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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Feb 01. 2024

가장 북적거리는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면접을 보고 일주일 뒤에 서점 첫 출근을 했다. 면접 때 이야기 하신 대로, 팀장님을 따라 바로 드림 코너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앞치마를 제공받았다. 내가 늘 책을 받았던 그곳의 반대편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서 있었다.

 선배님이 환영인사와 함께 건네준 푸른색 앞치마를 건네받는 순간, 이 옷을 거쳐갔던 사람들이 과연 어떤 기분으로 유니폼을 입고 벗었을까, 궁금해졌다.


근무복을 입고 출근한 첫날, 이 견고하고 낭만적인 물건들 곁에 서서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상상해 본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너무 강렬하게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by 패트릭 브링리

 


혹시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에세이를 읽어본 적 있으신지.  위의 문장은 첫 페이지에 그가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서 근무한 날을 묘사한 문장이다. 그날 오전, 나는 또 다른 한 명의 패트릭 브링리였다. 그의 문장처럼 나도 하나하나 고무줄에 묶여서 가지런히 잠들어 있는 책들을 품고 있는 서가 앞에 있었다.











 단순히 결제 버튼을 누르면 한 시간쯤 지나서 '주문하신 책이 준비되었습니다.'라고 메시지가 오던데, 메시지를 보내기 전까지 무슨 일들을 하는지 저 책은 어떤 경로로 모아지게 되는 건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 비밀(?)을 알 수 있다니 설렘 반, 긴장 반 흥분 가득이었다.



  그에 비해 나의 얼굴은 -_-... ㅇㅅㅇ을 왔다 갔다 했다. (추억의 이모티콘 죄송합니다. 표정 설명이 안되어서.) 첫인사를 하기 무섭게, 아침에 출근해서 하는 루틴을 인계받았다. 나의 사수는 브링리의 사수 아다처럼 딱딱해 보이진 않았지만, 모든 말을 건조하게 했다. 듣기 편했다. 너무 친절하거나 불친절하지도 않은 사무적인 말투가 일할 땐 듣기 편하다.

 나의 사수는 남자였고, 제법 근무를 오래 한 경력자다. 이번 달을 끝으로 해외로 나갈 일이 있어서 퇴사를 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 내가 들어온 듯했다. 아무튼 그는 목소리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고, 신입도 알기 쉽게, 모르는 포인트도 곧바로 바로잡아서 설명해 주는 재주가 있었다. 괜히 경력자는 아닌 것 같았다.


 


 첫날은 서가번호를 보는 법과 집책 하는 일을 배웠다. 새벽에 주문 들어온 책이나 당일 주문된 책을 모으는 일을 하는데, 그걸 '집책'이라고 한다고 했다. 주문된 도서 목록을 들고 여기저기 사수를 따라다니며 책을 골랐다.


 생각보다 서가번호 보는 법이 어려웠다. 그리고 막상 일을 하려고 하니까 책의 표지들이 왜 이렇게 다들 비슷비슷해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처음엔 이를 악물고 찾았다. 그러다가 하나를 찾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래서 초조한 마음에 동료에게 부탁했더니 바로 앞에 있는 책을 달랑달랑 들어 보이곤 나에게 씩. 웃으신 적도 많았다. 왜 처음 입사하면 그런 것 있지 않나, 경력자와 같이 있을 땐 문제가 없는데 나 혼자 가면 일이 잘 풀리지 않곤 하는 마법 같은 일들이.


혹은 뉴비의 저주(?) 같은 일들이.




 오후로 갈수록 잘 되던 영수증 프린터기마저도 내 손에 반응을 하지 않더니, 사수가 오자마자 그동안 먹고 있었던 종이를 데데데데덷. 뱉어내는 홀리한 경험을 했다. (혹시 저만 그런 거면 죄송합니다) 계속 그런 일들을 겪자 왠지 좌절모드가 되어 하루종일 죄송해요. 감사해요만 말하는 로봇이 되어 일했다.


 제법 서점을 자주 이용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리저리 헤매기 일쑤였다. 서점에 오게 되면 책을 보는 일에 집중해서인지 중요한 지도 보는 법은 신경 쓰지 않은 탓이다. 예를 들면 같은 A번이라도 평대에 있는 것들이 있었고 서가에 꽂혀있거나 서가 밑 서랍, 심지어 창고! 까지 들어가서 확인해야 하는 책들도 많았다. 매일 가던 곳만 갔던 곳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책과 일하는 사람에게는 책들이 잠들어있는 지도를 보는 법을 배우는 게 제일 중요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기도 하다. 어디든 목적지를 보기 전에 내비게이션을 보거나 표지판을 보고 이동하듯, 서점원도 다 알 수 없는 보물을 찾는 모험을 한다.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왔다 갔다 하며, 책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오늘 일하면서 느꼈던 건, 서비스 이용자일 때는 그저 바로 틱 누르면 띠용 하고 나오는 줄 알았던 책은 모두 서점원이 하나씩 찾아내고, 깨끗한 도서를 골라서 담고, 묶고, 보관하는 작업을 손수 하는 작업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이었다. 서점에서 그저 가만히 서서 바코드를 찍어주거나, 단순하게 묶여있는 책을 전달해주기만 하는 줄 알았던 서점원의 모습은 내가 편견을 가지고 본 모습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다.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일이더라도 가만히 서 있는 것 같다며 함부로 욕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제공자가 되어 계속 확인하고 집책하고 주문자 번호를 확인하고 라벨링 하고 보관하는 일까지 배우게 되었는데, 처음 다뤄보는 시스템에 당황하기도 여러 번. 보관 처리만 해야 할 것을 수령 처리해 버려 고객님께 집책 문자를 보내야 하는 일도 수두룩했다. 이래서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린다는 거였군. 왜 꼭 한 시간이어야 했던 걸까. 라며 기다리는 순간을 힘들어했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쉽다는 이유로 손가락 하나로 주문하고 취소하고, 주문했던 일들이 누군가에게 고객이라는 이유로 노동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아니었나. 생각했다. 모든 건 직접 겪어봐야 아는 일이라 참 부끄럽기도 하고 다시 각성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집책 하는 일을 배우고 난 뒤, 알바 4시간 만에 고객님을 직접 응대하며 수령처리까지 하는 법을 배웠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이만하면 일을 엄청 빨리 배우시는 편이라고 돌아가면서 위로를 해주었다. 뉴비는 이런 말에 괜히 힘이 나고 어깨가 으쓱해진다.(!!) 진짜가 아니더라도. 그 말 한마디에 힘이 나고, 다시 시작할 결심을 하게 된다.  집책 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지만, 사람보다야 책이 쉬웠는데. 고객응대라니,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마음 졸이며 일했는데, 괜히 따스해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코드를 찍고 주문하신 도서를 찾아주며 정신없는 알바 첫날을 마무리했다. 가장 북적이는 곳에서 어쩌면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오늘 내 하루에서 제일 치열한 순간을 막 끝내고 왔다. 너무 긴장한 탓에 바코드를 들고 경직된 자세로 서 있기도 했는데, (누군가 옆에서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ㅋㅋㅋ단단 씨 총 들고 계신 것 같아요' 하면서 웃기도 하셨다.) 하루종일 긴장한 탓에 몸이 피곤하다고 난리였다. 오늘 배운 것들을 수첩에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 걸음 이만 삼천보. 알바를 마치고 난 오늘 첫 소감.






하, ㅆ ㅣ.. 다리 터질ㄲㅓ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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