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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언 Dec 24. 2019

인사하지 말아요, 제발

6시가 되면 사라집니다

우리 회사에는 야근, 회식, 워크숍 통칭 3無 문화가 존재하는데 또 한 가지 無를 자랑하는 놀라운 문화가 있습니다. 어쩌면 처음 마주쳤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3無의 존재보다 더 놀라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퇴근 인사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에서 퇴근길에 인사도 없이 그냥 간다고? 지극히 당연해서 있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그런 것이 없을 때 우리는 혼란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첫날 느꼈던 당혹스러움이 아직도 종종 생각나곤 하는 걸 보면요.


그 날은 입사 후 첫날이기도 했고 하고 우리 회사는 3無를 자랑하는 회사이므로 보무도 당당하게 6시 칼퇴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정말 6시 알람이 땡(머릿속에서) 울리자마자 하루를 마무리하는 업무보고가 쏟아지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안심하고 나도 발맞춰 일어서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이 사람들, 퇴근하는 거 맞나?'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 심지어 오전에 꽤나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아니 불과 두어 시간 전에 벌써 출출하다 이야기도 나누었던 우리 팀원들마저도 아무런 말이 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밥 먹으러 가는 건가? 아니, 밥 먹으러 가도 말은 하고 가지 않나? 근데 가방은 가져가네?'

약 10분을 자리에서 미적미적하다가 결국은 소심하게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고 문을 나서는데 어찌나 소름 돋게 어색하던지요.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다들 또 그냥 가네?'


결국 그 어색한 인사를 딱 3일 하고 난 후에 더는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그 날 바로 물어보면 될 것을 왜 미적였는지. 퇴근할 때 인사 안 해요?라는 질문이 너무 말도 안 되어서 일까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데일리언들입니다.
아, 모르셨어요? 말씀 안 드렸구나.
저희는 퇴근할 때 인사 안 해요.
그냥 편하게 퇴근하시면 돼요


'헉. 진짜 신문화!'

퇴근할 때 인사를 하다 보면 먼저 가는 사람이 눈치 보게 되고 괜히 미안하고 서로 불편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문화라는데 다들 이렇게나 잘 적응하다니 데일 리언은 참 시대의 흐름에 발을 잘 맞추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저는 한 동안 너무 어색했습니다. 그 취지에는 적극 공감을 하면서도 다들 인사 한 마디 없이 쓰윽 사라지는 것도 어색하고 동료들이 남아있는데 아무 말 없이 가방만 들고 사라져야 하는 나도 어색하고. 뭔가 오늘의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퇴근하는 찜찜한 기분이랄까.


그러나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하다 보니까 또 세상 편할 수가 없네요.


모르고 보면 정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인사 없이 나가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남의 장을 이루며 다들 화기애애 웃음이 넘치니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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