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녹아드는 순간
을지로의 한 카페, 주말인데도 한적하다. 모든 사람이 주말에는 다른 거리를 걷는걸까, 유독 추운 1월의 어느 날 사람들은 어디를 걷고 있을까. 유리 너머로 바라본 도시는 천천히 숨 쉰다. 카뮈는 도시를 관찰하는 제일 좋은 법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다들 언 몸을 녹이려 공간을 찾고 있다. 너무 가깝지도 않으면서 또 멀리 있지도 않은, 소속되고는 싶지만 구속은 싫다면 언제나 카페가 생각난다.
노란 조명과 햇살이 듬뿍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어제 내린 눈이 쌓인 거리 위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희미한 흔적을 남기고, 바람은 가만히 나무 가지 사이를 스친다. 안과 밖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이 순간, 나는 노트북을 열고 사진기를 옆에 둔다.
쓰려고 한 글을 뒤편에 놔둔 채,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았지만, 그 ‘아무것도 없음’ 속에서 하루가 천천히 시작되는 느낌이다. 햇살이 창에 닿아 글자를 비춘다. 글자 너머로 도시의 소음과 먼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스며든다. 잘 읽히지 않는 소설을 읽어보려 끙끙대곤 얼른 사람들이 있는 바깥으로 뛰어들고 싶어 나왔다. 그 속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왜 이렇게 사소한 순간, 따뜻한 빛과 고요한 공기 속에서 마음이 묘하게 울리는 걸까.사진기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본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시간의 결, 나의 결이다. 발걸음과 눈길, 햇빛과 그림자가 겹쳐 만들어낸 작은 질서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읽는다.
이 순간의 고요함, 그 안에 깃든 미세한 흔들림, 그것이 어쩌면 내가 찾던 하루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어제부터 계속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지만. 나는 다시 노트북에 손을 올린다.
오늘의 햇살과 창, 그리고 그 안에서 녹아 흐르는 나의 생각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도시는 계속 움직이지만, 나는 잠시 머무르며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