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 3

09. 변수에 지지 않기

by 이단단

아침엔 시간이 많았다. 자취방 창가로 들어오는 햇볕을 보며 오늘 들어야 할 법학 강의와 외워야 할 한국어 문법들을 머릿속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내가 선택한 이 길 위에서, 계획은 나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지도다. 하지만 지도는 변수라는 이름 앞에 매번 구겨지고 만다.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오후에 발행된 내 기사를 확인했다. 서울 도서관에서 수어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걸 다른 시민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제 2외국어니 스펙이니 경쟁 스펙 리스트에 지겨워질때쯤 새로운 언어가 나에게 손짓했다. 숫자로 환산된 관심의 크기를 보며 마음이 출렁였다. 서평 때와는 사뭇 다른 낮은 조회수를 초조하게 보는 나를 보며, 수어라는 깊은 세계를 전하려 했던 내 진심이 어디쯤 머물고 있는지 자꾸만 되묻게 됐다. 그렇게 오전의 평화는 기사 속 숫자에 잠식되었고, 흘려보낸 강의 소리는 귓가를 맴돌 뿐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항상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상경 생활은 시간이 지나도 매일 낯선 파편들의 연속이다. 지원한 곳 결과에 마음을 졸이고, 공부와 노동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며, 때로는 스스로가 세운 계획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 어지러운 하루 끝에 누군가 건넨 "아좌좌"라는 다정한 인사 하나에 다시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일은 방 정리를 하려 한다. 책상 위에 흩어진 잡동사니를 치우듯, 오늘 계획대로 되지 않아 무거워진 마음의 짐들도 함께 비워낼 생각이다. 깨끗해진 공간에서 다시 화목토 스터디를 준비하고, 정직한 노동을 준비해 본다. 3월의 기사도 완성했고, 앞두고 있는 기사도 있어 마음이 풍요롭다. 정통 스트레이트는 아니지만 서평 아니라 다른 것도 썼다는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뿌듯했다.


완벽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이 좌절과 다정함의 파편들을 모아 다시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찬란하게 내리쬐는 햇볕 그 어딘가의 그늘을 바라보며,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걷고 있다.


오마이뉴스 송고 기사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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