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시인 박노해를 만났다
종종 사람과 멀리 떨어지고는 싶지만 소속되고 싶다는 모순적인 마음이 생긴다. 그럴 때 주로 생각나는 곳은 카페다. 초록이 가득한 서촌의 한 곳이 생각났다. 전시장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동백꽃과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문장이 있던 곳.
내가 병원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타인들의 얼굴도 사실은 이토록 숭고한 사랑과 투쟁의 기록이 아니었을까.
2층 전시장에 걸린 흑백 사진 속, 수의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시인의 사진이 인상 깊다.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박노해 시인은 노동자를 위해 시를 썼고 사진으로 세상을 담았다. 누군가 그런 걸로 세상이 평화로워지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 반대편으로는 설산 아래 놓인 작은 찻잔 사진이 발걸음을 붙들었다. 시인은 작품에서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글이었다. 완벽한 타인으로 만나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그 찰나의 기록들, 세상의 평화를 담기 바라는 기록들.
가방 안에는 나를 위한 사진엽서 두 장이 담겨 있다.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길, 메시지를 던지는 건 박노해의 몫으로 남겨두고, 나는 나의 자리에서 촛불 같은 마음으로 글을 이어가려 한다.
이제 나는 다시 걷는다. 멈춰 서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간호사의 심장과 기자의 눈으로 차곡차곡 기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