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퍼거 청소년의 좌충우돌 생존기 - 1

다시 기록을 시작해 볼까

by 앨리의 정원

우리 아들은 4세 말에 아스퍼거 진단을 받았다.

크로스체크를 위해서 오은영 선생님과 이혜련 선생님의 진단을 받았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 두 센터를 전전할 때

센터장의 인간관이 센터 스태프들의 관점과 태도를 형성하고,

치료에 대한 부모의 신념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상황들을 보고 겪었다.

나는 불확실한 짐작과 비난보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센터를 선택했다.


센터에서 같은 처지의 무표정한 엄마들을 볼 때면 슬펐다.

자폐 스펙트럼을 진단받은 아이들의 엄마들은 검은 바둑돌 같은 눈동자를 가졌다.

어떤 생기도 없는 차갑고 딱딱한 검은 눈동자.

그 모습에서 내가 보여서 외면하고 싶기도 했고, 위로하고 싶기도 했다.


그 엄마들과 아이에 대한 걱정을 나눌 때면

나는 답답한 마음에 상담공부를 해서 내 아이를 이해해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때는 그 소망의 이유가

우리 아이의 치료를 거들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센터에서 엄마들과 대화하다 보면 어김없이 들리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이런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 알아요?”

그렇지만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못해서 침묵만 이어졌다.


현재의 좌절과 공포를 견디고 싶어서

아이를 데리고 하루 살기도 벅찼던 엄마들은

아스퍼거지만 일반아이처럼 자라고 있는 단 한 케이스를 알고 싶어 했다.

더 큰 욕심도 없었다. 단 한 케이스만.

한 아이의 사례만 알아도 지금의 절망을 이겨낼 것 같았다.

나 또한 그 엄마들 중 하나였다.


내 아이는 이제 청소년이 되었고,

다행히 일반사회에 좌충우돌하며 섞여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가 일반사회에 섞여 들어가는 10여년의 시간 동안

마음이 무너지고 사람들을 증오하며 인류애가 사라지는 사건들을 겪었다.

긴 시간을 숨 가쁘게 지나고 상담심리 공부를 하게 되면서

아이와 겪었던 일들을 글로 기록하고 싶어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내 모습을 자각하고 직면해야

아이와 힘들었던 순간들을 담담한 마음으로 기술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으며 의미 있게 다가왔던 구절들을 기록하며,

다시 아이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이 되길 기다렸다.


올해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휴가를 갖게 돼서

다시 브런치에 우리 모자가 통과하고 있는 시간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나와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면서 나를 성장시키고,

검은 바둑돌 같은 눈동자의 누군가를 격려할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내 글들도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