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글의 장르를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문학과 비문학.
문학은 시와 소설, 희극을 포함합니다. 비문학은 시, 소설, 희곡 외에 모든 글을 뜻하죠.
우리가 어른이 되어 흔히 읽거나 쓰는 글(칼럼이나 보고서, 자기소개서, 연설문, 기사, 리뷰 등)은 모두 비문학에 속합니다.
감수성과 창의성이 발휘되는 문학 글쓰기에 비해 논리적인 사고력과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글쓰기 역량이 요구되죠.
시나 소설, 드라마 시나리오를 제외한 모든 글들이 비문학으로 분류되다 보니, 비문학 안에서도 글의 유형은 다양한 갈래로 나뉘고, 서로 비슷한 듯 다른 성격을 띱니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문은 비문학이지만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감수성을 자극하고 영감을 줍니다.
반면 블로그에 올리는 상품 리뷰나 책의 리뷰는?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진 않지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죠.
같은 비문학 글이라고 해도 어떠한 목적으로 글을 쓰는가에 따라 글의 유형이 갈라지고, 글의 모습과 구성, 글을 통해 독자가 얻게 되는 ‘가치’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는 이제껏 제가 쓰는 글이 어떤 글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목적이나 의도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초점을 두고 글을 써온 것이죠.
물론 브런치나 블로그 같은 내 공간에서는 글쓰기에 무한한 자유가 허용됩니다.
계속 쓰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둔다면 괜찮겠지만, 지금보다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면?
내가 어떤 장르의 글을 쓰고 있는지 알고, 그 분야의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레퍼런스 삼아서 실력을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때마침 <김봉현의 글쓰기 랩>은 제가 고민하는 지점에 대해 유용한 가이드를 제공하는 책이었습니다.
책을 쓴 김봉현 작가는 힙합에 관해 글을 쓰는 힙합 저널리스트입니다.
그는 한권의 책을 통해 20년 가까이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며 축척한 글쓰기 철학과 방식, 노하우를 담고 있죠.
글을 써온 지난 15년은 특별한 롤 모델이나 참조할 교본 없이 스스로 글쓰기의 모든 것을 깨우친 세월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쉽고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꽤나 막막한 것임을 안다. 그렇기에 내가 체득한 이 길거리 지식을 이 책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물론 글쓰기에 관한 나의 방식과 철학이 정답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리 있는 주관’ 쯤으로 받아들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혹시라도 나의 이 길거리 지식이 어떤 이에게 ‘새로운 교과서’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엄마한테 전화해 이렇게 말할 생각이다.
Momma, I Made It. (12p)
책의 1부는 작가의 글쓰기 철학과 태도, 2부는 (비문학) 글쓰기의 다양한 유형과 노하우, 3부는 저자가 운영한 글쓰기 합평 모임 멤버들의 글과 피드백의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는대요.
1부와 3부 내용도 글쓰기에 참고할 점이 많았지만, 오늘은 제 고민과 맞닿아 있는 2부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책의 <2부 글쓰기의 포인트, 소설 빼고>에서는 비문학 글의 대표적인 장르인 에세이, 칼럼, 리뷰의 차이점을 소개하고, 잘 쓴 글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장르는 ‘에세이’입니다.
1. 에세이의 포인트 : 솔직함, 감정의 절제, 나의 이야기에서 모두의 이야기로 끝낼 것.
여러분은 '에세이'가 정확히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김봉현 작가는 에세이를 ‘논증적 글쓰기의 반대’ 개념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논리를 전개하고 근거를 증명해야 하는 글쓰기에 반대 지점에 놓인 글로써, ‘머리’보다는 가슴, ‘정서’로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글이 ‘에세이’라는 것이죠.
앞서 소개드렸던 책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의 저자 정지우 작가는 <김봉진의 글쓰기 랩>의 ‘에세이의 에센스’ 부분을 읽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에세이는 ‘정서’를 중심에 둔 글쓰기 장르다. 소설이 갈등과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칼럼이 사회현상에 대한 통찰 등을 중심에 둔다면, 에세이는 정서로 모든 것을 말한다. 글쓴이만이 가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들이 정서를 통해 드러난다.
그 정서는 다소 우울할 수도 있고, 인간애를 지닐 수도 있고, 세계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54p)
저는 에세이에 대해 이렇게 명쾌하게 정의한 글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처럼 저자는 에세이의 핵심은 글의 소재가 아니라, 소재를 다루는 ‘방식’, 다시 말해 글쓴이의 ‘정서’라고 이야기합니다.
에세이가 글쓴이의 ‘정서’가 주가 되는 글이라면, 좋은 에세이는 그렇지 않은 에세이와 어떤 차이를 지닐까요?
저자는 좋은 에세이가 갖추고 있는 요소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솔직함’입니다.
에세이는 철저히 글쓴이의 ‘정서’로 시작해서 ‘정서’로 끝나는 글입니다. 정서가 주축이 되는 글이다보니, 글쓴이가 내면의 진실을 파악하고 모든 것을 여과 없이 드러낼 때 독자들도 글쓴이의 정서에 공감하는 감정적 체험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에세이를 읽을 때 진심의 힘을 종종 느낀다. 어떤 이의 에세이는 아무리 읽어도 친해지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다. 언뜻 보면 솔직하게 써놓은 것 같은데 왠지 알맹이는 빠져있는 느낌이 드는 글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쓴이에게 살며시 물어본다. 혹시 글에 숨긴 것이 있냐고,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것 같다고. 그제야 글쓴이는 고백하기 시작한다.
'방어적으로 썼다고, 다 말하기는 조금 무서웠다고'(122p)
좋은 에세이는 어떠한 사건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때 그 순간에 그런 감정을 느꼈던 이유에 대해 파고 들어가며 왜곡 없이, 과장 없이, 포장 없이 내면의 솔직한 진실을 마주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까지 그대로 보여줍니다.
물론 가드를 내리고 진짜 '나'를 드러내는 것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창피를 무릅쓰고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면, 에세이의 절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죠.
둘째, 감정을 과잉 표출하지 않는다.
정서가 주축이 되는 ‘에세이’에서는 글쓴이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는데요.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내면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과 내 감정을 과잉 분출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울부짖고 소리를 지르고 감정을 표출하며 억울함을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정말 억울하겠다’ 공감하기보단, 이야기의 내용은 듣지 못한 채 ‘너무 감정적인 것 같아, 일단 진정하고…’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예시에 등장한 사람은 누구보다 솔직했지만, 감정이 이야기를 삼켜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것입니다.
에세이에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필수이지만, 감정을 과잉 표출하는 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죠.
김봉진 작가는 에세이를 쓸 때에는 오히려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고 절제를 추구하는 것이, 때론 감정을 직접적인 방식이 아닌 우회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정서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별 노래를 좋아한다. 하지만 모든 이별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슬프지 않은 이별노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노래가 어떤 노래냐고? ‘나는 지금 너무 슬퍼서 죽을 것 같다고 울부짖는’ 노래들은 하나같이 슬픈 적이 없었다. 대신에 100만큼 슬픈데 50만큼 슬프다고 하고, 50만큼 슬픈데 그냥 괜찮다고 말하는 노래들이 나는 유독 슬펐다.
그래서 윤종신을 좋아했다.
글도 마찬가지다. 에세이라면 더욱 그렇다. 감정을 절제하려는 시도와 노력이 그 감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읽는 이에게 전달해준다고 나는 믿는다. 슬퍼하는 모습보다 슬픔을 참으려는 모습이 더 슬프다. (122~125p)
셋째, 개인적인 글이 결국에는 보편적인 글로 확장된다.
김봉현 작가는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에세이를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토로하는 고민이 있다. “왜 제 글은 에세이가 아니라 일기 같죠?”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일기는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해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는 글이고요, 에세이는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해 모두의 보편으로 끝나는 글입니다.” (129p)
지금 쓰는 글이 일기라면, 개인적인 경험이 오롯이 나의 글에 머물러있어도 괜찮습니다.
일기장에 매일의 일상을 꾹꾹 눌러 담으며, 슬플 땐 온 힘을 다해 오열하고, 억울할 땐 욕을 한 바가지 써내려가며 그렇게 내면에 쌓인 것들을 꺼내 놓는 것만으로도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기가 아니라 에세이를 쓰고싶다면?
내 개인적인 경험이 모두의 경험으로,나의 글이 우리의 글로 확장되는 것이 필요하죠.
그래서 우리는 좋은 에세이를 읽으면 쓴이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더 나아가 지금 현재의 내 삶이나 일, 인간관계, 인생의 본질 같은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기 시작하죠.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글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되며 거대한 보편성을 획득할 때, 우리는 이런 작품을 가치 있는 이야기, ‘좋은 에세이’라고 분류합니다.
에세이의 정의와 잘 쓴 에세이의 특징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문과 방시혁 대표의 서울대 졸업식 연설문, 방탄소년단 랩몬스터의 UN 연설문이 떠올랐습니다.
글의 유형이 에세이는 아니지만, 이들의 인생이 담긴 연설문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마지막엔 '우리의 이야기'로 끝을 맺죠.
연설문을 쭉 따라 읽고나면 마치 한 편의 좋은 영화를 감상했을 때처럼 ‘내 인생을 더 잘 살아보고 싶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릅니다.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표현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의 이야기로 끝낼 것.”
에세이를 쓸 때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2. 칼럼의 포인트 : 정보, 관점, 주장
앞서 저자는 에세이를 가리켜 ‘논리로 전개하고 근거를 증명해야 하는 글쓰기의 반대되는 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에세이에 반대되는 ‘논리로 전개하고 근거를 증명해야 하는 글쓰기’가 바로 칼럼입니다.
에세이가 정서적인 글쓰기라면, 칼럼은 논증적인 글쓰기에 해당합니다.
에세이는 따뜻한 체온을 바탕으로 정서를 쓰는 게 중요했다면, 칼럼은 차가운 머리를 활용해 근거, 데이터, 당위, 주장, 결론 등을 탄탄하게 세워 나가는 것이 관건이죠.
저자는 칼럼을 쓰기 위해 정보, 관점, 주장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가장 먼저 칼럼을 쓰기로 한 주제에 대해 정보를 수집합니다. 주제에 관해 다양한 층위의 정보를 최대한 정확하게 수집하고, 팩트를 체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정보를 수집했다면 필요한 것은 작가의 관점입니다. 이 주제에 관한 최근의 논란에 대해 저자는 어떠한 틀과 태도로 접근할 것인지 몇 가지 관점을 미리 선택해 놓습니다.
나의 관점을 정했다면 이제 주장을 펼치면 됩니다. 활자를 통해 정교하게, 모순이 없이, 나만의 주장을 밀고 나가면 됩니다.
이처럼 주제에 관해 정보를 모으고, 정보를 바탕으로 관점을 선택하고, 나의 주장을 전개해 나가는 글이 ‘칼럼’입니다.
그럼 수준 높은 칼럼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요?
저자가 이야기하는 좋은 칼럼이 갖춰야 할 요소(Do)와 피해야 할 요소(Don’t)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주장과 결론이 필요하다.
주장은 칼럼을 지탱하는 힘이고 결론은 칼럼을 마무리하는 힘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은 당신이 이 주제에 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이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독자가 당신이 해당 안건에 관해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알 수 있어야 칼럼이다. 이는 칼럼의 기본이다.(136-137p)
둘째,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칼럼을 쓰기 전에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아무리 날카로운 주장을 해도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거나 정보가 부실하면 그 칼럼은 한순간에 신뢰를 잃는다. 반면 깨알 같은 정보가 글의 곳곳에서 글쓴이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면 그 칼럼은 읽는 이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정보 수집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일수록, 주장과 근거가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잘 쓴 칼럼이 된다.(137p)
셋째, 이분법은 휴지통에 버린다.
칼럼이 성립하려면 주장과 결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말이 이분법을 사용하라는 뜻은 아니다. 주장을 명확히 하는 것과 이분법으로 사안을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선과 악, 100대 0, 진짜와 가짜로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다른 여지’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 없이 ‘자기의 옮음’만 내세워 타인을 단죄하는 이분법은 영원히 쓰레기통에 버려도 좋다.
대신에 합리와 균형으로 나의 주장을 세상에 내보이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글이다. (140-141p)
넷째, 비아냥되거나 격양된 표현을 쓰지 않는다
칼럼의 목적은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며 읽는 이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시선과 정보는 주었지만 나의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칼럼이 있다. 주장의 근거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표현 방식이 논리 정연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칼럼이 나를 설득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글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쓰인 글이 글쓴이와 같은 입장에 놓인 이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다. 이분법 위에서 감정적 어조로 말하는 칼럼은 같은 편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글쓴이와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입장 차이와 감정의 골을 더욱 벌릴 뿐이다. (152-153p)
저는 에세이, 칼럼, 리뷰 세 가지 글의 유형 중에 가장 글쓰기 난이도가 높다고 느끼는 글이 ‘칼럼’ 인대요.
내 생각을 매우 똑똑하지만 겸손하게(잘난척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반박 못하는 글로 압축해내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아직 쓰지는 못하지만 ‘최인아 책방’의 최인아 대표님이 연재하시는 동아일보 칼럼, 신수정 KT 부사장님(도서 ‘일의 격’ 저자)의 페이스북 글을 꾸준히 읽으며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 균형잡힌 시선이 한 편의 칼럼으로 완성되었을 때 얼마나 막강한 힘과 설득력을 지니는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3. 리뷰의 포인트 : 나보다는 대상, 정보와 견해의 조화, 창작자의 의도를 헤아리면서 나만의 이야기 쓰기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읽는 글은 무엇일까요?
기사? 에세이? 칼럼?
저는 ‘리뷰’라고 생각합니다.
SNS만 봐도, 하루에 수만 개씩 상품 리뷰, 영화 리뷰, 드라마 리뷰, 도서 리뷰, 맛집 리뷰가 올라옵니다. 우리는 인지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수많은 리뷰 글을 읽으며 지갑을 열고 있죠.
리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같은 대상을 소재로 리뷰를 쓰더라도 어떤 이의 리뷰는 좋아요를 수백수천 개 받고, 어떤 이의 리뷰는 저 아래로 묻혀서 빛을 보지 못합니다.
물론 ‘좋아요’의 수가 좋은 리뷰와 나쁜 리뷰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나 척도가 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공감하고 호응하는 리뷰는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 같은대요.
책은 좋은 리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첫째, ‘나’보다는 ‘대상’이 부각되어야 한다.
리뷰는 에세이나 칼럼과 비교했을 때,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어떤 대상’에 대해 말하는 글이라는 점이죠.
칼럼은 대상보다는 나에게 초점이 맞춰진 글입니다. 논의하는 주제보다 그 주제에 대한 나의 견해와 주장, 즉 글쓴이가 더 돋보이는 글이죠.
하지만 리뷰는 다릅니다. 리뷰에선 글을 쓰는 ‘나’보다 내가 소개하는 '대상'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칼럼을 다 읽고 나면 글쓴이의 주장이 남지만, 리뷰를 다 읽고 나면 소개하는 대상이 어땠는지가 남아야 한다고 김봉현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둘째, ‘정보’와 나의 ‘견해’가 조화를 이룬다.
간혹 블로그에서 영화의 리뷰를 보다 보면, 영화의 줄거리만 소개하고 끝나는 글을 종종 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무슨 영화인지 소개도 없이, 영화에 대한 본인의 감상평을 길게 늘어놓은 글을 보기도 하죠.
저자는 앞서 소개한 이 두 가지 글은 좋은 ‘리뷰’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대상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 것과, 나의 소감/감상평이 적절한 비중으로 조화를 이룰 때 좋은 리뷰가 완성된다는 것을 뜻하죠.
셋째, 창작자의 의도를 헤아리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쓴다.
주장은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고 관철시키는 행위라면, 주관은 자기의 견해나 관점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칼럼은 주장이 목적인 글이라면, 리뷰는 주관을 드러내는 글에 해당되죠.
그런데 간혹 리뷰에서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는 것에 치우쳐서, 창작자의 의도를 왜곡하거나 배제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보통은 이런 리뷰 글을 볼 때 ‘너무 주관적이다’라는 인상을 받게 되죠.
김봉현 작가는 창작자와 대중 모두에게 가치 있는 리뷰는, 창작자의 의도를 헤아리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창작자의 의도를 헤아리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하는 리뷰는 처음부터 쉽게 쓸 수 없습니다.
글솜씨와 별개로 해당 분야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사람 만이, 창작자의 의도도 읽어내고 동시에 창조적으로 해석하며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는 이처럼 좋은 리뷰를 쓰는 것이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평소에 꾸준히 문화적/예술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지금까지 <김봉현의 글쓰기 랩>에서 소개된 ‘에세이’, ‘칼럼’, ‘리뷰’의 정의를 이해하고, 잘 쓴 글의 핵심 요소들을 살펴보았는대요.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면서 내가 가진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는 글의 유형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의 부족한 점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글쓰기의 철칙이나 기준들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전부 다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좋은 글이 갖춰야 점을 알고 있어도 실제로 기준에 딱 부합하는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뿐더러, 이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해도 트렌드나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다면(너무 앞서가거나 뒤쳐져 있다면)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 콘텐츠 시장/출판업계의 현실이니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가짐과 태도로 글쓰기에 임해야 하는지, 글이 갖춰야 할 기본기에 대해 정석에 가까운 시사점을 제공해줍니다.
책을 덮고 난 후에는 내 글을 읽기 위해 시간을 쓰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죠.
막연하고 희미하게 알고 있었던 글쓰기의 장르를 정의하고, 잘 쓴 글과 아쉬운 글의 다양한 사례들을 간접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김봉현의 글쓰기 랩/ 출판사 xbooks /20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