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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짓는하루 Oct 22. 2021

한 달만에 집밥, 김치볶음밥

푹 쉰 김치만 들어간 볶음밥이 꿀맛?

<김치만 넣은 진짜 김치볶음밥>

백신 접종 후 부작용 때문에 제법 고생했다. 접종 직후 2주간은 정말 힘들었고, 이후로 한 달 가량이 지난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일상생활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소화했다. 다만 아직까지도 체력 저하가 있고 수면시간이 길어졌으며, 조금만 피곤하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심장과 그 주변부가 아프긴 하다.


운동도 꼬박꼬박 하던 사람인데, 백신 접종 후에는 원래 대로 운동하는 것도 힘들어서 운동을 한동안 쉬었다. 얼마 전부터 최소한의 컨디션을 유지할 정도인 스트레칭 수준의 가벼운 운동만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가벼운 운동조차 하고 나면 심장이 아파서 속상하다. 뭔가 삶의 질이 굉장히 떨어진 느낌이다. 나의 평범한 루틴이 백신 주사 한 방에 이렇게 나약하게 무너질 일이었나. 조금 서글프다. 아플만한 유전 요인도 없고, 병력이 전혀 없는 건강한 내가 백신 접종 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장 통증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시간이다. 모더나의 흔한(?) 부작용이라는데, 이미 두 차례 검사도 해서 심장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일시적인 백신 부작용으로 사람마다 호전 속도가 다르다는 소견을 받았다.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덩달아 나약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회사 일도 바빴고 개인적으로도 신경 쓸 일이 많아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레 집밥을 해먹을 시간적 여유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체력이 떨어지니 시도 때도 없이 졸려서 저녁도 안 먹고 잠드는 날이 제법 많았다. 평일에는 배달음식이나 바깥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주말에는 부모님 집에서 보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편하게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고 푹 쉴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한 주말이었다. 아무튼 거의 매일 집밥을 해 먹던 나의 루틴이 깨졌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다시 집밥을 만들어 먹었다. 직접 만들어 먹는 집밥은 거의 한 달만인 것 같다.


밥을 해 먹기에 앞서 냉장고 정리를 했다. 한동안 관리하지 못한 냉장고에는 상해서 버려야 하거나 정리해야 할 것들이 제법 있었다. 아, 나 정말 식재료 상해서 버리는 거 싫어하는데. 아무튼 냉장고 정리를 하고 나니 지난 주말 부모님 집에 갔을 때 엄마가 챙겨준 채소 조금과 멸치볶음, 자취생의 냉장고에 늘 있는 김치가 남았다. 마침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기도 했고, 어차피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하기엔 피곤했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조금 두르고 가위로 잘게 자른 김치와 설탕, 물을 조금 넣어 볶다가 참기름 한 숟가락과 밥을 넣어 볶아냈다. 여타 넣을 다른 재료가 없어 들어간 것은 고작 김치뿐이었다. 그마저 푹 쉬어서 설탕으로 과한 신맛을 없애야 했다. 게다가 오랜만에 만들다 보니 양 조절에 실패해 거의 2인분에 가까운 요리가 탄생했다. 중간에 간 보는 과정도 생략했다. 그런데 세상에, 정말 맛있는 김치볶음밥이 완성됐다.


기름을 많이 넣지 않으려 물을 같이 넣어 볶아냈더니 기름지지 않아 깔끔했고, 참기름과 깨를 더해 고소했다. 방치된 냉장고 속에서 푹 쉬어버리긴 했지만 원래 맛있는 김치는 쉬어도 제법 맛있었다. 미리 해둔 밥도 없었으니, 갓 지은 꼬들꼬들한 밥을 넣어 밥 자체의 맛도 좋았다. 김치볶음밥의 단짝이라는 계란 프라이 하나 올라가지 않은 간단한 밥상이지만, 평일 내내 사 먹고 들어오거나 배달 음식만 먹다가 집밥을 먹으니 꿀맛이었다. 바깥 음식으로 점철된 입안이 껄끄럽고 속이 불편했었는지 밥이 쉴 틈 없이 입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결국 혼자 2인분을 다 먹었다.


아주 간단하게 만든 김치볶음밥은 이번 주에 먹은 밥 중에 제일 맛있었다. 역시 집밥이 최고다. 요즘은 심신이 지쳐있기도 하고, 많은 고민을 안고 사는 날들이다. 그래도 이렇게 평범하게 밥 해 먹듯, 그저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 보자 다짐해본다. 내일은 오랜만에 주말 맞이 대청소를 해야겠다. 청소를 하며 소란스러운 마음도 비워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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