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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Dec 30. 2021

눈썹을 휘날리며

2021년과 스물다섯살을 보내며

예전에는 이런 인사말들이 진부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이런 인사만큼이나 다정한 안부 인사가 없겠구나 싶다.




2021년의 끝에 서있다. 계절이나 날짜, 요일, 시간에 둔감한 나는 사실 연말이나 연초나 별 감흥이 없는 편이다만, 요즘 유독 달력에 눈길이 간다.​


지난 몇 년간 정말, 눈썹이 휘날리도록 바쁘게 살았다. N잡이라는 말을 모르는 코찔찔이 고등학생일 때부터 대학생이 되어서도, 휴학 기간 짧게 직장인이 되었을 때에도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늘 일을 겸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이십대 초반을 보내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돈도 없고, 그렇다고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추억도 없고... 고작 스물셋에 이렇게 재미없게 내 인생은 끝나게 되겠구나 하는 귀여운 생각을 했다.​


스물넷에는 졸업을 일년을 채 남겨두지 않았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된 시점, 원래 하던 알바에 또 하나의 알바를 더 하게 되었다. 그땐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돈을 버느라 돈을 쓸 시간도 없어 모은 돈으로 처음 장기여행을 갔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취향과는 달리 덜렁대는 성격 탓에 일상에서도 당황스러운 상황을 자주 겪는다. 일상의 당황은 적어도 익숙한 길 위에서지만 여행에서의 당황은 모르는 길 위에서, 홀로 겪어내야 하기에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떠났던 이유는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은 (학업이라고 하기엔 공부에 소홀했던 과거를 생각하니 그저 역할로서의) 학생과 노동자로 지내야 했기에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떠난 곳은 한국말 통하고, 여행하기에 제일 만만한 제주도. 그해 가을의 끝에서 다음 해인 올초 겨울의 끝자락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 달이었던 계획은 떠나기 전 우연찮게 본 독립출판 수업을 듣게 되어 두 달로, 두 달이었던 계획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매니저 제안으로 여덟 달으로, 여덟 달이었던 계획은 사장님과의 사소한 다툼으로 세 달로 바뀌었다. 정말. 가끔은 내가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을 싫어하는 게 맞나 싶다. 마음이 자꾸 변하고 싫은 것을 참지 못해 다른 곳으로 떠난다. * 솔진이는 참지않긔....

독립출판 수업은 약 7년간 일기장에, 연습장에, 블로그에, 메모장에 흩어진 글들을 한데 모으고 싶어서 시작했다. 소장용 책 한 권이 목표였는데... "이왕 만든 거 팔아야죠!" "최소 300권은 인쇄하셔야 합니다!" "수강생님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최소 50명 이상은 될 거예요!" 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넘어가 예상치도 않게 책을 판매를 하게 되어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보기도 했다. 지난봄에는 첫 북페어 참여를 위해 첫 책에 실리지 못한 글들을 다시 엮어 두 번째 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그 행사를 주관한 회사를 알게 되고, 우연히 입사 공고를 보게 되어 지금은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책을 만들며, 책에 관련된 일을 하며 나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 주로 30대 초중반의 - 인생의 선배님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스물셋에 복학해 스물하나의 후배들과 같은 학년, 같은 수업을 들으며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으니 억지로라도 하던 일이나 하자" 하고 생각했던 나는 스물넷에 학교를 그만두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일을 하고 언제도 그러지 않았던 여행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나갔다. ​


그렇게 스물다섯. 새로운 일을 만났고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앞으로 내가 누구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눈썹이 휘날리게 바쁘게 지냈던 지난날들처럼 지내고 싶다. 더하자면 놀듯 일하고, 일하듯 놀고, 함께 일하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친구와 함께 일하고 싶다. 다가올 스물여섯에는 이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기꺼이 해내자는, 이전에는 잘 하지도 않던 새해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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