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0월 중순의 기록
어떻게든 버텨냈던 2025년의 봄, 그리고 여름이었다.
매주 1번 정도는 내가 달릴 수 있는 만큼의 속도로 도림천 주변을 달리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나와서 청계천 주변을 아주 느린 속도로 뛰기도 했다. 무심히 도림천 주변을 뛰던 어느 날, 일년 넘게 만에 다시 세상이 하나로 보인 날이 있었다.
한 눈을 감으면 세상이 하나로 보였지만, 두 눈으로 하나의 세상을 보는 것만 못했다. 두 눈으로 보는 하나의 세상이 너무도 깨끗하고 맑아, 눈물이 글썽거렸다.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몇 번이고 눈을 비비고 테스트해봤다. 눈물을 훔치고 본 세상 역시 너무도 깨끗하고 맑았다.
어쩌면 의사선생님 말대로 병이 아닐 수도, 좋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격스럽다는 말의 뜻을 온 몸으로 이해한 날이었다.
사업도 다행히 순조로웠다. 다만, 4월 무렵부터 다시 바빠지면서 한 동안 나름대로 건강을 위해 지켜왔던 루틴이 깨졌다. 6월에 복직하는 아내와 시간을 보내려고 연차를 내려고 했는데 3달 간 정말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잠깐 좋아지는 듯 했다가 다시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두 개로 보이는 눈과 가끔 흔들리는 두 다리, 그 보다 흔들리는 마음을 가지고, 부던히 교육에 나갔다. 매일 나빴던 것은 아니었고, 괜찮은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도 있었다.
괜찮은 날에는 역시 아프다는 건 핑계나 나의 취약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잠깐 방심하고 있으면, 또 어느 날은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와 주저 앉고, 하루 종일 다리를 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적어도 아프지 않은데 아픈 척 하는 건 아닐까 라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며 스스로를 곱씹기도 했다.
처음 뛰어들어야 하는 교육들이 많았다. 교육의 결과는 단지 만족도 숫자가 아니라고, 팀원들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숫자가 기대만큼 높지 않다고 느꼈을 때는 기대하는 숫자와의 간극 만큼 자존심도 깎여나가는 것 같았다. 크게 차이는 없을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통제할 수 없는 그 날의 아침 컨디션과 그 날의 저녁 결과가 연동되는 거 같아 속상했다.
그렇게 불안이 극도로 쌓여서, 헛구역질이 날 것 같을 때는 한 밤에 교안을 만들다 말고 밖으로 나가서 뛰다가 다시 들어와 새벽에 교육을 준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10층 복도식 아파트인 우리집 엘리베이터에서 우리집까지 가는 길이 무서웠다.
숨을 돌린 건, 추석 연휴가 찾아왔을 때 즈음이었다. 연휴 전까지는 하루하루 몸도 정신도 나가 버릴 것 같았다. 모쪼록 오랜만의 긴 연휴였다. 연휴 전까지는 차가 내달리는 왕복 8차선 도로 한 가운데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쉼이 간절했고, 오랜만에 마음을 내려놓고 보냈다. 쉬니까 괜찮아졌다.
쉬니까 모든 게 다시 좋아졌구나라고 생각하고, 출근한지 이튿날. 어떤 때보다 절망감과 무력감이 찾아왔다. 회의를 하는데, 말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회의실을 떠도는 글자들이 귓속에 들어오기도 전에 그대로 나의 머리에 부딪혀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정신줄을 잡고 집중해보려고 해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분명, 쉬고 나면 모든 게 잘될 거 같았는데,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나빠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절망감이 들었다.
몸이 약간 불편한 건 괜찮았다. 불편하고 성능은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일을 못할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머리가 굳어버리는 느낌은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몇 안 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2월에 다른 의사선생님은 신경학적으로는 원인을 찾을 수 없음을 이야기하면서, 혹시 정신적인 문제는 아닐까 여쭤봤을 때 한 번 방문해보기를 권하기도 했었다. 간호사인 아내도 신체화 증상(심리적 스트레스나 감정적 고통이 실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병원은 작년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던 곳이었다. 일하다가 갑자기 헛구역질이 몰려와, 미친듯이 기침을 하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보였던 간판. 귀신에 홀린 것처럼 들어갔다가, 초진은 바로 진료를 할 수 없다고 해서 그대로 돌아나왔던 곳이었다. 자신이 없었던 것인지, 자존심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었던 것인지 다시 방문을 하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2주 뒤에 중증근무력증을 진단 받았었다. 그리고 1년 반이 넘어서야 다시 찾아가게 된 곳이었다.
초진이었기 때문에 아이패드로 여러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기질 검사 등에는 원래도 관심이 있었고, 직접 진단이나 교육도 여럿 해봤기 때문에 어떤 검사일까를 생각해보면서 참여했다. 연휴 후에는 지금보다는 괜찮았지만 곧 연휴 전의 상태가 될 거 같아, 연휴 전의 상태를 가정하여 참여했다. 15분 가량 검사를 마치고 앉아서, 다소 들뜨고 다소 가라앉은 이상한 기분으로 진료를 기다렸다.
그렇게 마주 하게 된 선생님은 가냘프지만 매우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분이었다. 어떻게 방문했는지 여쭤보셨고, 그 동안의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의사선생님처럼 말씀을 들려야 할지, 상담선생님처럼 말씀을 드려야 할지 혼자 고민을 하다가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말로 이렇게 누군가에게 나의 정말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 해본 것이 처음이어서였을까.
선생님은 다행일지 불행일지 신체화 증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셨다. 복시, 극심한 피로 호소 등은 중증근무력증의 전형적 증상으로 이렇게까지 일관되게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증상을 신체화로 보지 않는다 했다.
대신에 신체화 증상 여부와 별개로 내가 지금 심리적으로 위기 상황인 거는 맞고, 이거는 이거대로 치료를 어차피 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다. 모니터를 돌려 검사 결과를 보여주시며, 대부분의 결과가 매우 나쁘기 때문에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우울증 점수가 이 정도면 보통 이렇게 되기 전에 병원으로 오시거든요. 많이 높은 편이에요."
자가 검사니까 내가 힘들다고 생각해서 더 높게 체크한 건 아닐까 싶었다. 그걸 감안해도 높은 편이냐고 물어봤다.
"사실은 주관적으로 어떻게 느끼는지가 제일 중요해요."
주관적인 내 기준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큰 위로가 되었다. 선생님은 우울 점수 뿐만 아니라 수면, 소화, 불안도 같은 신체 변화까지 함께 체크하는데 전반적으로 다 높다고 하셨다. 보통은 이 정도의 절반 수준이 되었을 때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몸이 아프다 보니 정신과에 올 겨를이 없으셨을 거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오래 가는 병이 생기면서, 그 병으로 인한 우울증이 함께 생긴 경우일 수 있다고도 했다.
가장 기뻤던 건, 인지능력이 저하되었다고 느끼는 문제가 약을 먹으면 좋아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우울이나 불안보다도, 머리가 굳어버리는 느낌이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이 가장 절실했다.
"지금 인지 기능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부분은 우울증으로 인한 부분이 상당할 거예요. 뇌를 못 쓰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뇌가 다 있어도."
약을 먹으면 졸릴 수 있어서, 더 멍해질까 봐 마음껏 약을 먹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졸린 건 적응이 돼요. 그것보다는 우울증이 치료 안 돼서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훨씬 더 큰 문제예요. 치매와는 달라서, 우울증으로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거라면 우울증이 개선되면 나아질 수 있어요."
먼저 긴장과 수면, 두통, 어지러움 같은 것들이 좋아지고, 우울한 마음이 나아지고, 생각이 조금 덜 부정적이게 되고, 재밌는 것들이 다시 재미있어지는 건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든 버텨냈던 2025년의 봄, 그리고 여름이었다.
이제 무력해진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다른 종류의 약을 다시 먹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