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내는살림 Jul 05. 2022

장래희망의 역사

무엇이 되고 싶니? vs 어떻게 살고 싶니?

      기억이 나는 가장 오래전에, 장래희망 칸에 '선생님'을 적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내가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선생님은 빨리 써서 내라 하시고 당장 교실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 직업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생각나는 것은 피아니스트. 당시에 개인 레슨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고, 잘 치진 않았지만 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에서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를 치는 선생님의 모습이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번째 장래희망은 회사원이었다. 이때쯤 현실을 자각했지 싶다. 나는 피아노를  치지 못하고, 피아노 연습하는 것이 즐겁지 않으니 피아니스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주를 잘 하기 위한 노력도 하기 싫었다. 가장 무난하면서 현실적으로 이룰  있을만한 꿈이 무엇인가 생각해봤더니 아빠의 직업이었던 회사원이었다. 중학교 입학할 때까지 딱히 장래희망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고, 학교에서 조사를  때마다 깊은 생각 없이 회사원을 적어 넣었다.


      장래희망에 큰 감흥이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생각해서'가진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당시 과학 과목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주변에 연구소들이 많아서 멋있게 보였나 보다. 과학동아를 읽으면서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과학이야기들을 접했고 흰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대학도 관련된 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면서 과학자에 대한 환상이 깨졌고 내 능력에 대한 한계도 깨달았다.


      매번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 지루했던 내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스케줄 근무를 하는 항공승무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비행마다 다른 승객들을 모시며 세계 곳곳으로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당시 집-학교-연구실을 반복해서 다니던 내게는 꿈꾸던 근무환경이었다. 유니폼을 입고 캐리어를 끌며 ID카드를 목에 걸고 공항의 직원 전용 게이트로 오가기 위해 꽤나 진지하게 '노오력'을 했었지만,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아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으로 자리 잡았다.


      선생님, 피아니스트, 회사원,  과학자, 승무원이라는 장래희망을 거쳐서 전업주부가 된 지금.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바꿔서 나에게 되묻는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자유로운 삶을 꿈꾸면서 승무원이 되길 바랐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나를 가꾸며 꾸미고 싶었고 돈을 벌어서 가족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면서 가끔은 무슨 날이 아니더라도 좋은 선물 하나씩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었다.


자유로운 삶.
다양한 경험
누군가에게 멋있게 보이는 것
돈을 버는 것
가족들에게 혹은 지인들에게 좋은 선물을 하는 것

승무원이 되지 못한 지금,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굳이 승무원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인 걸까?

물론 유니폼을 입지 못하고 비행기를 정가로 돈 내고 타야 하고 탑승수속을 위해 긴 줄을 서야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굳이 승무원이 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전업주부로 육아와 살림을 하며 틀에 박힌 시간에 출퇴근을 하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스케줄을 짜서 하루를 보내고 있고, 친구들이 부를 때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제한된) 자유를 가지고 있다. 승무원만큼 자주는 아니더라도 매년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곳을 다니고 있고, 아이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다니며 나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원하면 가족들의 배려로 나 홀로 여행도 가능... 할 것이다.


      돈을 많이 벌진 못하지만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며 틈틈이 하는 아르바이트로 조금이라도 벌고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재택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마음을 먹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명품은 아니더라도 기념일에 가족들에게 작은 선물과 용돈을 드릴 수 있는 넉넉함이 있고 가끔은 좋은 것이 있으면 내 것을 사며 시댁 어른들과 친정부모님께 드릴 것을 같이 주문해서 드리곤 한다.



      

      삼십 대 중반이 된 내게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이는 없다. 그런데 꿈 없이 살기에는 남은 삶의 시간이 너무나도 길다. 마음만 먹으면 대학원을 가서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자격증 공부를 해서 새로운 직업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될 수 있겠지만 그전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내리려 한다.


     앞으로 장래희망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꿈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자고. 어떻게 사는지 생각해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p.s.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학교에서 적어온 것을 보니 장래희망이 '배구선수'라고 한다. 내가 종종 배구경기를 집중하면서 보는 것을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왜 '배구선수'가 되고 싶은지 물어봤더니 공놀이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공놀이하는 것이 즐거워서 배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는 아이에게 공으로 할 수 있는 스포츠의 종류를 설명해줬다. 농구, 야구, 당구, 축구 등등등.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기에는 시기상조인 것 같아서 그저 주말마다 공을 가지고 나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


p.s.2 6살인 둘째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한다. 발레리나가 입는 옷이 예뻐서라고. 주말에 옷가게에 가서 발레리나가 입을 법한 옷을 사 입혔다. 그리고 문화센터에서 하는 발레수업에 등록을 했다. 둘째는 꿈을 이뤘다고 볼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최선을 다했다는 거짓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