간은 계속 숨을 쉬어주었으면 한다. 그 당분간이 지나고, 지나고, 또 지나도 계속 그 숨을 내뱉어 주었으면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간절히 살아만 주었으면 한다. 그러니 나 또한 오늘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