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로이드와 메스티논을 반년 가까이 먹었는데도 큰 호전이 없었다. 매달 의사 선생님이 나의 눈 상태를 물어보고, 하루 중에 특별히 불편한 시간대가 있냐고 물어봤다. 그렇지만 항상 두 개로 보였고, 특별히 나아지는 것은 없었기 때문에 늘 대답은 비슷했다.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고, 다리를 일시적으로 절고 있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그건 중증근무력증 증상이 아닌 것 같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들었다.
아내의 지인이 비슷한 증상이 있었다가, 다른 병원 선생님에게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은 뒤 호전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이 병으로는 꽤 유명한 선생님이셔서 원래 이름을 알고 있던 분이었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고 얼마 간 질문한 뒤 이 병이 아닐 확률이 높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근무력증이고 하루 종일 복시가 계속 사라지지 않는다면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복시가 계속 사라지지 않는 건 사실이고, 불편함에도 생활하고 있는 것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별로 없었다. 반년 가까이 약을 썼는데 호전이 없다면 더욱 더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 병의 원인은 무엇인지, 어떤 병인지 물어봤지만 그건 솔직히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독한 약이니, 본인의 가족이라면 약을 쓰지 않겠다고 하겠다고 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병을 진단받고 기쁘다고 표현할 수는 없으나, 슬픔과 동시에 일부 안도가 되는 것도 있었다. 드디어, 증상과 원인을 알았고 원인을 알게 되었다면 해결 방법을 실행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고 공감받지 못했던 내 상태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어 일면 편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다시 원인 불명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다시 혼란스럽고 해결이 되지 않는 상태로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주치의 선생님께는 다른 의사 선생님 의견을 전하는 게 실례가 될 거 같아, 고민하다 주치의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약을 끊기로 했고 다시 검사를 하고 두 달 뒤에 만났다. 반복자극검사라고 전기 충격을 주고 반응을 보는 검사를 하는데, 이번 검사 결과는 음성이라고 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약을 끊은 2달 동안 호전되거나 더 불편해진 게 있는지 여쭤보셨는데, 약을 끊고 특별히 더 불편해진 것도 모르겠고 호전되는 것도 없었다. 본인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하셨고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고용량으로 약을 썼기 때문에, 더 쓸 수도 없고 다른 치료 방법을 적용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하셨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고 잘 쉬라고 하셨다. 또, 너무 화면을 많이 보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 지금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6개월 뒤에 다시 보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으면 바로 병원으로 연락 달라고 하셨다.
당장 방법이 없다는 말이, 6개월 뒤에 보자는 말이 이제부터는 나를 포기하겠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몰라서 처음에 약을 끊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의사 선생님도 찾아뵈었다. 선생님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3개월 동안 약을 끊었다고 말씀드렸고 더 나빠진 것도 좋아진 것도 없는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피로감 등은 더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러면 결국, 불편함은 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걸어오셨고, 버스도 타고 오신 거죠. 그러면 그냥 사세요."
그냥 살라는 말에 뭔가 반박을 하거나 질문을 하려다 그냥 말문이 막혀버렸다. 선생님은 오히려 신경학적 질환 가능성이 아닐 수도 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신경 질환은 생기게 되면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마지막으로 정말 증상이 계속 있고 불편함이 지속된다고 호소 했지만, 신경학 적으로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답만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래도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적 요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 번 관련 병원을 다녀오면 좋겠다고 했다.
다시 원인불명의 상태. 처음에 안과에서 받았던 진단지에는 "원인불명의 내사시"라는 당시에는 알기 어려운 진단명이 써 있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사시라는 뜻이었다. 원인을 알아야 뭘 해결도 할텐데, 현대 의학에게 버림 받은 기분이었다. 결국, 의학도 의사선생님도 특별히 어떤 도움을 주지는 못한 상태로 나만 남은 기분이 다시 들었다.
더 이상 매일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것도, 어쩌면 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분명 좋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들은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고, 앞으로도 호전은 없을 지 모른다는 생각과 의심이 다시 떠올라 한 동안 마음만 더 무력했던 것 같다.
아빠와 엄마는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올라가 내가 좋아지기를 기도했다. 작은 아버지는 월급을 마련해줄테니 두 달 동안 만이라도 지리산으로 내려와서 요양을 하라고 하셨다. 고모는 조카를 위해 바쁜 와중에도 밤새 가마솥에 고로쇠물과 북어를 끓여서 먹여주셨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가족들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스타트업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인을 파악하고, 원인을 제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 다른 하나는 성장에 도움된다고 판단되는 여러 행동들을 계속 실행하고 지속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쓸 수가 없게 되었으니, 두 번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약을 먹고 붓고 살찐 몸부터 다시 가볍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단 받고 약을 먹고 난 이후로 10kg가 조금 넘게 체중이 늘었고, 다른 건강 수치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다시 체중을 되돌리려고 노력은 했지만, 예전처럼 잘 빠지지도 않았고 몇 번이나 실패를 해서 의지가 좀 꺾였었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먹고 진행했다. 다시 엑셀을 켜고, 매일 몸무게와 먹는 것을 기록하고, 좀 더 건강한 것을 먹기 위해 노력 하고, 할 수 있는 한 걷고 뛰는 것도 시도해 보려고 했다.
작년에 병을 진단 받았을 때는 이렇게 관리하면 뭐하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시작만 해서 궤도에만 오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간의 데이터와 믿음이 있어서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달 조금 넘는 시간 다시 꼭 10kg를 감량했다. 아직은 그만큼 더 감량이 필요하지만 일단은 그 몸의 상태로 절반의 성공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 더 칭찬해 주고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아주 안 좋았을 때와 비교하면, 조금씩 다시 감량을 하고 걸을 수록 컨디션이나 몸이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현재와 미래가 나아질 방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