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 화풍의 대가 피카소에 대한 다양한 사실들
파블로 피카소라는 이름은 전 세계의 기본 미술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가이다. 그의 입체파 화풍은 다양한 화가들에 의해 그려지기도 했지만 입체파 하면 피카소를 상징하는 그림의 화풍이 된 것도 사실이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1973년 92세의 나이로 생을 다할 때까지 엄청난 양의 작품 활동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몰랐던 피카소에 관한 사실 10가지를 알아보자.
1881년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어린 시절에 몸이 아주 허약한 아이였다. 그가 말한 첫 번째 단어는 연필이라고 한다. 피카소는 마치 예술가로 태어난 듯 3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9살 때 투우 경기장의 말을 탄 남자를 처음 그린 후 13세 때는 미술 교수였던 그의 아버지 그림보다 훨씬 뛰어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피카소는 프랑스 미술의 고갱, 고흐, 르누아르 등 거장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초기 작품들은 파란색으로 그려 청색시대라 불리며 우울함을 보여주는데 그 후 페르낭드 올리비에라는 여자를 만나 청색 빛의 그림이 장밋빛으로 변하며 강하고 밝은 색조를 쓰면서 화풍의 변화를 줬다.
피카소는 마드리드 시절에 거리의 부랑아나 빈민들을 화폭에 그리던 무정부주의자였다.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에 의해 파리가 해방된 1944년 10월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피카소는 공산당의 주문으로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상주의적인 관심에서 공산당에 가입했으나 자신의 예술이나 사고를 정당에 종속시키지 않고 그 대가로 부당한 비난을 묵묵히 감수하기도 했다.
입체파 화풍의 수장으로서 20세기 최고의 천재 거장으로 불릴 만큼 화가로 잘 알려진 피카소는 조각, 도자기, 조판 등에도 소질을 보여 발레 세트장, 발레복 등을 만들기도 했고 1935년에서 1959년 사이에는 시를 쓰고 시집을 냈으며 3편의 희곡과 4백여 편의 시작품을 남겼는데 이는 뛰어난 작가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미술교사인 아버지에게서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배운 피카소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소묘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보통 학생들이 일주일 걸린다는 바르셀로나 예술학교 입학시험을 몇 시간 만에 끝내고 몇 달이 걸리는 과제를 하루 만에 완성해 1등을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로 유년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이 있었다.
피카소는 많은 작품을 작업하면서 페르낭도, 에바, 올가, 마리테레즈, 프랑수아즈, 자클린 등 무수한 여자들을 삶에서 그리고 작품에서 만났다. 또 만나는 여성이 바뀔 때마다 작품 스타일이 바뀌고 애인에게서 받는 영감이 모두 달랐다고 한다. 결혼 중에도 다른 여자와 동거를 하는 등 여성편력이 심했던 것이 특징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여자만 7명이며 정식으로 결혼한 사람은 두 명이라고 한다.
피카소와 마티스는 아프리카 조각의 매력에 빠져 각자 그 영향을 받아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조각에 심취한 영향으로 마티스는 ‘삶의 기쁨’, ‘푸른 누드’ 등을 그렸다. 피카소는 이것을 견제하기 위해 비판을 쏟아내며 ‘아비뇽의 처녀들’로 현대사회의 어둠과 거친 현실을 암시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면서도 치열한 갈등을 이어가는 라이벌임과 동시에 동반자였다.
피카소는 미술사상 가장 방대한 작품을 남긴 화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유화 13,500점이 넘는 작품과 그 외의 작품까지 합하면 약 200,000점 가량의 많은 작품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을 정도의 작가이다. 세계적으로 명예를 얻고 자식들에게도 많은 유산을 남기며 천문학적인 부를 누리고 산 역사적인 화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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