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심으면 매해 다시 피어나는 나물, 섬바디의 이야기
울릉도의 봄은 조금 늦게 찾아온다. 해무가 걷히고 바람이 한결 부드러워질 즈음, 산자락 여기저기에서 연둣빛 잎이 고개를 내민다. 그 작은 잎들이 바로 섬바디다.
이름부터 낯설지만, 이 나물은 한 번 심어두면 매년 스스로 다시 돋아나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울릉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섬바디는 미나리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바람 세찬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여름이면 우산처럼 흩날리는 하얀 꽃을 피우고, 키는 사람 키를 훌쩍 넘길 만큼 자란다. 현지에서는 돼지가 그 뿌리를 좋아해 ‘돼지풀’이라 부르기도 하고, 생김새가 비슷한 나물 이름을 빌려 ‘울릉강활’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름은 달라도, 섬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식탁과 약상자를 채워준 익숙한 존재였다.
처음 섬바디를 맛보면 미나리처럼 청량하면서도 당귀처럼 은은한 쌉쌀함이 입안에 남는다. 이른 봄에 올라온 어린순은 날로 쌈을 싸 먹기 좋고, 데쳐서 무치면 향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여름엔 볶음이나 국거리로, 가을엔 말려 묵나물로 즐기기도 한다. 차로 우려내면 들꽃향이 은근히 배어 나오며, 긴 겨울밤에도 봄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섬바디의 매력은 식감이나 향만이 아니다. 예로부터 뿌리부터 잎까지 약이 된다고 전해졌다. 한의학에서는 섬바디 뿌리를 ‘울근(鬱根)’이라 부르며, 해열과 진통, 거담 작용이 있어 감기나 두통 완화에 사용해왔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몸속의 독소를 풀어주는 효능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며, 현대 의학의 시선에서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그 생명력이다. 보통 비슷한 식물들은 꽃을 피우고 나면 뿌리가 썩어 죽지만, 섬바디는 그렇지 않다. 꽃이 져도 뿌리는 여전히 살아 있고, 다음 해 더 싱그럽게 되살아난다.
그래서 울릉도에서는 “한 번 심으면 평생 먹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으면 특별한 관리 없이도 해마다 잎을 내어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섬바디가 단순한 나물이 아니라, 섬사람들의 삶 그 자체였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개척민들의 식탁을 지켜주던 구황식물에서, 지금은 건강을 위한 약초로 다시 사랑받기까지 — 섬바디는 늘 그렇게 조용히 사람 곁에서 자라왔다.
울릉도의 거친 바람과 바다의 염기를 견디며 살아온 이 나물은, 어쩌면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 혹독한 계절을 지나도 다시 피어나고, 뿌리 깊이 버텨내는 힘. 그 단단함이야말로 섬바디가 주는 진짜 보양 아닐까.
오늘은 봄의 향이 남은 섬바디 한 잎을 떠올려보자. 뿌리내린 자리에서 해마다 다시 일어나는 그 생명처럼, 우리도 다시 단단히 서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