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시작한 나의 노빠꾸 연애에 켜진 빨간불
나와 나의 남자 친구는 장거리 연애 중이다.
서울과 대전, 광주와 부산, 춘천과 대구 정도의 장거리면 참 좋으련만, 우린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정말 찐 롱디 연애를 하고 있다. 원래 한국에서 시작된 연애인데, 그가 거처를 미국으로 옮기게 되면서 우리는 대륙과 대륙을 오가는 장거리 커플의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내가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특히나 나의 30대에 멀리 떨어져 연애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만약, 내가 조금이나마 나이가 어렸을 때 장거리 연애를 해야 했다면, 눈물, 콧물 빼면서 떠나야 하는 이를 붙잡고 안 놓았거나, 아니면 그냥 헤어지자고 마음먹으며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머리가 커진 30대에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구제불능처럼 제멋대로 붙잡지도, 일구어낸 소중한 관계를 쉽게 끊어내기도 싫었다. 이 사람이다 왠지 확신이 들었고, 나와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나는 선뜻 장거리 연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나이가 차서 시작한 장거리 연애는 노빠꾸다.
보고 싶고 못 견디겠으면 그가 있는 곳으로 간다.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후 우리는 기회가 되는대로 한국과 미국을 오갔다. 처음 내가 남자 친구를 보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땐 회사를 다니고 있던 터라서 남은 휴가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추석을 낀 2주 동안 미국에서 시간을 보냈다. 퇴사 이후엔 시간이 많아져서 조금 더 길게 미국에 머물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니는 남자 친구도 여름에 휴가를 내어서 한국에 다녀갔다.
생각해보면, 그냥 30대의 연애 자체가 노빠꾸인 것 같다.
첫 만남 때도 어쩐지 말이 잘 통해서 가볍게 커피 한 잔 하자던 것이 4차로 이어져 함께 힙합 뮤직바에서 함께 노래까지 부르다 헤어졌고, 그게 우리의 첫 데이트가 되었다. 내가 처음 남자 친구를 보러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와 나는 아예 미래를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만난 지 1년 남짓 시간이 지났을 때인데, 그와의 결혼이라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에 어차피 만나게 될 일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내 마음에 대해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더 적극적이고 저돌적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부모님을 부단히 설득했고 결국엔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외로운 장거리 연애를 금방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우리는 한국-미국을 3번 더 왕복해야 했고, 지금도 정확한 결혼 날짜를 잡지 못한 채 하염없이 장거리 연애만 이어가고 있다. 그 이유인즉슨, 나와 내 남자 친구는 결혼도 우리가 원한다고 원하는 때에 할 수 없는 국제커플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약속한 미국 여행 이후, 남자 친구와 나는 바로 피앙세 비자를 신청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미국 이민국의 비자 프로세스가 코로나로 인해서 굉장히 많이 지연되어버려서 원래 8-10개월 걸리는 피앙세 비자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깜깜무소식이다.
그래서 결혼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장거리 연애 중에 있다.
노빠꾸로 쭉쭉 달려가다 켜진 이 빨간불이 달갑지는 않다. 하지만, 이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마냥 헛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남자 친구나 나나 서로에 대해 모르던 세세한 부분까지도 알게 된 것도 있고, 같이 지내면서 함께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지 배운 점들도 많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 인내의 시간이 우리 둘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정말, 이 장거리 연애 꼭 어서 졸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