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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살림 Jun 22. 2022

미련(가득)한 꿈을 보내려 합니다.

(프롤로그)

      항공기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공부도 잘하고 뭐든 자신감이 넘쳤던 대학 선배가 유명한 항공사의 승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그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었던 터라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근무환경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한 달씩 스케줄을 짜서 일하기 때문에 남들 쉴 때 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조사에도 잘 참석하지 못할뿐더러 시차 적응 때문에 체력에 무리가 가서 마냥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이런 직업의 어두운 면이 눈에 들어왔을 리가 없다.

 

      그때의 나는 마음먹어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중학생 때, 전교 200등 언저리에 있던 내가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 처음으로 치른 시험에서 전교 4등을 했었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상을 받고 졸업을 했었다. 경쟁률이 높았던 고등학교 방송반 오디션도 어려움 없이 합격했었다. 승무원도 쉽게 될 줄 알았다. 웃는 거 하나는 자신 있었고, 면접 답변도 순발력 있게 대답하면 될 줄 알았다. 마침 경험 삼아 처음으로 지원했던 LCC 항공사에서 어렵다던 서류통과를 하고, 1차 면접에 통과를 했다. 이때만 해도 덜컥 최종 합격을 해서 1순위로 들어가고 싶었던 대형 항공사에 못 들어가면 어쩌지 걱정을 했었다. 사실 '경험 삼아 지원했다'는 이 표현도 웃기다. 입사 면접을 경험 삼아 보다니!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경험 삼아 본 면접이었다. 그만큼 건방졌던 거지...


      내 걱정에 신께서 '걱정마라'라고 응답해 주신 걸까? 2차 면접에서 탈락을 했다. 탈락의 아픔은 쓰지만 원래 가고 싶었던 1순위 항공사가 아니니까! 다음에 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항공사 공고가 뜨자마자 열심히 지원서를 냈다.


이번에는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아...... 불합격

그래, 면접 경험을 좀 쌓았으니 이번엔 비행할 수 있겠지!.... 불합격

승무원 수가 모자라서 엄청 많이 뽑는다니까 내 자리 하나는 있을 거야!..... 불합격

실무면접 여러 번 떨어졌다가 극적으로 합격하신 분의 수기를 읽어보니 아직 희망은 있어... 불합격.

'아니! 신이시여! 이제 걱정 안 하니까
'합격'의 목걸이를 걸어주실 때가 되지 않았나요!!


      

      그렇다. 나는 승무원이 되지 못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도 많이 해서 유니폼을 입고 카트를 끌며 기내식을 나눠주는 꿈을 여러 번 꿨지만 현실은 좌석에 앉아 소심하게 '비빔밥 주세요'라 말하는 승객일 뿐. 더 이상 취업준비만 할 수는 없어서 외국에 봉사활동도 다녀왔다가(승무원이 되는 데에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에) 돈을 벌기 위해 잠시 일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때,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다른 일을 시작했었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나이는 먹었지만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활활 타오르던 열정의 잔불이 남아있던 때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 미련하게 그 꿈을 붙잡고 30대 초반에도 신입으로 비행을 할 수 있는지 검색을 했었다.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꿈을 보내줄 준비가 안되었기에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이제는 확실히 안다. 노력해도 승무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아직도 잔불이 남아있는지 하늘에 있는 비행기를 볼 때,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는 승무원을 볼 때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다. 요동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 시절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글을 쓰려한다. 소중했던 꿈을 지금이라도 잘 보내주기 위해서.


      줄줄이 불합격 통보를 받아 우울해하고 있을 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로 위로해주는 선배가 있었다. 솔직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열리지 않은 그(!) 문을 열고싶었으니까. 어찌됐든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 10년을 산 지금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열릴때까지 끝까지 버텨서 (부수더라도) 열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해보기도 하지만 역시나 부질없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꽃길이라 믿고 살아가는 수밖에. 여우는 끝내 먹지 못한 포도를 신포도라 여기며 돌아섰지만, 나는 먹지못한 그 포도가 여전히 달콤한 포도라 생각한다. 단지 다른 곳에도 달콤한 포도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길을 돌아선 것 뿐이다.


      지금, 달콤한 포도는 아니지만 적당히 맛있는 포도를 먹으며 살고있다. 그리고 달콤한 포도를 찾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열어야하는 문을 찾았을 때, 그때는 열고싶은 문을 잘 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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