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리어카 <상>

by 벗곰

‘어르신, 아드님들 다 어디 갔어요?’

‘우리 애기들? 미국 갔어. 미국 유학 갔어.’



1.

시장의 새벽은 분주하다. 자신들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각, 자신들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알면서도 누군가는 기꺼이 일찍 일어나 생의 문을 연다.


이곳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아침을 시작하는 이들 중에는 ‘김 할머니’도 포함된다.


그녀는 엄밀히 말하자면 시장의 정규 직원은 아니다. 상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이곳의 부속품이다. 이 작지만 정밀한 세계의 작은 부속품.


김 할머니는 폐지를 줍는다.


그녀는 이 재래시장의 유명 인사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그녀를 안다. 그녀의 구부러진 등과 누추한 옷차림, 누더기를 겹쳐 꿰맨 듯한 손으로 힘겹게 이끄는 그녀의 리어카 역시.


더불어 그녀의 비밀조차도.


김 할머니는 사실 가난하지 않다. 그녀는 재산을 제법 갖고 있다. 이 시장에서 약간 떨어진 번화가에 자리 잡은 이층 빌라 한 채가 김 할머니의 소유다.


물론 김 할머니는 이 빌라에서 생활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다들 놀란다. 그 비싼 집을 두고 도대체 왜 폐지를 줍고 돌아다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상인들이 지나가는 그녀에게 농담 삼아 말을 건다.


‘아유 할머니 그 집 뒀다 뭐해요. 팔아서 좀 써요. 죽기 전에 갖고 갈라 그래? 팔아서 좀 쓰고 편히 살아.’


김 할머니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대꾸한다.


‘그 집은 우리 큰아들 집이야. 우리 아들 결혼하면 신혼집으로 줘야 해.’


2.


그녀의 첫째 아들은 제법 공부를 잘했다. 김 할머니는 첫째 아들이 자신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늘 생각했다. 오래전 당시 그녀는 야간학교를 졸업했고 공장에 취직했다. 그의 남편은 그 공장의 작업반장이었다. 둘 다 돈이 없었다. 둘 다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그래서 친척들을 불러 모아 놓고 같이 사진 한 장 찍지를 못했다. 그러나 둘은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다.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첫째 아들을 낳았다.


그 당시 그녀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었다. 자신도 그런 옷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둘째가 생겼다. 첫째를 돌봐야 했고 배가 불러와서 드레스를 입을 수 없었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고 아이가 또 태어나자 너무 바빴다. 둘째 아들을 낳고 남편은 처음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그녀는 포대기에 싸여 누워 있는 갓난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그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 직감이 들었다. 눈물이 흘렀다. 아기가 미웠다. 저 쪼글쪼글한 얼굴을 좀 봐라, 어째 그리 제 아비를 쏙 닮았을까. 꼬집을 구석도 없는 작은 아기가 벌써 미웠다.


그녀의 큰아들은 공부를 제법 잘했다. 무슨 일이든 책임감 있게 알아서 했다. 스스로 숙제도 할 줄 알았고, 책가방도 챙겼다. 남편은 결혼한 지 몇 년 지나자 직장도 그만두었다. 수시로 가출을 했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면 밥상을 발로 걷어차고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 그녀는 대들었다. 대번에 손찌검이 날아들었다. 아이들이 울어댔다. 엎어진 밥상 옆으로 쏟아진 국그릇이 방구석에 뒹굴었다. 화가 나서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뒤에서 남편이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그녀는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 위로 발길질이 쏟아졌다. 이웃집에서 달려와 싸움을 말렸다. 옆집에 사는 여자가 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옆집 여자의 남편이 따라 들어와 그녀의 남편을 달래서 데리고 나갔다. 그녀 혼자 방안에 남았다. 엉망진창으로 잡아뜯긴 머리카락과 늘어진 옷, 몇 대 얻어맞고 붉게 물든 뺨과 그 위로 흐르는 눈물. 그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자 그녀는 더 이상 남편에게 대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조금 자랐다. 이제 더 이상 남편도 그녀를 발로 걷어차지는 않았다. 대신 쌍욕을 퍼부었고 수시로 트집을 잡았다. 보잘것없는 반찬투정을 했으며 거칠게 방문을 닫고 나갔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동안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아버지가 집에 없어도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세월이 흘렀다. 첫째 아들이 서울 소재의 명문 대학에 합격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무슨 특별한 생각을 했다기보다 아들을 위해 무엇을 먼저 해줄까 그것부터 고민했다. 내 자식이, 내 새끼가, 대학에 간다. 내 아들은 남편을 닮지 않았어. 내 아들은 나를 닮았다. 이 아이는 내 자식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을 몇 년 다니다가 군대를 다녀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졸업하기 전에 사법고시에 도전하고 싶다고.


김 할머니는 생각했다. 대학졸업장만 있으면 어딜 가도 평생 밥 먹고 살 것이다. 졸업이 한 해 늦으면 어떻고 빠르면 어떻겠는가. 너 좋을 대로 해라. 너를 믿는다.


그의 아들은 그때부터 고시생이 되었다.


몇 년이 흘렀다. 시험에 연이어 낙방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기 방에 틀어박혔다. 공부를 핑계로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식사도 잘하지 않고 자주 씻지도 않았다.


시작은 가벼운 우울증이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엉뚱한 소리를 하곤 했다. 종이 가득 무엇인가를 적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꼬깃꼬깃 접었다. 무슨 비밀 편지라도 되는 것처럼 작게 접어 집안 여기저기 숨겼다. 그녀가 그것들을 한번 펼쳐 본 적이 있었다. 뒤죽박죽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무슨 민법이 어떻고 상법이 어떻고 – 무슨 부적이라도 만들었나.


언제부터인가 종이를 접지는 않았다. 대신 그것들을 조각조각 잘랐다. 무엇을 가득 적어 놓고, 글자에 맞춰 가늘게 잘랐다. 그리고 역시 집안 곳곳에 숨겨 놓았다.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밥솥을 열어도 종이 조각이 나왔다. 화장실 변기 뒤쪽에서도 나왔다. 집 안에 있는 서랍이란 모든 서랍, 옷장, 싱크대 찬장, 텔레비전 뒤편까지. 어느 날 그가 자신이 오려 놓은 종이 조각들을 입에 구겨 넣으며 말했다. ‘이래야 기억이 오래 간대.’


그는 웃고 있었다. 아들의 웃는 얼굴을 앞에 두고 김 할머니는 그제야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떨리는 손이었다.


그녀의 둘째 아들은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둘째 아들은 형에 비해 체격이 좋고 사교성도 좋았다. 인물이 훤칠하고 제법 잘 생겼었다. 지 애비를 똑 닮았어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와의 연애 시절이 떠올랐다. 이제 더 이상 행복한 기억은 아니었다.


둘째는 군대를 다녀와 공장을 다녔다. 몇 년 돈을 잘 벌었다. 그 돈으로 형의 학비를 대고 용돈으로 썼다. 둘째는 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경기가 좋은 시절이었다. 회사에도 자리가 많았고 장사를 해도 돈을 많이 번다고들 했다. 둘째는 말을 잘했고 친구를 여럿 사귀었다.


그러나 그녀는 둘째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둘째도 은연중에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는 집을 자주 비웠다. 물론 그는 언제나 집으로 돌아왔다. 행패를 부리는 것 대신 어머니를 위해 맛있는 것들을 사 왔다. 김 할머니는 삼겹살을 좋아했다. 둘째는 삼겹살을 자주 사 왔다.


어느 날 약간 문제가 생겼다. 그녀의 둘째 아들은 친구들과 술집에서 어울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옆자리의 다른 일행과 시비가 붙었다. 싸움이 일어났다. 큰 싸움은 아니었다. 둘째는 싸움을 말리다가 누군가에 의해 뒤로 넘어졌다. 머리를 부딪혔다. 그는 한동안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 큰 병원으로 옮겼다. 큰 수술을 받았다. 둘째 아들은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뒤로 그는 약간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또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이번에는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울먹였을 뿐이다.


그 뒤로 김 할머니는 혼자서 생활했다. 이런저런 일들로 돈을 모았고, 자식들의 병원비를 조달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들을 더 했다. 그 돈을 다시 모아 작은 집을 하나 얻었다. 세월과 시간이 그녀를 도왔다. 어쩌면 도움이 아니라 동정이었을 수도 있다. 집값이 올랐다. 그 집을 팔아 다른 집을 샀다. 그 집을 팔아 또 다른 집을 샀고, 마침내 지금의 빌라를 소유하게 되었다.


김 할머니는 부지런했다. 그녀는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났다. 리어카를 끌고 정해진 자신의 길을 걸었다. 하루 종일 걷는 그 길을.


김 할머니는 시장에서 점차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녀는 진짜 할머니 소리를 들을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그녀가 폐지인지 폐지가 그녀인지 구분도 할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 늙고 낡았다. 등은 굽었다. 손은 거칠다. 젊음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이제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이따금 누군가 혀를 차며 물었다. 자식들은 다 어디 갔냐고. 그녀는 대답했다.


‘우리 아들들 다 미국 갔어.’


3.

김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지나간다. 시장 상인들이 가끔 그녀에게 말을 붙인다. 음료수도 주고 과자도 준다. 가끔은 제법 괜찮게 포장된 도시락도 준다.


그녀는 리어카를 적당한 곳에 세운다. 도시락은 반갑다. 나무젓가락을 꺼내어 힘들게 둘로 쪼갠다. 젓가락을 쪼갤 힘도 없으면서 리어카는 어찌 끌겠누. 도시락을 먹고 리어카 손잡이를 다시 붙잡는다. 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들처 업는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뗀다.


음료수는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그래서 김 할머니는 그것을 마시지 않고 따로 챙겨둔다. 과자도 검은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 먹지 않고 모은다.


4.

일주일에 한 번 그녀는 첫째 아들을 만나러 간다.


김 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아들이 지내는 크고 하얀 병원 앞으로 간다. 아들은 입구에 나와서 그녀를 기다린다. 둘은 함께 병원에 딸린 작은 정원으로 간다. 그곳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김 할머니는 아들을 볼 때마다 묻는다. 잘 지내는지,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사실 있어도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긴 했다. 하지만 그 말 말고 다른 말은 생각이 안 난다.


그녀의 첫째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본다.


김 할머니는 자신이 갖고 온 구깃구깃한 종이 가방을 내민다. 그 안에는 검은 비닐봉지 뭉치와 음료수 몇 개가 들어 있다. 아들은 어머니를 쳐다보다 말고 종이 상자를 본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지 말고 뒀다 무라.’


그녀는 돌아서는 아들에게 기어이 그 종이 가방을 손에 쥐어 준다. 아들은 마지못해 그것을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환자복을 입고 돌아서서 터덜터덜 걷는다. 아들의 자리 – 그래, 저 하얗고 큰 건물이 내 아들이 사는 곳이다. 저 하얗고 큰 건물에 내 아들도 하얀 옷을 입고 들어간다. 그러나 내 아들은 그곳에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다.


내 새끼가 어쩌다 저리 되었누. 김 할머니의 시야가 흐려진다. 입술이 떨리고 눈물이 흐르지만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쓴다. 삼킨다. 아들이 저 멀리 병실로 돌아갈 때까지 참는다. 아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그녀도 뒤돌아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간다. 눈물이 흐른다.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사람들이 이따금 쳐다본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붙이지는 않는다.


김 할머니는 그 길로 곧장 다음 장소를 찾는다. 그녀의 소유인 번화가에 자리 잡은 이층 빌라다. 그녀의 소유다. 김 할머니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비싸고 좋은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녀는 집을 청소한다. 그녀 말고는 이 집에 방문하는 사람은 없다. 집은 일주일 전과 마찬가지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청소를 시작한다.


그녀는 한 때 건물 청소를 해서 돈을 좀 벌었다. 깨끗하게 쓸고 걸레로 잘 닦는다. 실력 발휘를 한다. 이 집은 그녀의 진짜 둘째 아들이자 또다른 진짜 둘째 아들이 욕심냈던 곳이다. 둘째가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이 집을 담보 삼아 대출을 좀 받자고 했었다. 그녀는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청소를 마친다. 서랍장에 차곡차곡 쌓아둔 그릇을 모두 꺼낸다. 깨끗이 씻고 정성스럽게 엎어 놓고 말린다. 지난번 씻어둔 그릇은 다시 차곡차곡 서랍장에 도로 집어넣는다. 그녀의 은밀한 취미다. 도자기 그릇은 무겁고 촌스럽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이 무겁고 깨끗하고 지나치게 촌스러운 그릇. 그녀 자신은 이것을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김 할머니는 생각한다. 이 집은 첫째 아들에게 줄 집이다. 첫째가 지금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아마 곧 그녀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 이 집을 물려줄 참이었다. 사법고시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지 않겠는가. 내 아들은 다시 무엇이든 할 것이다. 취직도 좋은 곳에 할 것이고 어디 가서 참한 아가씨도 하나 데려오겠지. 그러면 나는 그들을 데리고 이 집에 방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소개해야지. ‘얘 며늘아기야, 이 집이 너희 신혼집이다.’-라고.


5.

집에 돌아오니 불현듯 둘째 아들 생각이 났다. 둘째는 그의 형과는 다른 시설에서 지내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조금 멀었다. 그 핑계로 그녀는 둘째 아들을 자주 찾아가지 않았다. 물론 꼭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홀로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전화가 왔다.


둘째 아들이 있는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아들이 자해를 했다고 했다.


그녀는 이제 뛸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달려갔다.


아들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손목에는 붕대가 감겨있었다. 팔과 다리를 모두 병원 침대 모퉁이에 묶어 놓았다. 그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김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는데 목구멍에서 무엇인가 걸린 것처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들의 곁에 잠시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6.


때때로 싸움이 일어났다. 서로 자신의 폐지라며 우겨댔다. 삿대질을 하고 멱살을 쥐었다. 심지어 누군가 김 할머니를 떠밀었다. 그녀는 넘어졌다. 버둥거렸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누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소리 지르자 겨우 싸움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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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어야지. 사람은 돈이 있어야 사람 대우를 받아.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의 아들들은 그래도 아직 젊다. 분명 언젠가 좋아질 것이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첫째에게는 빌라를 주고 둘째에게는 사업 밑천을 대 줄 요량이다.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그래도 또 아끼고 모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녀는 희망을 가져 본다.


김 할머니는 잠들기 전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에서 김밥을 팔아 큰 부자가 된 그녀 또래의 여성이 출연했다. 그 할망구는 그 돈을 불우이웃을 돕는데 기부한다고 지껄였다. 정신 나간 년, 네 년은 자식을 안 낳아봐서 모른다- 방송을 보고 김 할머니는 혀를 찼다.


7.


둘째 아들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같은 방 입소자를 폭행했다고 했다. 더는 시설에서 받아 줄 수 없으니 퇴소하라는 연락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은 그때부터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혼자 소리를 지르다가 혼자 울었다. 꼭 제 아비처럼 술상을 엎었다. 김 할머니는 소름이 끼쳤다. 젊은 아들의 손이 자신의 뺨을 때리는 상상을 했다. 이미 오래전 연락이 끊긴 애들 아버지 생각이 났다. 보면 볼수록 닮았어. 김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둘째 아들을 볼 때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을 생각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기도 전에 그는 집을 떠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남편은 언제나 한창 젊은 모습이었다. 둘째는 자라면서 꼭 제 아비를 빼다 박았다. 처음에는 인물이, 나중에는 성격이, 그리고 결국에는 그 주정뱅이 버릇까지.


김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이 엎질러 놓은 술상을 치웠다. 아들은 옆에서 코를 골고 잠들었다. 코 고는 소리마저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았다. 도저히 곁에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김 할머니는 집 밖으로 나왔다. 첫째 아들에게 다녀온 지 아직 일주일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그 ‘값비싼 이층 빌라’를 찾았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빌라 안은 고요하다. 전등을 켰다. 순식간에 방이 새하얀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자신이 살고 있는 누추한 임대 아파트와는 다른 세상. 그러나 그녀의 소유임에 분명한 작은 천국.


김 할머니는 그날 빌라에서 잠을 청했다. 자겠다고 자리에 누워서도 방에 불을 끄지 않았다. 환한 조명이 비추는 청결하고 안락한 공간. 내 아들의 몫이긴 하지만 하루 정도는 빌려도 괜찮겠지. 어차피 아들 내외가 결혼하면 이따금 손주를 봐주러 찾아올 곳이니까.


둘째 아들의 행패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는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동안에는 조용했다. 그러나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소주를 한두 병 사들고 집에 오는 날이면 그때부터 술주정을 부려댔다.


그날도 김 할머니는 조용히 자신의 이층 빌라에 가서 잠을 청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잠든 줄 알았던 아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가냐고 했다. 그녀는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들키면 안 돼. 그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친구집에 간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자신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아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리어카 <하>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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