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생을 재구성하는 글쓰기
001. 베스트셀러 도서 중 가장 읽지 않을 것 같은 책.
베스트셀러라는 건 뭘까?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책을 구매하고 있을까? 첫 100권을 읽고자 결심했을 때에는 일단 유명한 책을 읽어보자는 막연한 결심이 있었다. 친구와 서점을 걸을 때에 책 선반에 전시된 책들의 태반 이상을 읽었다면 멋져 보이지 않을까 싶던 거다. 하지만 백 권을 전부 다 읽고 나니까 취향이 아닌 책들을 읽는 데에 시간을 쓰는 것은 조금 아깝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고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한 권쯤은 남들 다 읽는 책을 읽어 보는 것도 좋잖아.
2년 전에는 한국에서 대형 서점이나 책에 관련된 플랫폼을 돌면서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훑어보았었다. 그중에서도 구하기 쉬운 책으로 선택지를 좁혔다. 책을 위해 도서관을 간다는 생각이 좀 과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2년 후, 미국으로 사는 곳을 옮기고 이곳의 삶과 문화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면서 무려 "아마존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살펴보게 되었다.
2023년의 베스트셀러 중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풍기던 이 책, 『일론 머스크』는 제목 그대로 일론 머스크라는 인물의 생애를 다룬 전기다. 대신 이를 서술하는 화자가 일론 머스크 본인이 아닐 뿐이다. 월터 아이작슨은 이미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집필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유통한 바가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의 이름 자체가 유명세를 아주 크게 타진 못한 것 같다. 그는 일론 머스크의 생애를 재구성해서 텍스트로 옮기기 위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고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그래서 책 안에는 작가가 목격한 순간과 타인의 입을 통한 기억,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발언들이 공존하고 있다.
근데 이렇게나 길다니.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해서 시작하는 순간에는 알 수 없었지만, 전자책으로도 7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물론 한 사람의 생애를 다루는 데에 완벽히 충분한 분량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말이다. 근데 일론 머스크가 누구더라?
내가 아는 그의 모습은 다양한 스캔들에 연루되어 미디어를 달구던 모습. 트위터를 인수한 후에 X로 사명을 바꾸고 파산 위기에 처해 다양한 풍자 이미지 속의 주인공이 된 모습들 따위다. 물론 테슬라나 스페이스 X 같은 기업들의 성취들과 함께 등장하는 성공한 기업가의 모습도 있지만 그를 둘러싼 논란과 평가들은 딱히 긍정적이진 않았다. 나도 그런 대중의 평가에 휩쓸려 그를 모르는 채로 선입견을 쌓아 올린 것 같고.
그를 완벽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어느 삶도 완벽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배경과 업적들을 보다 그의 관점에서 바라보다 보니까 나의 가치 판단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가치 판단은 월터 아이작슨이라는 작가의 필터링을 한 번 거친 판단이겠다만. 7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건, 그는 비범하고 야망 있으며 천재적이라는 거다. 화성에 간다는 사명은 터무니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가 보고자 하는 것은 머나먼 미래. 보다 거시적 관점의 내일이다.
그는 가지고 있던 자원의 총량에 굴복하지 않았고, 무모하게 가진 자들을 두드려 기회를 쟁취했다. 리스크를 즐기면서도 리스크에 뒤따라올 결과에 대해 틀렸을지언정 확신은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들에 한해서는 그게 진짜였으니까 말이다. 이런 대담함이 모든 것에 정당함을 부여해 주진 않는다고 저자는 콕 짚어 말한다. 홀드먼 가족의 가훈이었던 "위험하게 살되 조심하자."에서 그는 '조심'을 지워버린 셈이다.
일론은 바보를 견디지 못했으며, 인간에 대한 불신을 품고 살아갔다. 어떻게 보면 기만과 오만이 넘치는 인간이지만, 이런 태도들이 그가 6개나 되는 회사들을 모두 각 업계에서 군림하게 만든 기반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일론이 되고 싶은가? 아니. 성공한 사람들의 운과 재능, 노력에 대한 회의감은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념하는 태도를 통해서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면서 성과를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도 무서우리만큼 각박한 몰입은 이만큼의 결과를 쌓아 올렸다. 거기에 도덕이나 인간적 면모 같은 것은 별개의 일이다. 또 정치 성향 같은 것들도. 그의 부족한 인적 네트워크 유지 능력은 그가 가진 막대한 자본과 결정 권한에 가려져 있지만 또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분석되고 해부되는 인물도 드물다. 기업가 사이의 카다시안이 있다면 일론머스크일 거다.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삶의 태도를 배웠다기 보단, 나는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의 삶을 이렇게 잘 정렬하고 재구성한 월터 아이작슨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이야기를 잘 열고, 잘 닫아 매듭지었다. 일론 머스크는 이 책과 다른 추후의 행보를 보일 수도 있겠다만 이렇게 물리적 실체로, 닫힌 텍스트로 완결된 이 책 하나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음을. 일론 머스크는 이 책의 원고를 검토한 적도, 통제권을 행사한 적도 없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재단될지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을까? 그는 모든 과정에 협조적이었다고도 했다. 자신의 생애에 은은하게 퍼져 있을 부끄러움은 포용한 걸까 그 부분을 철저히 무시한 거였을까? 아니면 애초에 부끄러움이 없었던 걸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유능한 작가에게 재구성당한 일론 머스크가 부럽기도 했다.
새해 첫 책을 아주 잘 고르는 바람에 2주나 걸려 읽은 이 책.
독서 노트가 너덜너덜해져서 긴급 수술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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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의 의미]는 책을 100권을 읽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 책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알아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2021~2023년에 걸쳐 100권을 읽은 후 같은 리스트로 두 번째 100권을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