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nymous Aug 16. 2017

널브러짐

소파에 가만히 앉아 권태롭게 TV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휴식’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필요한 것은 안다. 가끔씩은 아무런 생각 없이 나의 육신을 편히 쉬게 해주어야 함을.


그런데 쉽게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도태되는 것’이 두려워진다. 아마도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해서 만들고, 그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야만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고 자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사업을 위해 끊임없이 자료 수집을 한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불안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니, 뭔가 잘못되긴 한 것 같다. 왜 그렇게 채우는 데만 열을 올리게 된 건지 모르겠다. 분명 비움도 필요한데 말이다.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위해 그리 치열하게 채워왔는지, 꿈과 한결 가까워졌는지 아니라면, 비워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안타깝게도 우리는 치열하게만 살다가, 정작 왜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를 잊어버리곤 한다. ‘일단 뭐든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식의 다짐들은 휘발성이 크다. 그러니까 내 마음을 붕 뜨지 않게 하기 위해선 적당히 널브러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단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생각을 멈춰 보는 것이다. 그러다 그것마저도 지겨워질 때쯤, 저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 침전물들을 깔끔하게 게워내자. 그러면 당장 뭘 해야 할지 가닥이라도 잡힐 것만 같다. 치열해지는 건 그때 부터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