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8첩의 그림으로 담아주세요
얼마전 회사 근처에 있는 전시회를 다녀왔다.
야근이 잦은 요즈음, 기분과 생각을 전환하는 시간을 갈망했다. 마침 금요일 업무를 일찍 마치고 귀가해도 좋다는 팀장님의 허락을 맡아, 근처 전시회를 찾게 된 것이었다.
방문한 전시회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조선,병풍의나라2‘었다. 조선시대 여러 병풍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다.
여러 작품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바로 ‘문관평생도’였다.
평생도는 조선시대 사대부가 일생을 통해 겪는 부귀영화 순간을 그린 것으로, 조선시대 작품의 한 유형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삶, 성공한 삶을 엿볼 수 있다.
문관평생도는 조선시대 문관의 인생을 8첩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출세하고, 자식을 낳고, 행복을 누리고, 명예를 얻는 과정을 시간 순으로 담았다.
이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서 생각했다.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내 인생을 8첩의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순간을 담을 수 있을까.
무미건조한 회전목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요즘이었기에, 인생을 가볍게라도 고찰하는 이 시간이 반갑기만 했다.
내 인생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인생을 그린다면.
세상에 태어나다
만 1살이 되어 주도적으로 선택한 첫 번째 순간의 장면이다. 나는 돌잔치의 돌잡이에서 연필을 잡았다고 한다. 연필을 잡은 어린 아기의 내 모습을 담을 테다.
학교를 졸업하다
파란 학사모, 파란 가운을 두르고 꽃다발을 들고 있다. 기나긴 학문과정을 마치고 부모님과 학교 정문 앞에서 서있는 장면이다. 부모님은 홀로 서울로 상경하여 학문을 마친 딸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졸업식 날, 학교 근처 한정식 집을 예약하여 부모님께 식사를 대접해드렸다.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참 기억에 남는다. 졸업식 그 날의 장면을 담을 테다.
독립하다
부모의 품에서 독립하여,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담을 수 있을 테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한참을 이리저리 흔들렸던 그 시절의 알랑거림이 조금씩 여물어가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채색 평범한 직장인의 정체성을 요구하는 회사생활 속에서, 나의 고유한 색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요즘이다.
어쩌면 일에 파묻힌 단조로운 생활에 따분함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밟혀야 꿈틀대는 지렁이처럼, 요즘의 나는 나에 대해 알아가고자 발버둥치는 지렁이같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취미는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내 인생을 한바퀴 생각해보니, 내 인생은 아직 3첩의 그림뿐이었다. 아직 어떤 밑그림조차 의도되지 않은 5첩의 그림이 남은 셈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그린 인생은, 어쩌면 밋밋한 것이었으리라.
내가 그려야 할 5첩의 그림,
내게 주어진 도화지와 물감,
댜채로운 그림을 그리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