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찬란한 생일

by 봄봄

내 생일은 입춘이다. 봄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그 이름도 설레는 입춘.

올해 생일은 조금 더 뜻깊게 보내어 잠시 닫아두었던 브런치를 다시 열게 되었다.


몇 주 전 마침 함께 일하는 선생님이 근무일정을 바꾸기를 희망하셔서

생일에 야간근무를 하고 싶지 않았던 터라 야간진료를 다음날로 옮기고, 생일에는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하기로 했다.


남편도 같이 휴가를 맞춰서, 둘이 오붓하게 쇼핑을 하며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좋아하는 뷔페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계획을 세워놨었다.


그렇게 근무도 조정하고, 식당 예약도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맞이한 생일.

전날 밤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둘째 아이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왈칵왈칵 쏟아내는 토를 치우고 괴로워하는 아이를 달래며 밤을 지새우고 멍하게 생일 아침을 맞이했다.


아이들이 커서 금세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남편도 나도 오늘 일정을 그래도 강행해 보자며

생일선물로 받은 백화점 상품권 한 뭉치와 뷔페 식사권을 챙겨 집을 나섰다.


둘 다 출근 한 사이 둘째는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증상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결국 남편이 급히 집에 가서 아이와 소아과에 가보니, 노로 바이러스 감염이었다.

수액을 맞고 조금 살아난 아이를 집에 올려두고, 남편과 차에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마음속으로 눈물이 났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밖으로 눈물이 잘 안 난다. 속상하고 슬플 땐 그냥 속으로 눈물이 난다.


원래 생일을 이렇게 챙기지는 않았다. 아이와 남편 생일에는 집안을 꾸미기도 하고, 깜짝 파티를 열기도 하고, 미역국도 꼭 챙겨서 생일 밥상을 차려주지만, 어쩐지 결혼 후 내 생일은 그냥 그렇게 넘어가졌다.

굳이 이번 생일을 이렇게 준비한 것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힘든 마음에서 벗어나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지난해는 유독 버겁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번아웃을 학술적으로만 배웠지, 몸으로 느낀 건 처음이었다.

한두 시간씩 자면서 환자를 보고 공부를 하던 전공의 시절도 잘 버텨냈고

아이들이 더 어릴 때 토끼잠을 자며 육아를 하고, 파트타임 근무를 하고, 이유식을 만들어 낼 때도 대부분은 꽤 좋았다.

그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내고, 내가 숨 쉴 구멍을 찾고, 힘들지만 행복한 일상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 뿐 아니라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사는 삶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크면 조금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은 아이의 빠른 사춘기로 오히려 더 힘든 국면을 맞이했고, 시아버님을 보내고 그 자체의 슬픔뿐 아니라 혼자 남겨져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님을 지켜보는 일과 연로해진 몸으로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나의 부모님을 보살피는 일까지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몸과 마음이 분주했다. 글쓰기도 중단하고, 나 자신을 사는 것 보다 다른 역할들을 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이런 일들이 쌓이자 몸이 먼저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했다.

잦은 감기로 고생하다가 성대 부종이 와서 노트북으로 타이핑하며 상담을 하기도 하고

편두통으로 눈앞에 물결이 생겨 화면이 잘 안 보여 가까스로 진료를 이어가기도 했다.

잠을 열 시간씩 자도 일어날 땐 몸이 땀에 푹 절어있고, 종일 피곤했다.

이래 봬도 멘탈 관리의 전문가 아닌가 하며 수영을 시작하고, 러닝을 하며 회복될 길을 도모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역효과였다. 아슬아슬 남아있던 체력은 아예 방전이 되어 출근길 지하철 3-4구간을 서있기도 힘들었다.

몸이 무너지고 마음도 같이 따라 침잠했다.

그렇게 나는 번아웃의 세계로 가고 있었다.


새해가 되며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자기계발서를 왕창 주문해서 읽고 흡수했다.

생일도 이전과 달리 좀 더 스페셜하게 보내고 몸과 마음을 끌어올리는 기회로 삼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계획을 했던 것이었다.

차 안에 멍하니 있는데, 이런 내 상황이 너무 애처로웠다.

이전 같으면 생일이 뭐 별 건가, 계획은 틀어질 수 있지 하며 털어버리고 일어났을텐테, 한번 약해진 내 몸과 마음은 작은 스트레스에도 무너졌다.


모처럼 준비한 이벤트가 틀어진데 대한 슬픔인지

이걸로 또 한 번 힘을 내보려 했는데 그게 틀어져서인지

내 가방 안에 들어있는 꽤 많은 액수의 상품권들과 묘하게 동떨어진 나의 우울한 감정 때문인지

내 마음은 깊은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 상황이 웃기기 시작했다. 왜 우울해하고 있는 거지? 아이 아픈거 말고 큰 문제도 없는데, 이렇게 계속 무기력해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심각할 거 없잖아? 다시 나를 챙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즐겁게 살아보자. 하고 싶은 글쓰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더 채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역설적이게도 바닥을 찍고 나자 번아웃이 끝났음이 느껴졌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고 들어간 집에는 또 다른 구토를 시작하는 첫째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엄마의 변화를 예견한 건지 아이의 기분 좋은 생일 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이번 생일을 가장 좋아할 것 같아”


마트에 간다던 남편은 조그만 케이크를 하나 사서 나타났다.

계획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서 더 찬란한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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