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합격했어!! 진짜 고마워. 나 입과 하기 전에 한 번 보자.'
'걱정 많이 하더니 합격했구나. 축하해. 너는 될 줄 알았어. 나도 곧 합격해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말이야. 너도 다음 면접에서는 합격할 수 있을 거야.'
항공사 면접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복장은 어떤 게 좋은지 물어보던 친구가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할 일이다. 축하할 일이지만 마음이 썩 좋기만 하지는 않았다. 준비한 시간과 비례해서 합격여부가 갈리는 것은 아니라 해도 두어 달 준비하고 합격한 친구를 보니 괜히 기분이 멜랑꼴리 했었다.
친구뿐만이 아니다. 첫 지원에 합격한 사람들, 친구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지원했는데 친구는 떨어지고 정작 아무 생각 없던 사람이 합격한 이야기들을 보면 한없이 작아졌다. 기약 없는 날을 기다리며 정작 원하는 것을 손에 얻지 못한 나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사람이구나' 자책하며 그들의 운 좋음을 부러워하곤 했다.
'그래,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나는 그들의 삶을 알지도 못하면서 내 마음 편하자고 그들의 성과를 '운좋음'으로 매도해버렸다. 하지만 안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 자리에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바른 자세로 서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나 같은 사람은 '연습'을 통해 만들어가야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굳이 승무원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연습했다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면서 몸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을지도. 면접 예상문제를 보고 머리를 쥐어짜 내서 답변을 생각해내야 했지만, 이미 예전에 본인의 장단점 혹은 서비스 마인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사람이라면 면접위원들 앞에서 떨지 않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태도가 몸에 베였을 것이다.
그러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의 모습을 갖추었기에 하루에도 수백 명의 지원자들을 보는 면접위원들의 눈에 들어서 첫 지원에, 준비한 지 한 달만에,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합격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필요 이상으로 부러워할 필요도, 초라해질 필요도 없다. 될만한 사람이 된 것이니까. 나도 나의 시간 속에서 노력하면서 경험을 쌓고 있을 테니까.
치열하게 면접 준비를 했던 것이 벌써 십여 년 전이다. 그동안 육아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다른 직종의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면접을 여러 번 봤었다. 그때마다 나는 면접이 두렵지 않았다. 이미 면접장에서 어느 정도 나올법한 질문들에 대답할 것들을 정리해서 누르면 자동으로 나올 정도로 연습했던 시간들이 있고, 자세나 말할 때 표정 관리하는 것들을 배웠기 때문에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몸에 배어있긴 하다. 면접 직전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정리하면 그 시간이 별로 긴장되거나 두렵지는 않다. 실제로 내가 합격하고 싶었던 곳에 면접을 봐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운이 좋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했던 일이 아니야. 진짜 너무 힘들다. 이런 일을 하려고 대학공부를 했나 싶어'
교육을 끝내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가 힘들어하며 내게 하소연을 했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한 친구를 보니 합격했을 당시 기뻐했던 얼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합격이 끝이 아니다. 그제야 진짜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는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환상'만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천직이라며 즐겁게 비행을 다닐 거라 상상했지만 합격하고도 적응하지 못해 금방 그만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어쩌면 합격이 안된 이유가 이 때문이 아녔을까 하는 망상을 하기도 한다. 면접위원들은 그게 빤히 보였던 거지.
그 친구는 아직까지 비행을 하고 있다. 나도 내가 있는 곳에서 미련을 털어내는 글을 쓰면서 별일 없이 살고 있다. 누군가는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라 하는데, 이제는 승무원이 되지 못하지만 즐겁게 살 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적어도 '승무원이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재밌게 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