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전하는 고백, 우리가 몰랐던 연어의 붉은 진심
미식의 계절이 오면 유독 생각나는 주홍빛 유혹이 있습니다. 부드럽게 혀끝을 감도는 연어 한 점을 마주할 때면, 살점 사이사이 선명하게 피어난 흰 줄무늬를 보며 '참 싱싱하고 좋은 놈이구나' 생각하며 젓가락을 들곤 했지요.
마치 소고기의 마블링처럼 고소함을 약속하는 그 무늬가 사실은 연어의 운동량과 식단이 만들어낸 지방층이라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저 역시 그저 연어라면 다 같은 줄 알았는데, 그 결의 굵기가 연어의 삶이 양식이었는지 자연산이었는지를 말해주는 내밀한 고백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접시 위의 연어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연어 살에 나타나는 그 선명한 흰 줄무늬는 사실 '마이오코마타'라는 이름의 결합 조직입니다. 근육 마디를 나누는 근막에 지방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우리 눈에 하얗게 비치는 것이지요.
좁은 가두리 양식장에서 운동을 덜 하고 고지방 사료를 먹으며 자란 양식 연어는 이 조직에 지방이 두껍게 쌓여 줄무늬가 굵고 선명해집니다.
반면 머나먼 바다를 거슬러 오르며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치는 자연산 연어는 지방이 근육 전체에 얇게 퍼져 있어 무늬가 실선처럼 가늘거나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무늬가 없다"기보다는 보이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인 셈이죠.
양식 연어가 이토록 선명한 흰 줄을 갖게 된 데에는 그들이 먹는 식단에도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자연산 연어가 크릴새우나 작은 물고기를 사냥하며 에너지를 즉시 소비하는 것과 달리, 양식 연어는 대두나 옥수수 같은 식물성 원료가 듬뿍 담긴 고지방 사료를 먹으며 자라거든요.
마음껏 헤엄칠 공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고영양 식단을 이어가다 보니, 에너지가 소비되지 못하고 근막 사이에 지방으로 저장되는 것이죠.
오메가-3의 절대량은 양식이 더 높을 수 있지만, 포화지방 또한 함께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건강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문득 우리가 만나는 연어들의 고향이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만약 '알래스카산'이라는 라벨을 발견했다면, 그 연어는 십중팔구 드넓은 바다를 유랑하던 자연산일 확률이 높습니다.
알래스카주는 생태계 보호를 위해 상업적 어류 양식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알래스카 연어는 지방 함량이 낮고 흰 줄무늬가 거의 보이지 않는 단백한 멋을 자랑합니다.
반면 우리가 흔히 마트에서 보는 선명한 줄무늬의 연어는 대개 노르웨이 등지에서 온 양식 연어인 경우가 많지요. 라벨에 적힌 '양식(Farmed)'과 '자연산(Wild-caught)'이라는 글자 뒤에는 이처럼 전혀 다른 연어의 일생이 담겨 있습니다.
연어의 흰 줄무늬가 무조건 좋거나 나쁘다는 이분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기름진 고소함을 즐기고 싶은 날엔 선명한 줄무늬의 양식 연어가 달콤한 위로가 될 것이고, 담백하고 탄탄한 살의 식감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날엔 자연산 연어가 더 근사한 선택이 될 테니까요.
다만 이제는 접시 위에 놓인 연어의 결을 보며, 이 연어가 어떤 바다를 지나 내 앞에 왔을지 조용히 짐작해 보는 여유를 가져보려 합니다.
나를 위한 식탁 위에서 내 몸이 정말로 원하는 한 점이 무엇인지 살피며, 오늘 저녁엔 취향에 맞는 연어 한 접시 요리해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