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것

by 희재

"대리님, 아까 OO에 계신 거 봤어요. 다음엔 저랑도 같이 가요."

저녁 회의 자리에서 팀 막내의 살갑게 다가오기 위한 말은 내게 새로운 카페를 찾아야 한다는 신호로 다가왔다. 사원증 걸고 회사 사람들과 아지트라고 생각했던 그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아찔함을 뒤로하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다음을 기약하는데 책 [질문 있는 사람]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나처럼 호들갑 떨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꾸준히 함으로써 은은하게 그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리저리 아무리 봐도 나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꾸준하고 은은하게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건 무엇인지 찾고 기록해 보기로 했다.


1. 글로써 마음을 표현하는 게 더 편한 사람
- 글쓰기의 계기에 대해 질문받으면 몇 가지 고정 답변이 있지만 글쓰기 워크숍을 하면서 알게 된 건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글은 나를 장점이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어떤 대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습관은 섬세한 묘사를 하는데 발휘된다. 상대방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한 아쉬움은 메시지로 대신할 때가 있는데 희한하게 작성하는 동안 상대방을 향한 나의 마음이 이렇게 컸는지 새삼 확인한다. (물론 조심스러워서 작성하고 발송까지 많은 갈등을 한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정리하다 보면 '이런 이유로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말은 하면 할수록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뒤돌아보지 않는 말을 하기까지 무수한 연습을 글로 할 때가 많다. 글의 빈 여백을 독자의 이야기로 채우는 것처럼 대화의 빈 공간을 메우는 식의 말이 아닌 서로의 호흡, 상대방을 살피는 시선 등 다양한 언어로 채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건 아마 글쓰기가 가진 가장 강한 힘이지 않을까.


2. 커피 마시러, 글을 쓰러 카페 간다면 거기?
- 혼자서 시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하다 보니 몇 가지 선택의 기준이 있는데 맛있는 커피, 직원들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는 인테리어, 소음이 있어도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다. 작년 연말, 포장만 했던 카페가 젊은 사람들의 공간이라고 느꼈는데, 예상외로 혼자 시간 보내기 좋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종종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방문한다.

"어? 아까 오셨죠?"
"아.. 어제요."
"아~ 죄송해요. 어제를 착각했나 봐요."
"항상 퇴근하고 오시는 거세요?"

사람과 공간이 익숙해지면 한 발자국 다가오는 것을 한 마디씩 덧붙이는 거로 표현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가까워지는 포인트로 삼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경우 낯선 반가움이 뚝딱거림으로 변할 때가 많다. '안녕하세요!'나 '내려주신 커피 맛있어요.'같은 가벼운 대화가 미션 수행을 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게임 속 퀘스트 같기도 하지만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이 공간이 오래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은 바닥을 보이는 빈 커피잔으로 대신한다.

'오늘도 맛있게 마셨어요.'


3. 내가 낯가림이 있다면, 누군가의 낯가림도 이해해야 한다.
- "사랑아, 밖에 누나 왔네? 집에 가면 누나 말 잘 듣고 알았지?"

중성화 수술 후, 회복을 마친 고양이를 데리고 가기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주간 진료가 끝날 시간이라 회복실의 소리는 꽤 크게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할 말만 하는 무뚝뚝한 수의사라고 생각했는데 예방 접종 이후 몇 차례 방문으로 처음보다 편해진 느낌이었다.

"아이 코 한 번 보실래요? 되게 잘생긴 코예요. 아이도 자기가 매력이 있다는 걸 알아서 걷는 것도 으스대면서 걷거든요?"

질의응답식 상담을 했던 첫 만남에서 아직도 어색하지만 먼저 아이를 칭찬하고 보호자와 눈을 마주치며 웃기까지 많이 발전한 것 같은 진료실에서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이 누나한테.. 어?"

간호사에게 이동장을 건네받고 수술 부위 확인을 위한 진료 예약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있는 줄 몰랐는지 '사랑이 누나'라고 말하면서 나오려던 선생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도로 회복실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많이 발전된 관계는 진료실 한정이라고. 아무리 수의사라도 고양이와 그 보호자가 낯설 텐데 말이다.


4. 나는 은은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느리다고 생각할 수 있다.
- 나는 마음을 주고받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느린 편이다. 대체 왜 사람과 관계에서 느린 건지 생각해 봤다. 알아가는데 신중하다 못해 조심스럽고, 상대방과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가깝게 다가갔다가 '우린 그 정도 사이는 아니다'라며 선을 긋지는 않을까에서 오는 걱정은 관계에서 소극적인 모습으로 만든다. 그래서 느리지만 오래 알아가면서 마음을 표현하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조급함을 느끼고 오해해서 돌아서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잃어가며 조급하게 가까워지는 관계는 희한하게 실수와 실망이 잦았다.

'한 발자국 다가가가면, 두 발자국 물러서는 사람'

어쩌면 상대방의 마음의 온도와 크기가 나보다 작은 것을 알게 되는 바람에 거기서 오는 서운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조심스러운 것 같다. 이제는 익숙해지고도 남을 자주 가는 카페이지만 여전히 출입문 앞에서 심호흡으로 긴장을 풀고 들어가는 나는 단번에 드러나지 않지만 많은 것을 은은하게 그리고 오래 애정한다. 그리고 각자 자신만의 속도대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책 [새벽과 음악]의 한 부분에 마음을 더해 응원한다.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외부의 상황이나 평가와는 무관하게 자기가 해나가려는 것을, 조급해하지도 초조해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만의 속도로 하루하루 꾸준히 해나가겠다는 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