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 넌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1순위로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의 승무원 면접은 서류면접, 1차 실무면접, 2차 임원진 면접, 인적성검사, 3차 최종면접의 순서로 이뤄졌다. 3차 면접은 준비하던 때에 갑자기 생겼던 것인데 지금은 채용과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물론 회사마다 면접 과정은 다르다)
우선 서류전형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 말고는 크게 까다로운 것은 없었다. 토익시험 점수의 커트라인이 다른 회사에 비해서 높은 편이 아니었고, 경력사항에 적을 것은 면접을 앞두고 급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물론 여기 한 줄 채워 넣기 위해 적당한 활동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면접 준비!
승무원 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한 다는 것은 내겐 면접 준비를 철저히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무슨 질문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전 면접에 나왔던 질문들을 모아서 예상 답변을 만든다. 무릎이 붙는 바른 자세로 서서 면접위원들의 질문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우리나라 항공사는 외적인 부분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메이크업과 헤어, 면접복장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생겨버린 얼굴, 팔다리에 있는 흉터 자국도 신경 쓰여서 지우는 방법을 찾아보곤 했었다.
항공사의 연혁, 어떤 노선을 운항하는지, 어떤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혹은 제공하면 좋을만한 서비스는 무엇이 있을지를 비롯한 회사에 대한 공부는 물론이고 아직 일해보지도 않았지만 기내에서 생길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도 미리 생각해야 됐다.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단점은 최대한 단점같이 않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심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을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하는 '연습'을 했다. 웃으면서 말하는 연습이라니..!!
답변 내용에 신경 써야 할 뿐만 아니라 외적인 부분도 중요했다. 키가 작아서 (사실은 작은 편도 아닌데,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작은 키였다) 신고 걸어도 편한 높은 구두를 찾았어야 했고, 체형에 맞고 이미지에 어울리는 블라우스 디자인을 찾느라 디테일이 각기 다른 화이트 블라우스 4~5벌을 입어보며 나에게 꼭 맞는 것을 찾아갔다. 까무잡잡한 피부도 화사하게 보일법한 색조화장의 결을 찾는 것도 중요했다. (결국 메이크업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질문 몇 개로 끝나는 간단한 영어면접을 위해서는 영어회화 학원을 다녔다. 영어는 꼭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써먹을 수 있을 테고, 합격해서 일하면서도 쓰일 테니 미리 공부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김칫국을 마시면서.
이렇게 입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각했던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얘기한다.
엄마가 보기에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아니... 나는 사장이랑 회장님 신년사며 인터뷰 기사까지 찾아보면서 회사 공부를 하고, 면접스터디 일정을 잡아서 매주 연습하고 있는데?! 영어학원도 얼마나 열심히 다니는데 내가.. 승무원들이 쓴 칼럼을 읽어보며 간접 직업체험도 하고 있는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니! 하필 저 말을 들었던 시점이 대낮에 침대에 누워있던 때라 할 말은 없지만 친정엄마는 그 순간만을 보고 충동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설마... 피부결도 중요하니 피부과 시술을 받으라는 엄마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겠지?! )
1년간의 나의 노력은 입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승무원이 되지 못한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안된 것일까? 그때의 나의 노력은 최선이 아녔을까? 의미없는 것을 최선이라 착각하며 제자리에서 날갯짓을 한 것은 아니였을까?
솔직히 이렇게 최선을 다한다고는 하지만 가끔 힘이 빠질 때가 있기도 했다. 승무원 면접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던 친구가 2~3개월 바싹 준비하더니 처음으로 지원한 회사에 덜컥 최종 합격을 해서 비행을 시작했다. 합격후기를 읽어보면 토익점수가 낮고 별다른 경험이 없는데도 합격했다는 글이 수두룩했다. 물론 칠전팔기 정신으로 도전 또 도전하다가 비행을 시작하신 분들의 후기를 보면서 나도 이렇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합격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나의 노력은 최선을 다한 노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1년 하고 다른 길로 갔지만, 거기에 6개월의 시간을 더했으면 합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다. 애초에 나에게 어울리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도 안됐을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결과와는 상관없이 돌아봤을 때 '나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보다 더 노력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아닐까 하는 나름의 정의를 내려봤다. 여기에 비춰봤을 때 나는 어땠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면접 답변을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하는 것들이 있긴 있지만 그때 당시의 내 심정으로는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 '여기서 더 어떻게 하지!' 억울함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상어는 아무리 노력을 다해도 강아지처럼 육지를 뛰어다니지 못한다.
사자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새우처럼 바닷속을 헤엄치지 못한다.
저마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말에는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지만 이루지 못한 꿈을 받아들이는데 위로가 되기는 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말이다. 따져보면 꿈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도 아니다. 면접 준비하면서 읽었던 책을 통해 잡다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독서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면접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했던 답변들이 남아서 다른 회사에 지원하는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면접을 볼 때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긴장하지 않고 잘 대처할 수 있었다. 일할 때 써먹으려고 공부했던 영어 덕분에 해외봉사를 갔었을 때 영어로 소통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고,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고.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최선을 다하기 전에 결과를 알 수 있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능력은 나에게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모든 경험을 엮어서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몫이라 생각하니 어떤 일이든 허투루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좋은 결과를 내면 좋겠지만 좋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더라도 말이다.
얼마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불행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생각해보면 불행이 아니였고
그때는 성공했다 생각했지만 지금생각해보면 성공이 아니였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것들이 더해졌을 때,
결국엔 나에게 좋은 것들이 남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