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멈춰버린 시계

by 매일살기

대학교 정문을 지날 때마다 나는 발바닥이 지면에 닿지 않고 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벚꽃 잎이 흐드러지게 휘날리는 캠퍼스는 눈이 시리도록 화사했지만, 마음속에는 정체 모를 먹구름이 늘 낮게 깔려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튀지 않았고, 사고를 치지도 않았으며, 성적은 그럭저럭 지방의 한 중위권 대학에 합격할 정도였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공간은 고등학교의 교실과는 차원이 다른 사회였다. 처음 보는 동기들, 선후배가 섞여 앉은 대형 강의실, 그리고 끊임없이 요구되는 ‘자기표현’. 그것들이 한의 목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자, 다음 조. 누가 발표할 차례인가?”


​교양 과목인 <현대 사회와 윤리> 시간이었다. 강의실에는 족히 100명은 넘는 눈동자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름이 불리는 순간, 심장이 늑골을 뚫고 나올 듯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손바닥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고, 준비해 온 발표 원고를 쥔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강단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칠판 앞의 단상은 마치 단두대처럼 느껴졌다. 마이크 앞에 섰을 때,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가 강의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저... 저는... 이번 주제인... ‘디지털 윤리’에 대해...”
​첫 문장을 뱉는 순간, 앞자리에 앉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저 평범한 시선이었을 텐데, 나에게는 비웃음이나 질책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까만 글씨들이 종이 위에서 춤을 추며 흩어졌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고, 목소리는 목구멍 안쪽으로 자꾸만 기어 들어갔다.
​“......”
​정적이 흘렀다. 1초가 1년처럼 느껴지는 지독한 침묵이었다. 교수님의 의아한 시선, 동기들의 웅성거림.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다. 사과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원고를 쥔 채로 강의실 뒷문을 향해 질주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침마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지만, 발길은 캠퍼스가 아닌 이름 모를 공원 벤치나 어두컴컴한 PC방으로 향했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멍하니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동년배들의 웃음소리가 칼날처럼 가슴을 후벼 팠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남들은 다 잘하는 저 평범한 것들이, 왜 나에게만 지옥 같을까.'
​입학한 지 딱 3개월이 되던 날, 부모님 몰래 자퇴서를 제출했다. 학과 사무실 조교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도망치듯 서류를 밀어 넣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기숙사 짐을 택배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시계는 그날, 그 강의실 뒷문을 열고 나오던 순간에 멈춰버렸다.


​저녁 무렵, 거실 소파에 앉아 자퇴 사실을 고백했을 때 아버지는 피우시던 담배를 재떨이에 짓눌러 끄셨다. 거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차마 아들을 보지 못한 채 부엌으로 들어가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냐?”
​아버지가 던진 낮은 목소리는 질문이라기보다 선고에 가까웠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감도, 계획도, 용기도 없었다. 그저 이 모든 상황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비겁한 열망만이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스무 살의 봄. 남들이 찬란한 미래를 설계할 때, 나는 자신이 판 깊은 구덩이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것이 10년이라는 긴 방황의 서막이 될 줄은,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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