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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미 Nov 05. 2022

스트레스는 브레이크일까, 액셀일까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목구멍이  막히고 소화가  되지 않는  같다고 느꼈던 이유가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삶의 원동력으로 느껴지는 것이 말이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트북부터 켰다. 매일 건강일지를 기록해서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다짐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하루를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한 달을 채우기 전에 나와의 약속을 깨버린 게 민망해서 출근 전까지 초집중해서 글 한 편을 써 올렸다. 마치 1-2년 전에 도전했었던 미라클 모닝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맞다, 그때도 이렇게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이었지. 확실히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어야 돼.


출근할 때는 오른쪽 다리가 훨씬 더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고,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장실도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부지런히 다녀오니 아주 날아갈 것 같았다.


이 정도로 양호한 상태라면 안심해도 될 것 같아서, 철저히 피해왔던 찬 음료도 오늘은 마셔주기로 했다. 얼음을 가득 넣은 디카페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마자 입 안에서부터 사르르 퍼지는 시원함. 오랜만이라 그런지 꽤 반가웠다. 그러고 보면 예전엔 매일 아침마다 공복에 아이스커피를 들이부었었는데, 나 자신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점심시간에는 초밥을 먹으면서 회의를 했다. 날것이 좋진 않다고 하지만 요즘 칸디다 자가치료 겸 천연 항진균제를 먹고 있으니 조금은 먹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여기 초밥 맛있는데, 많이 드세요. 저는 요즘 식단 관리를 하고 있어서 어차피 많이는 못 먹거든요..."

"식단 관리요? 다이어트하시는 거예요?"

"아뇨, 제가 최근에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었는데..."


아무리 밖에서는 사회성 버튼을 켜고 행동하는 INFP 직장인이라지만 매번 회의를 할 때면 땀이 나고 힘이 부친다.


사적인 친분 없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금세 내 얘기를 꺼냈다. 요즘 하고 있는 식단 관리, 건강 관리에 대해서. 평소 같았으면 회사에서 절대 하지 않았을 잡담을, 이상하게도 이 날은 주절주절 꺼내놓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스 브레이킹 효과로 꽤나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순조롭게 회의가 흘러갔다.


새롭게 제안한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이 일을 하는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비록 남들에게 이름 없는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속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갈고닦고 있는 이 시간이 나에겐 제법 가치 있다.


하여간 오늘 퇴근길은 유난히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건 분명, 화장실을 두 번 간 것 때문만은 아닐 거야.


평생 겪어보지 않았던 항생제 부작용과 관절 염증.

그 뒤로 지속되는 위장장애.

덕분에

포드맵 식단을 정리하고,

칸디다 자가치료를 시작하고,  

매일 건강일지를 기록하고.


평생 처음으로 해보는 건강 관리.

덕분에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따뜻하게 마시던 커피에 얼음을 넣어보고,

수다스러운 아이디어 회의도 진행해보고,

평소보다 늦은 저녁을 먹었다.


이처럼 평소엔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것.

평생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을 하는 것.


그 과정에서 받는 적절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왠지 나의 발전과 성장을 도와주고 있는 건 아닐까, 미묘한 생각과 감정이 드는 하루였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브레이크 같았던 스트레스가, 오늘은 액셀처럼 느껴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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