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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Dec 23. 2020

그렇게 북어게인은 시작되었다

귀하게 모시고 아꼈던 세월이 가득한 책을 타인의 삶에 입양시킬 때

'북 어게인'이라는 콘셉트를 정한 것은 올해 여름, 브랜드 레퍼런스에 축나는 리서치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세상에는 오만가지의 브랜드가 존재하며, 그 존재 이유들은 각기 의미와 재미 그리고 때로는 돈과 명예를 동반하는 재미있는 프레임이 되기도 하며, 나 자신까지 함께 쪼그라들고 오그라드는 그런 어려운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에 대한 무한 후회를 번복하기도 한다. 



왜 우리는 '북어게인'이라는 콘셉트를 시작했을까- 



라이프, 빈티지, 리사이클, 유즈드, 쉐어라는 거침없이 툭툭 건드리는 키워드 안에는 항상 '스토리'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기존에 자신 있던 잡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변화하고, 사람이 성장하고, 코로나가 찾아오는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똑같은 프레임에 컬러만 다르게 입힌 브랜드를 또 만들어낸다는 것이 브랜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끼는 사람으로서 굉장한 회의감이 밀려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스토리로 풀어낼 수 있는 무엇을 기다리다 정말 아끼고 아끼는 영화인 '시네마 천국'을 다시 감상하며 그날 밤 토토의 손에 쥐어진 그 필름의 잔상을 밤새 꿈꿨다. 알프레도와 토토가 없었다면 아무런 감흥과 감동이 없었을 역사 속의 필름, 그 스토리가 지닌 기억과 힘, 추억에 대해 '마치 내가 알프레도가 된 것처럼' 그렇게 토토를 그리워했다. 


영화 '시네마 천국' 중



이러한 잔상으로 한껏 붕 뜬 몇 주를 사는 직장인의 삶은 고단하고 피곤했다. 아침이면 아이 밥을 차려주고, 회사에 출근 후 정신과 신체를 대동 단결하며, 오후에는 졸지 않기 위해 고단히도 간식을 비워내고, 저녁엔 다시 육아 출근을 감행하는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이걸 임무라고 생각하는 철저하게 세뇌당하는 자의식에 대해 가끔 기염을 토한다) 내 일상에서 왜 나는 토토의 기억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을까? 




#추억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기억이 있다. 12살, 언니 손을 꼭 잡고 미국행 비행기에 단 둘이 올랐던 기억,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뉴저지 페리에서 바라보았던 감동, 그림으로 꿈을 그려내던 미술시간, 부모님께 저항했던 고등학생 시절… 울지 못해 웃는 지금은 그냥 '그땐 그랬지'로 포장되는 간절하고 괴로웠던, 사무치게 행복했던 그 씬들이 합쳐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보잘것없는 챕터를 연결시켜주던 '책'들이 항상 있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유학과 취업, 독립과 결혼을 거치며 손때 묻은 책들이 모두 사라졌다. 아주 중요한 책만 챙기고 남겨 지금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켜켜이 쌓인 먼지들과 함께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걸출한 변명만 남은 지금.... 갑자기 토토가 말을 꺼낸 듯... 무엇인가가 들려왔다.  



'잠든 책을 꺼내봐'


문득 떠오른 생각에 아이디어의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미로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한 경험, 귀하게 모시고 아꼈던 세월이 가득한 책을 내 추억과 함께 타인의 삶에 입양시키는 것은 어떨까. 토토가 알프레도와 함께 쌓아 올린 시간처럼..... 소심하게 접힌 페이지, 가끔은 과감하게 끼적인 구절이 타인에게도 공유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스토리의 전개가 아닐까? 




"추억이라는 가치, 이야기의 공유 그리고 본격적으로 책이 모아지면 
그 땐 큐레이션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겠어"


그렇게 북어게인은 시작되었다.



- 보니가 미로에게 쓰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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