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랑의 역사
제주를 다녀온 지 한참이 되었다. 올해만 들어도 벌써 몇 번이나 제주 여행을 계획했었지만 결국은 그만두었다. 무주에서 제주로 갈 수 있는 비행 편을 검색하다 지레 지친 면도 있긴 했지만, 그것보단 내 기분의 문제가 컸다. 꼭 그곳에 가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제주뿐 아니라 어디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전으로 일하러 가는 김에 여기저기를 들르거나 무주 안에서도 일단 나가서 하염없이 걷곤 했는데, 요즘은 별생각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수업하러 논산까지 차를 끌고 가면서 끝나고 어디라도 들러볼까 하다 그냥 집에나 가자로 정리하며 이런 생각이 했다. ‘내 방랑벽이 실종된 것 같아.’
어릴 적 나는 그다지 밖으로 나도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보통 우리 집이나 가까운 친구의 집에서 많이 놀았던 것 같다. 소풍이나 수련회 같은 학교에서의 야외활동이나 엄마 아빠와 교외로 나가는 경우를 기대하고 기다린 기억도 거의 없다. 조금 자라서 청소년 시기에도 학교와 집 이외의 장소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학교나 집 근처에 있는 만화방 정도만 흥미를 가졌고 친구들과 번화가에 나가는 것도 즐기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서 연애를 하며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이 기는 했지만 결국은 시내 영화관이나 술집으로 활동 범위가 좁혀지곤 했다. 걷는 것은 자신 있는 편이었고 체력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그땐 익숙한 활동 범위를 넘겨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이런 성향은 대학 생활 후반에 전환기를 맞았다. 학교를 휴학하고 엄마를 따라 보험 영업에 뛰어든 때였다. 당시는 많은 선후배, 동기들이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많이 떠나는 시기였는데 혼자 무슨 별난 생각이었는지 돈도 벌고 새로운 경험도 해보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곧 그 일에 굉장히 소질이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 났다.(사실 시작하기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더했다.) 일한다고 딱지는 붙여놨으나 바쁠 일이 없던 그때엔 남는 시간이 많았고 운전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던(영업한답시고 엄마 차를 끌고 다녔다) 터라 홀로 하염없이 많이 쏘다니기 시작했다. 일 때문에(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므로) 가보지 않았던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게 되었고 슬슬 쏘다니는데 탄력이 붙자 혼자서 여행이란 것을 해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는 같은 시기에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출근해서 그래도 일을 좀 해보고자 없던 의욕을 끌어올리던 아침에 자꾸만 새벽 감성으로 타지 생활의 힘듦을 토로했으므로 얼마 가지 못해 점점 멀어졌다. 마음도 싱숭생숭하니 마음이 더 밖으로 떴다. 그 시기가 바로 내 방락 벽의 태동기이다.
그 해 말 보험 영업과 중고등학생 과외를 통해 번 돈을 모아 40일간 유럽 여행을 떠났다. 이제 생각해보면 또 특이한 것이 여행을 계획하며 단 한 번도 친구와 함께 갈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방학이어서 동행을 구하려면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당연하게도 혼자 여행을 계획하고 혼자 떠났다. 떠나고 나서야 여행 온 한국인들을 만나면서(그땐 영어 울렁증으로 한인민박만 다녔다.) 누군가와 같이 가는 방법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혼자 다녀보니 혼자 다니는 게 나와 더 잘 맞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혼자, 가끔은 한인민박에서 만난 사람들과 부지런히 쏘다녔다. 너무 추워 도저히 밖을 돌아나 닐 수 없던 날에는 유레일 패스로 공짜 기차를 타고 3시간을 모를 곳으로 갔다가 모르는 곳에 내려 다시 반대방향 기차를 타고 3시간을 돌아오기도 했다. 대단한 여행기를 쏟아낼 정도의 다이나믹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 여행을 다녀와서 마인드가 많이 달라졌던 것 같다. 그리고 결심했다. 여기서 만난 멋진 언니들처럼 20대 말이나 30대 초에 일을 그만두고 또다시 장기여행을 떠나겠노라고.
남은 대학생활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웃사이더에 한량 기질이 있던 나는 학교 안에서도 밖에서도 혼자 많이 싸돌아다녔는데, 남들 다 바쁜 연구실 생활인데 나는 그 속에서 기어이 틈을 찾아 방랑하는데 썼다. 졸업 후 타지방에 취직을 하고 집에서 나와 살면서 돈을 벌어 더 적극적으로 돌아다녔다. 그때는 제주를 계절마다 갔던 것 같다. 남자 친구와 여행을 갈 기회가 생기면 나서서 계획했고, 여전히 혼자서도 어디론가 자꾸만 떠났다. 멀리 가지 않는 날에도 집 밖으로 자꾸만 나갔고 하염없이 걸었다.
퇴사 후 드디어 장기 여행을 떠났다. 방랑기 초반에 세웠던 인생 목표 중 하나를 달성하게 된 것이다. 총 6개월이 좀 못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예전처럼 부지런히 다니기보단 한 도시에 좀 길게 머물렀기 때문에 많은 곳을 다니진 않았지만 어디에도 정착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기간 내도록 여행자로 살았다. 5개월쯤 되었을 때 여행에 대한 슬럼프가 오기도 했었지만 마침 환갑을 1년 남긴 엄마를 기념 여행 겸 소환해 함께 여행하는 것으로 잘 마무리지었다. 여행 전 살던 전셋집을 비우고 친구 집에 잠시 얹혀살던 기간부터 여행과 결혼, 신혼여행까지 마무리하고 무주에 자리 잡을 때까지는 총 9개월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그 후로 내 안에 무엇인가 좀 바뀌었던 것 같다. 어딘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어딜 간다거나 요가 수업을 듣기 위해 떠났던 적은 있지만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돌아다니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일이 점점 줄었다. 그리고 최근 몇 개월을 돌이켜보면 동네 산책마저도 많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방랑의 시절은 가고 다시 집순이가 된 것인가?!
나에게 왜 이런 변화가 찾아왔을까 생각해보았다. 일단 방랑력을 한방에 너무 소진시켜서 다시 충전시키는데 오래 걸리는 것인 것은 아닐까 한다. 그리고 회사에 다니지 않고 프리랜서 강사 생활을 하며 가만히 앉아 업무를 보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일하는 시간 자체가 줄기도 했고.) 수업을 위해서 돌아다니는 것은 방랑이라기보단 목적을 가지고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가는 것이라 좀 다르긴 하지만 도시를 넘나들며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는 생활에서 방랑까지 더하고 싶어 지지는 않는 것 같다.(그리고 여행에 쓸 수 있는 돈은 줄어들었다.) 시골에 사는 것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고개를 들면 창을 넘어 산과 하늘이 가득하게 보인다. 도시에 살 때처럼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욕구가 그다지 차오르지 않는다. 또는 그냥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는데, 주변 지인들을 보면 이 나이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긴 이른 듯. 오히려 환갑이 넘은 우리 엄마나 그 친구들도 활발히 어딘가를 다니는 것을 보면 나이는 그다지 상관없는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방랑벽을 잃었고 그 사실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든다. 그 특성이 나를 규정하는 수많은 부분 중 두드러지는 한 가지라고 생각했는데 항상 함께하던 친구와 멀어진 듯 허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방랑하던 나의 모습에 미련이 남아 항공편을 검색해보거나 괜스레 어디라도 나서볼까 마음먹어보지만 결국 나서지 않게 된다. 발걸음은 다시 집을 향한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집에서 책을 보고 인형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던 그때로. 나의 방랑벽은 약 10년간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결국은 떠나간 지난 애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 만나서 그 또한 나의 일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었던 어떤 것. 실종되어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떠나버린 것. 그리고 나는 혼자인 나로 돌아온 것이다. 그 흔적을 마음에 남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