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만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가끔 멍하게 있다 보면 느닷없이 머릿속에서 과거 여행을 떠날 때가 있다.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을까.
괜히 한마디 덧붙여서 내 이미지 깎아먹은 건 아닐까.
나는 왜 그것밖에 하지 못했을까.
조금 더 열심히 할 수는 없었을까.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괜히 '으악'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이불을 발로 차보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그렇게 한참을 괴로워하다 보면 생채기를 남긴 채
과거 여행은 흐지부지 끝이 난다.
고3, 수능 100일을 앞두고 3월부터의 시간을 되돌아보는데
주말에 자율 학습한다고 학교에 나와서 운동장 산책만 하다가 집에 갔던 날,
인강을 듣겠다고 컴퓨터를 켜서 한 시간 정도 딴짓을 하다가 겨우 30분 강의를 들었던 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 계획표만 짜고 계획대로 공부하지는 않았던 날들이 생각나면서
이 쓸데없이 흘려보낸 시간만 잘 붙잡았다면 모의고사 성적이 이렇게 나오진 않았을 텐데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내게 해 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수능 폭망 하고 나서
신이 너에게 기회를 준거지.
시험 치기 100일 전으로 시간을 돌려서
과거로 온 거야.
그러니 너는 그냥 지금부터 잘하면 되는 거야.
후회할 시간이 어딨니.
그래. 후회로 괴로워한다고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오답노트를 쓰듯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하고 해내면 되는 것이다.
운동장 산책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면, 산책하는 시간을 줄이고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된다.
딴짓하느라 정작 인강을 듣지 못한 게 후회되면 인강을 듣지 말든지 다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한동안 면접 준비를 했던 때를 떠올리며 몸서리치게 후회를 했었다.
책을 좀 더 읽었다면 답변하는데 도움이 됐을 텐데.
시간관리를 좀 더 잘했다면 더 많은 것들을 하 수 있었을 텐데.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현장감각을 익힐 수 있었을 텐데.
모의면접 스터디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면접장에서 면접위원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마치 이것들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진 것처럼 아쉬워하며 자책을 했다.
그 과정이 유쾌했을 리가.
모의고사를 치고 틀린 문제를 다시는 틀리지 않기 위해 오답노트를 작성하듯이
그때 그 상황에서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답노트를 쓴다고 한들
이제 나에게는 다신 면접을 볼 기회가 오지 않는다.
하지만 '태도'는 남는다.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자 하는 마음.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넓혀가고자 하는 의지.
이것저것 재지 않고 행동해야겠다는 다짐.
어떤 활동이든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는 마음가짐.
상황과 대상에 맞는 말을 하기 위해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깨달음.
실패했던 순간의 후회를 모아서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말자 다짐해본다.
꼭 면접 준비를 했을 때의 상황뿐만 아니라
모드 후회의 순간을 자책으로 끝내지 않고 오답노트를 만들어서
앞으로 다가올 순간들을 후회 없이 보내보자 생각하며
어찌 됐든 예전의 나 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때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한 숨 돌리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는 아이의 말을 잘 들어줘야겠다.
그때 내가 '안된다'며 못 박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들어보고 내 사정을 잘 설명했다면 좋았을 텐데.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생각을 먼저 해야겠다.
기분 전환한다며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충동적으로 사지 않았다면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정말로 필요한 건지 잘 생각해보고 물건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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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주식을 사지 않았다면..... ^^;;;)
매일 저녁 일기를 쓰면서 여전히 후회를 한다.
이전보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단순히 후회를 하며 자책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내 인생의 오답노트를 써본다는 것이다.
이런다고 앞으로 '정답'의 길만 걸을 거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은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