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일차 -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 나는 떠나야만 했다
파리에 떠나기 이틀 전,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이불 위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약 3주간 나를 괴롭히던 정신적 문제들과 그로 인해 생긴 피부병의 여파로 온몸에 생긴 흉터들까지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던 내가 맞은 돌멩이는 내 세상을 무너뜨렸다.
'아 진짜 나 엉망이구나. 진짜 제발 누가 날 좀 해방시켜줬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느끼기에 나는 날 구원할 수 있는 마음도 몸도 아니었다.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다시 일으킬 시간이.
그렇게 시간을 벌기 위해 계속해서 해야 하는 일들로 도피했지만,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바. 어느새 피해왔던 문제들은 눈덩이 불어나듯 커져서 감당하기 힘든 무게가 되어있었다.
이게 파리에 가기 이틀 전 나의 상태였다.
2주 동안 떠나는 파리 여행은 엄마의 파리에서 1년 살기를 하겠다며 떠났을 때 예정되어있었고, 나는 무너졌지만 이 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무기력한 상태로 일어난 아침, 퉁퉁 부은 눈을 어루만지며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정리하고, 뿌리 염색을 하러 미용실로 향했다. 돌아와서는 마저 짐 정리를 하고 고양이들을 맡아줄 집사 서비스 예약을 확인하고 집 정리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D-0.
나는 룸메이트와 함께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