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흐림이 디폴트 값인 도시

런던(London)은 잿빛이 어울려

by 데이지

'왜 하필 영국이야?' 주변사람들의 공통된 질문이었다. 보통 첫 유럽 배낭여행은 여러 나라를 경유하는 게 국룰인데 그 룰을 깨버렸으니 궁금증을 자아낼 만도 하다. 사실 이 질문에 나는 명쾌하게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왜냐면 정말 특별한 이유가 없었고 그냥 어쩌다 보니 영국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유를 찾아내 누군가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내 안의 작은아이가 죽기 전 올드트래포드(Old Trafford: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구장)는 한 번 가봐야겠다고 외쳤다랄까.


런던아이(London Eye: 런던 템스강에 위치한 대관람차)는 두 달 전 미리 예약을 했었다. 연초 처음 런던에 왔을 때는 운휴 기간에 걸려 못 탔던 터라 이번엔 기필코 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영국을 두 번이나 방문했는데 런던아이를 한 번도 못 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2월 31일은 New Year's Eve Fireworks 행사 여파로 오후 4시까지만 운행을 해서 이 날짜에 탑승하려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대문자 P인 나도 여행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파워 J가 된다. 런던 답지 않은 맑은 날이 계속 이어져 오다가 관람차를 타기 2시간 전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사진 좀 찍으려고 하면 늘 일어나는 일이라 날씨 문제로 크게 괘념치 않는다.


예약시간에 맞춰 탑승구로 달려가 런던을 내 발 밑에 두고 내려보았다. 스모그 같은 뿌연 잿빛 하늘 속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관람차 유리에 빗방울이 맺혀 툭툭 떨어졌다. 누군가는 질색할 이 날씨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내다봤다. 지금까지의 맑은 런던은 가면이었고 진짜 런던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잿빛이 잘 어울리는 도시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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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erside Building, County Hall, London SE1 7PB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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