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볕이 한창일 무렵, 콩밭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낯익은 잎사귀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깻잎을 닮은 모양에 이름까지 비슷한 ‘깨풀’이다.
예전엔 바랭이가 콩밭의 주된 골칫거리였지만, 이젠 깨풀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작물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그 연둣빛 풀잎이 얼마나 성가신 존재인지, 땀 흘리는 농부들 사이에선 이미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깨풀은 보기와는 달리, 무척이나 집요한 생명력을 지녔다. 뿌리를 깊이 내리며 빠르게 자라나 콩의 수분과 양분을 빼앗아 버린다. 밀도가 높아지면 콩 수확량이 절반 이상 줄어든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농촌진흥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0년부터 최근까지 전국 콩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잡초 1순위가 바로 이 깨풀이라 하니, 그 ‘최강 잡초’라는 별명도 결코 과한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 깨풀이 ‘철현채’라는 이름으로 한방에서 귀하게 여겨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옛 어른들은 깨풀의 뿌리부터 줄기, 잎까지 모두를 약재로 썼다고 한다.
특히 혈당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어, 당뇨가 있는 이들은 진하게 달여 차처럼 마시며 건강을 다졌고, 체내의 열을 내려주는 성질 덕분에 코피나 토혈 같은 증상에도 약으로 쓰였다.
어릴 적 외갓집 마당 한쪽에서 자라던 풀을 외할머니가 쓱쓱 찧어 피부에 붙이시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거, 열 식히고 진정되는 풀이야” 하시던 그 말씀처럼, 깨풀은 이뇨 작용에도 뛰어나 부기나 요로 불편을 덜어주는 데도 쓰였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으로 습진이나 피부 트러블에도 곧잘 쓰였다.
하지만 그토록 쓰임새 많은 식물이 왜 이렇게 밭에선 천덕꾸러기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그 생명력의 집요함에 있다. 깨풀은 일반 잡초와 달리 발아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봄부터 가을까지, 시도 때도 없이 돋아나는 덕분에 초기에 방제를 해도 뒤이어 다시 자라난다.
게다가 일부 제초제에는 아예 잘 듣지도 않는다. 농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벤타존 제초제도 표준량으로는 절반밖에 방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두 배나 써야 70% 남짓 효과를 볼 수 있으니, 그 끈질김 앞에서 농민들의 한숨이 절로 깊어질 만하다.
더 놀라운 건 깨풀이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는 방식이다. 씨앗 끝에 ‘엘라이오솜’이라는 작은 영양 덩어리를 달고 있는데, 이걸 먹기 위해 개미들이 씨앗을 물어 집으로 옮기고는 그곳에 씨앗을 버리게 된다.
의도치 않게 개미가 깨풀의 농사를 대신 지어주는 셈이다. 이런 정교한 생존 전략이야말로 깨풀이 ‘밭을 장악한 식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럼에도 깨풀을 단지 해로운 잡초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땀 흘려 그 풀을 뽑아내는 손과, 그 풀을 약으로 달이는 손이 같은 세상에 존재한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같은 식물도 전혀 다른 가치를 갖게 되는 것. 깨풀은 그런 자연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존재다.
때로는 우리가 꺼리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무엇이 되기도 한다. 깨풀은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준다.
오늘도 콩밭에서 땀 흘리는 농부의 손길 아래, 어쩌면 한 줌의 지혜가 다시 피어오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잡초와 약초의 경계에서, 자연과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