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5 살얼음 맥주와 러브레터.
몇 주간 글다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창작한 글보단 그저 이미 나온 세상의 글들만 찾았고 읽어댔다. 그러다가 좋은 멤버와 언니를 만나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펼쳐 들고 그 글을 쉼 없이 적고 적었을 뿐,.
새해를 시작으로, 일 년 동안의 나는. 기록할 수 있는 종이를 발견하면 할수록 많이 사고, 또 여기저기 파편처럼 하루를 기록해놓는 작업을 무수히 많이 한다. 그러다가 무참히 부서져버린 조각들을 모으기가 귀찮아지면 차일피일 기록을 미뤄두고 멍하니 있는다.
남들이 보면 열심히 기록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기록은 많이 하고 있지만) 한 곳에서 진득하게 볼 수 있는 기록이 없으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이어리 하나로 겹겹이 쓰인 많은 하루는 빵처럼 원두처럼 부풀어 올라 좋은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 너무 얇고 넓게 벌려진 기록물들은 때때로 쌓인 먼지처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어제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났다. 집 앞에서 사람과 함께 맥주를 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나처럼 내 앞에는 부유하는 공기들 뿐이었는데, 어제 지인이 찾아와 술을 먹자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와 겨울의 서리 같은 살얼음이 담긴 생맥주를 짠 하고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드냐고 물어봤다. 비흡연자이지만 요즘 들어 진짜 담배가 당겨서. 나의 고민을 궁금해하고 털어내는 하소연을 같이 듣고 버려줄 사람이 없으면 이제 진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져서 그냥 그래서 담배가. 피고 싶어서 물어봤다.
그러면 지인은 톡 쏘는 오렌지 같은 새큼한 얼굴로 담배의 좋은 점을 나열해놓곤 했다. 그러다가 결국 말미엔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여다보며 ‘왜, 작가님 아무리 힘들어도 담배는 손대지 마리.’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댔다. 잔뜩 약 올려놓고 마지막에는 걱정해준다. 뭔가 어이가 없는데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이 왜 그녀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오늘도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려다가 만다. 집 앞 편의점 문을 서성대다가 그냥 집 앞 놀이터에 가서 누군가와 오랫동안 전화를 하고 모기에 뜯긴 자국을 슬슬 긁어대며 집까지 올라갔다.
담배는 피울 때의 문제보다 피고 나서의 문제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머리가 더 아파진다. 그러니 그냥 고민하기를 하루 더 미뤄버린 것 같다. 익숙하다 미뤄버리는 것.
사실 500 cc 두 잔에 올라온 취기 덕분에 빨리 집에 누워 자고 싶었다. 술이 취해서 올려다본 하늘은 동화 속처럼 아름다웠고 비현실적이었다. ‘The dig’의 ‘Jet black hair’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터벅터벅 집으로 올라오는 그 길은 참 눈물겨웠고 청량해서 좋았던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듯 우리 동네 거리를 한참이고 헤매다 집에 왔다.
나는 참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계절과 종종 반대되는 온도를 바라게 될 때가 있다. 이번 여름은 지나치게 뜨거워서, 어느 영화 속의 눈 내리는 영상을 보며 겨울을 떠올린다. 아직도 뜨겁게 남아있는 그날의 화상 자국을 새하얀 눈으로 덮는다면 넘치던 열기가 조금 알맞게 사그라들지 않을까…. 새로 생긴 주사 덕분에 편지지를 산 것 같다. 누구에게 써야할 지도 모르면서. 계절의 공기에 타박타박 걸음만 새겨가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낸다. 닿을 수 없는 먼거리에 살고 있는 불특정한 누군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