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도 아닌 병도 아닌 정, 아르바이트생의 일기
이천십칠년 구월 십팔일
나는 항상 갑도 을도 병도 아닌 정의 입장이다.
그저 갑을병의 말에 네하고 따를 뿐 늘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고 지금도 없다.
글쎄. 난 수많은 갑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정이니까
정에게도 이해받는 갑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갑이 될 수는 있을까? 만약 된다면? 어떤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만약 안된다면? 한평생을 을병정으로 살아야 할지? 모든 것을 떠나 나는 정말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지?
정으로써 받아들이기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나 아직 받아들이는 것 마저 서툴다.
한 시간에 6,470원짜리, 싼 맛에 쓰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그 변화가 내게 가져다줄만한 것은 무엇일지.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데 또 어떤 똑같은 거지 같은 꼴을 보게 될지.
모르겠고, 뭐든 하기 싫음 안 하면 그만인데 뭐. 예전엔 뭐가 그렇게 아쉬워서 뭐가 그렇게 미련이 남아서 뭐가 그렇게 미련해서 나조차도 놓쳐버린 채 끙끙 붙잡고 있었는지 모를 일
어쩌면 지금도 그래 아직도 미련해
겪어봐야 아는 일이라고 하는데 세상에 겪기 싫은 일 듣기 싫은 말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꼭 겪어봐야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