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박완서 저)』의 한 문장을 삶으로 만나다.
"그건 우리 모두가 그들의 딱한 사정을, 그들의 찾아 헤맴을 못 본 척 했기 때문이 아닐까. 수지의 이기주의, 안일주의가 오목이를 못 본 척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 팽배한 이기하는 마음, 무사안일하려는 마음이 그들을 못본 척 했기 때문이 아닐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파의 위력도 그런 못 본 척까지 미치진 못했다. 거기에 문학이 설 자리가 아직 남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오목이가 너무 불쌍해서 상심한 독자가 있다면, 오목이를 우리 모두가 그동안 좀 더 잘 살기 위해, 좀 더 안일하기 위해 짐짓 외면하고 망각한 것들의 편린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中, 박완서 지음]
문학이 여전히 설 자리가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이 기계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숫자로, 기술로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어떠한 면모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낸다.
작년인가, 학회에서 재미있는 연구를 발견했다. 직장에서의 감정, 특히 슬픔에 관한 연구였다. 이 연구가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세무서에, 보험회사에, 학교에, 중소기업에, 빵집에, 교회에, 대기업에, 공공기관에, 그 어딘가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나와 관계한 누군가. 바로 그들의 감정에 대한 연구였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서 직장에서의 노동을 경제가치라 불리는 숫자로 점수 매겨왔다. 그러나 그 노동 안에는 숫자가 닿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삶이 역동적으로 오가고 있었다. 슬픔에 관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직장에서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을 느끼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상고하는 일은 그 중심에 '사람'이 있음을 인식하는데서 시작한다. 우리는 경제가치를 생산하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므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연구의 본 의도는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이러한 연구들이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일종의 외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외침의 동지를 문학에서 만난다.
우리가 외면해 온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소박하고 진실하고 단순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려온 박완서 선생님의 글에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배운다. 소설 속 오목이를 통해 보여지는 가장 소외된 자리, 지금 우리 옆에 자리한 오목이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