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장식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천연 보약
울퉁불퉁 못생긴 겉모습과는 달리, 공간을 가득 채우는 모과는 그윽한 향기가 참 달콤해요. 저 역시 한동안은 그저 향기를 즐기는 천연 방향제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투박한 과일이 사실은 ‘천연 보약’이라 불릴 만큼 귀한 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모과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더군요.
9월 하순부터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는 가을의 정취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지친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는 다정한 힘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모과의 향을 오래 맡고 싶어 실온에 장기간 방치하곤 합니다. 하지만 식용으로 모과를 즐기고 싶다면, 이제는 냉장고 한쪽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것 같아요.
껍질이 단단해 보여서 아무 데나 두어도 괜찮을 것 같지만, 상온에 두면 수분이 금세 증발해 껍질이 쭈글쭈글해지고 영양도 줄어들거든요. 모과를 가장 신선하게 보관하는 법은 의외로 세심합니다.
깨끗이 씻어 물기를 닦아낸 뒤, 키친타월이나 종이로 하나씩 포근하게 감싸주세요. 그러고 나서 비닐봉지에 넣어 4°C 정도의 냉장고에 보관하면 한 달 넘게 그 향과 수분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모과는 사과처럼 다른 채소를 빨리 시들게 하는 가스를 내뿜으니 다른 식재료와는 조금 거리를 두어 보관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옛 성현들도 모과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보았습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을 펼쳐보면 모과가 위의 기운을 편안하게 하고, 특히 근육이 뭉치거나 경련이 일어나는 ‘전근’ 증상을 다스린다는 기록이 있지요.
흔히 ‘쥐가 났다’고 말하는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 모과만 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모과는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찬 바람에 상하기 쉬운 우리의 폐와 기관지를 따스하게 보호해 줍니다.
환절기마다 어머니께서 따뜻한 모과차 한 잔을 건네주시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나 봅니다. 기침과 가래를 가라앉히고 거친 숨을 고르게 해주는 자연의 배려인 셈이지요.
모과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그 강렬한 신맛에는 사실 피로 해소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과산과 구연산 같은 유기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는데, 이 성분들이 우리 몸속 에너지 대사를 활발하게 깨워주거든요.
몸에 쌓인 피로 물질인 젖산을 분해해 밖으로 내보내 주니, 유난히 몸이 무거운 가을날 모과차 한 잔은 몸을 가볍게 만드는 마법이 됩니다.
여기에 풍부한 비타민 C와 항산화 성분들이 더해져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환절기에 우리 몸을 든든한 성벽처럼 지켜줍니다.
모과를 즐기는 가장 정성스러운 방법은 역시 모과청을 담그는 일일 것입니다. 단단한 과육을 얇게 써는 과정이 조금 고되긴 하지만, 그 수고로움이 맛의 깊이를 결정하곤 하죠.
이때 주의할 점은 씨앗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인데, 씨에는 미량의 독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얇게 저민 모과를 설탕이나 꿀과 1대1 비율로 켜켜이 쌓아 유리병에 담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면, 어느새 황금빛 진액이 차오릅니다.
요즘은 이 청을 요리 소스로 활용하기도 하는데요, 불고기 양념에 살짝 넣으면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고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어 풍미를 한층 높여준답니다.
생으로 먹기엔 너무 시고 딱딱해서 한때는 저평가받기도 했던 모과. 하지만 올바른 보관법과 활용법을 알고 나니, 이보다 더 듬직한 가을 친구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겉모습보다 내면의 가치가 더 빛나는 모과를 보며, 우리도 겉치레보다는 진심을 채우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나지막이 다짐해 봅니다. 유난히 바람이 서늘해진 오늘, 냉장고 속 신선한 모과 한 알을 꺼내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여보는 건 어떨까요?
그윽한 향기가 집안을 채울 때, 우리의 건강과 마음도 노랗게 익어갈 거예요. 오늘 한 번, 모과의 따스한 진심을 한 잔 마셔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