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법원에 가본 적이 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소송에 휘말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운이 없다면 소송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평생을 소송과 관계없이 살다가 소송을 하면 겁이 납니다. 제 의뢰인들도 대부분 첫 소송이라 긴장하시고, 저를 변호사라고 어려워하십니다.
얼마 전, 재판에 다녀왔습니다. 평소에 많이 수행하는 임금 소송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기억에 남는 건 우리 원고 때문입니다.
원고는 재판 전에도 한 번씩 전화를 해왔습니다. 항상 격앙된 목소리였습니다. 노동청에서는 체불임금을 천만 원이라고 인정했는데, 형사사건에서 검사와 판사가 체불임금을 오백만 원으로 인정했습니다. 이 판결 때문에 민사소송도 체불임금 오백만 원만 인정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원고는 검찰청에 탄원서를 넣었다고 했습니다. 수사가 잘못되어서 형사판결이 잘못 나왔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약식명령이 확정된 이상 어떤 탄원서도 무의미했습니다.
재판 당일 원고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재판에 직접 출석을 해서 판사님께 말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곧바로 제 사무실로 찾아오셨습니다. 60대 후반인 걸로 보이는 할아버지였습니다. 손은 흙이 묻은 게 아니라 배겨서 검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저에게 억울한 점을 조목조목 말씀해 주셨습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도 느껴졌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을 한참 들어드리고 함께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법원에 처음 가본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송사에 휘말려본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법원에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어디서 이렇게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것일까요? 할아버지께 멋쩍게 "법원에 사람이 참 많지요?"라고 괜한 소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재판정에서 당황할 수도 있는 점들을 미리 안내했습니다. 재판은 보통 서면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말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고요. 하지만 어렵게 오신 만큼 꼭 말할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재판정 앞 의자에 앉아서 재판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멀리서 오는 분들께 인사를 합니다. 할아버지의 배우자분과 따님도 오셨습니다. 일 가족이 재판 방청을 온 것은 정말 다시 경험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매일 가는 법원인데 어떤 분들은 일생일대의 사건인가 봅니다.
따님이 할아버지께 "아부지 법원에 온다고 옷 멋있게 입었네"라고 가볍게 농담을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인 것 같았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을 나왔습니다. 할아버지와 가족들은 저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님이 가기 전에 "변호사님, 파이팅~!"이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 분들께 어떤 변호사로 기억에 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