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이 빚어낸 단단한 단맛, 겨울의 보석을 만나다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 시장 한편에서 유난히 잎이 넓고 땅에 바짝 붙은 채 옆으로 퍼진 시금치를 보게 됩니다. 처음 보는 분들은 해조류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지만, 이 채소의 정체는 바로 11월부터 제철을 맞는 ‘섬초’입니다.
전라남도 신안의 비금도 같은 섬마을에서 차가운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자란 특별한 시금치지요. 위로 쑥쑥 자라고 싶어도 매서운 해풍 때문에 높이 자라지 못하고 냉이처럼 땅에 붙어 자라는데, 그 고단한 환경을 이겨내느라 잎은 더 두꺼워지고 아삭해집니다.
가끔 삶이 우리를 짓누를 때 오히려 내면이 단단해지는 것처럼, 섬초 역시 추위를 견디며 제 몸속에 단맛을 꽉꽉 눌러 담습니다.
섬초를 손질하다 보면 뿌리 부분이 유난히 선명한 붉은색을 띠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붉은빛은 섬초가 가진 당도와 영양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다정한 신호이지요.
일반 시금치보다 훨씬 강한 단맛 뒤에는 겨울철 우리 몸을 지켜줄 비타민 A와 C가 가득합니다. 건조한 바람에 푸석해지기 쉬운 피부와 점막을 보호해주고, 면역 세포를 깨워 감기 기운을 멀리 쫓아내 주거든요.
특히 엽산과 철분이 풍부해 손발이 유난히 차갑거나 피로를 쉽게 느끼는 겨울날, 섬초 한 접시는 내 몸을 위한 가장 따뜻하고 영양가 있는 위로가 됩니다.
섬초를 더 건강하고 맛있게 즐기려면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조리법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시금치 종류에는 '수산'이라는 성분이 있어 그대로 먹기보다 소금을 약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는 것이 중요해요.
뿌리 쪽부터 넣어 1분 이내로 짧게 데친 뒤 찬물에 헹구면 특유의 아삭한 식감은 살아나고 불필요한 성분은 씻겨 내려갑니다.
이때 참깨를 넉넉히 뿌려 무쳐보세요. 고소한 향도 일품이지만, 참깨의 성분이 혹시 남았을지 모를 수산의 작용을 중화시켜 주거든요. 뼈 건강을 돕는 비타민 K와 칼슘이 가득하니, 성장기 아이들이나 골다공증이 걱정되는 분들에게 이보다 좋은 반찬은 없을 거예요.
신선한 섬초를 고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잎이 짙은 녹색을 띠고 윤기가 흐르는 것, 그리고 줄기가 짧고 단단한 것을 고르면 실패가 없지요.
흙이 묻은 상태로 신문지에 싸서 뿌리가 아래로 가도록 세워 보관하면 바다의 신선함을 조금 더 오래 곁에 둘 수 있습니다. 조각조각 잘라 된장국에 넣으면 국물 맛이 한층 깊어지고, 바지락을 넣어 맑게 끓여내면 바다의 향이 식탁 가득 퍼집니다.
하지만 역시 섬초의 진가는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에서 나오지요.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은은한 짠맛과 강렬한 단맛의 조화는 오직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사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