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편
우리 모자는 남편 공부 때문에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매서운 겨울날씨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남편은 출발 전부터
내가 가족, 친구들과 떨어진 채
혼자 타국에서 아픈 아이를 돌보다가
외로워서 우울증에 걸릴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엄마는 남편의 학교 합격 소식을 축하하시면서도
미국으로 가서 치료가 중단되면 손주의 증상이 악화될까 봐
내게 한국에 머물면서 아이 치료를 마저 하라고 만류하셨다.
아이를 위해 어떤 선택이 최선일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남편, 엄마와 고민하다가
오은영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는데,
아이가 노는 것을 관찰하시고, 우리 부부와 말씀을 나누시더니
우리에게 아이를 데리고 가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남편, 나, 아이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아이가 어릴 때는 오은영 선생님을 뵙기가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다.)
아이의 감각통합치료 선생님께서도
미국으로 아이를 데려가라고,
미국에 사는 선생님의 사촌동생도 아스퍼거인데
한국보다 수용적인 분위기여서
사촌의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고 용기를 내라고 말씀해 주셨다.
두 분의 말씀에 더 고민하지 않고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갔다.
미국에서 우리 아이는 한국에서보다 사랑받고, 존중받았다.
미국이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였고 우리가 머물렀던 주의 분위기가 진보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외국인이었지만 어린 아들 덕분에 미국인들의 호의와 배려를 많이 받았다.
모든 대화를 맥락 없이 자동차로 연결 짓는 불편한 의사소통 방식과 미숙한 사회성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나이가 어려서, 동양인이어서’라는 이유로 오히려 미국인들에게 귀여운 아이로 받아들여졌다.
덕분에 우리 모자는 자유로웠고, 걱정없이 우리를 드러낼 수 있었다.
유치원, 학교에 머무는 매 순간 아이는 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성 수업을 받는 셈이었다.
아이는 생전 처음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나는 그저 감사해서 거의 열흘에 한번 꼴로 학교행사에 자원해서 봉사했다.
동물원 견학 때 아이들 줄을 따라다니고, 스케이트 수업 때 아이들 스케이트를 벗기고,
세계 여러 나라 수업에서 한국음식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등
그때 우리 아이와 친구들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몽글해진다.
봉사를 하면서 나는 우리 아들과 다른 아이들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집에 와서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려고 애썼다.
반면에 한국 엄마들과 함께 있을 때면 우리 아이가 입에 오르내릴까 봐
겁이 나고, 아이의 말과 행동에 신경이 곤두섰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 간 지 3개월도 안 돼서
기숙사의 한 엄마가 우리 아이가 자폐 같다고 소문을 내서
한국 아이들은 한 집을 빼고 아무도 우리 아들과 놀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항상 같은 그림만 그려서
그 엄마는 자기가 한국에서 봤던 자폐아와 똑같다고 소문을 냈다.
우리 아들은 누군가를 때리거나 말로 상처 준 적이 없었지만
보편적인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놀이터에서 한국 아이들과 놀지 못했다.
나는 우리 아들을 기숙사에서 빼서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서점으로 떠돌았다.
갈 곳이 없을 때면 아들과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집 근처 역에 내려서 다른 동네의 놀이터에서 처음 본 외국애들과 놀고,
트레이더 죠에서 팝콘을 사면서 스태프와 스몰토크를 하거나
도서관 가는 길에 있는 피자집에서 조각피자를 사서 공원벤치에 앉아서 나눠 먹었다.
다행히 기숙사에서 우리 아들과 놀았던 한국 형제들이 활발하고, 편견 없는 순수한 아이들이어서
우리 아들은 그 형제들과 놀며 사회성과 의사소통 기술을 크게 향상시켰다.
한국에서는 상담실에서 치료사 선생님과 모의연습하며 익혔던 사회적 기술들이
미국에 와서 미국 친구들, 한국 친구들과 놀면서 살아있는 말과 행동으로 체화되었다.
우리 아이를 위한 세상 사람들의 온정에 깊이 감사했다.
미국에서 아스퍼거 아이를 기르면서 깨달은 점은 다음과 같다.
1. 우리 아이가 특이하게 굴어도 미국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아이를 수용하고 배려하는 분위기였다.
2. 아이는 학교에서 날마다 반 친구들과 두 시간 정도 운동장에서 놀았는데, 이때 아이의 사회성, 의사소통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3. 시립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그림책 읽어주기, 영화상영, 그림/춤/레고 수업 등의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아이들과 의사소통할 기회를 활용할 수 있었다.
4. 미국인들은 밤 8시면 초등학생 아이들을 모두 취침시키기 때문에 우리 아이도 밤 8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5. 길을 걷다가, 버스를 타다가, 서점에 갔다가 우리 모자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낯선 사람들 덕분에 우리도 타인과 웃으며 스몰토크하는 행복을 경험했다.
한국 사회가 아스퍼거 아이들도 일반인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라는 관용적인 분위기로 전환된다면, 이 아이들의 치료결과가 지금보다 극대화될 것이다.
아스퍼거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끼고, 일반 사람들의 사회적인 말과 행동을 모방하며, 장애를 수용하는 일반 사람들의 관용과 배려를 보고 배울 수 있다면, 아스퍼거 치료의 장은 상담실로 국한되지 않고 일상생활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작은 조각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우리 아이를 기르며 타인과 나에게 친절하기, 편 가르지 말기, 따뜻하게 바라보기, 약자 옆에 서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세상엔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믿으며, 그 사람들과 우연히 마주칠 기분좋은 순간을 꿈꾸며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