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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쿡 없는 쿡 아일랜드

조만간 <아바이키 누이>로 이름을 바꿀지도 모른다

'몰라서 모르는' 곳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특히 남태평양은 세계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남태평양에는 약 2만 5천 개의 섬이 있고, 독립주권을 가진 섬나라인 '태평양 도서국'이 14개나 있다. 작은 섬나라지만, 어엿한 독립국가로, 국제사회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과 동등하게 '1표'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지도 위에 작은 점으로도 찍혀있지 않은 나라가 태반인 남태평양에 안 그래도 첨예한 현안이 산적한 미국, 중국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가 세력다툼을 벌이는 이유다.

이들은 제 각각 태평양에서의 영향력을 늘이기 위해 원조를 퍼붓고 전략을 세우고 외교관계를 강화하는 중이다. 지난 1일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 뉴질랜드 총리는 공항조차 없는 토켈라우(Tokelau) 섬을 방문해 전통의상을 입고 원주민들과 함께 춤을 추었고, ‘뉴질랜드가 토켈라우의 독립을 도울 것’을 천명했다.


“뉴질랜드는 토켈라우의 독립을 위해 정치제도를 바로 세우도록 도울 것” 이라 연설했다.

https://youtu.be/wMK14jffCPQ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우고 태평양을 넘보려는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 중국은 미국이 나서기 전에 이미 ‘일대일로’ 사업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차관을 풀어 태평양의 거의 모든 나라들을 쓸어 담았다. 이미 태평양 섬나라에 위치한 대부분의 공항, 도로, 항만, 병원, 학교 등 기반시설은 ‘메이드 인 차이나’를 단지 오래다.


미국이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

https://youtu.be/pbiPUdBn1uk


물론 이런 어려운 국제정치로 둘러대지 않아도 태평양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천국과 가까운 이상향’ 쯤으로 각인되어있다. 우리나라에는 허니문으로, 평생 한 번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이런 수식어가 달리는 곳들이라 더욱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도대체 “태평양이 뭐길래?” 혹시 남태평양에 관심이 생겨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피지, 사모아, 쿡, 바누아투 그리고 솔로몬제도를 추천한다. 그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가진 쿡 아일랜드를 소개한다.


쿡 선장이 다녀간 흔적이 없다


현재 뉴질랜드는 사모아, 쿡 제도, 뉴에 그리고 영국이 영유권을 이양한 남극 대륙 일대의 로스(Ross) 속령을 자유연합으로 관리하고 있다. 쿡 제도는 타히티와 아메리칸 사모아 사이에 아주 작은 15개의 작은 섬들로 이뤄진 나라로 면적(240㎢)은 통영시(236.5㎢) 정도 크기다.

사진= 폴리네시아와 쿡 아일랜드 지도


이미 이름에서 느낌이 왔을 법 한데, 쿡 제도의 이름은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지난 5월 쿡 아일랜드에 다녀왔다. 뉴질랜드에 출장을 간 김에 휴가를 내어 다녀온 터라 겨우 2일 동안 최선을 다해 천국의 맛을 봐야 했다.


공항에 내려 차를 기다리며 가장 먼저 캡틴 쿡의 흔적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났다. GDP의 70%가 관광산업인 나라니 시내에 가면 작게라도 제임스 쿡 박물관, 쿡 선장이 다녀간 곳들을 엮은 관광코스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쿡 선장을 닮은 간판 하나 볼 수가 없다. 그는 정말 쿡에 왔다 가긴 한 걸까? 그러고 보니, 이름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 여겼지만, 백과사전에도 쿡 선장이 이곳을 발견하고 작명을 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언제 어디를 방문했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


“제임스 쿡의 흔적을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길 때마다 물었다. 한 사람에게 짐작조차 못한 답을 들었다.

“그는 여기 내린 적이 없어요. 라로통가에서 북쪽으로 500km 떨어진 파머스톤(Palmerston) 섬에 잠깐 내리긴 했지만 말 그대로 잠깐 내렸기에 상륙했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1774년 6월 16일에 제임스 쿡이 현재 파머스톤이라 불리는 섬을 발견했다곤 하지만 파머스톤이란 이름도 그가 지은 건 아녜요. 쿡 아일랜드란 이름도 제임스 쿡이 아니라 1789년 이곳을 찾은 러시아의 크루센 스턴(Johana Krusensterm) 제독이 지었어요. 제임스 쿡이 죽고 나서 10년 뒤 일이죠.”


아쉬웠다. 그 답을 들은 후로는 의욕도 생기지 않았지만, 정말 쿡 선장의 사진 하나, 기념품 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나 같은 여행자를 위해 일부러라도 포토존 하나쯤은 만들었을 법 한데, 쿡 사람들 참 돈 벌 줄 모른다.


쿡 아일랜드와 달리 통아, 사모아, 피지에선 제임스 쿡이 유명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상륙했고 그에 관한 유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쿡 아일랜드에 본격적으로 상륙했건 아니건 영국 요크셔 촌구석에서 태어난 그가 태평양 전역을 항해했다는 건 그 자체로 경이롭다. 250여 년 전 그는 세 차례에 걸친 10년간의 항해를 통해 천문학과 식물학, 기상, 인종을 조사했다. 그의 항해에는 천문학자, 박물학자, 식물학자가 동행했다. 그는 배를 타고 영국을 떠나 남미 최남단 케이프 혼(Cabo de Hornos)을 지나 출항 8개월 만에 타히티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10년 동안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1772년에는 남극권에 들어갔고 1776년에는 북태평양을 지나 베링 해를 지나 북극해에 도달했다. 그가 흔히 남극권과 베링 해를 포함하는 세계지도의 윤곽을 최초로 그린 사람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쿡은 훌륭한 선원이자 지도 제작자, 기록자였다. 의도가 식민지 수탈이건, 여정의 기록이건 그는 탐험의 온갖 여정을 꼼꼼히 기록하고 지도로 그려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세계지도의 근간이다. 그가 그린 지도는 100년이 넘는 동안 실제로 사용됐다.

사진=제임스 쿡


‘핵인싸’ 캡틴 쿡


우리에게는 소년들이 읽는 동화책에나 자주 등장하는 탐험가 정도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쿡 선장은 지금의 기술로도 해내기 어려운 일들을 무려 18세기에 모두 이뤄낸 대단한 항해사다.


18세기 중엽, 지구의 적도 이남은 미지의 세계였다. 당시는 유럽 여러 나라가 신대륙 발견과 정복욕에 사로잡혀 대항해를 이어가던 때다. 10년간의 항해 기간 동안 자신이 발견한 신세계를 지도로 그린 이가 바로 제임스 쿡(1728~1779)이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하와이뿐만 아니라 남태평양의 수많은 섬을, 그들 표현대로라면 ‘발견’했다. 현대 지도에도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는 이 광활한 태평양 섬들의 지도를 직접 그린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가 속한 ‘뉴사우스 웨일스’라는 이름을 지은 이도 쿡이다. 뉴질랜드 남섬과 북섬 사이 해협 이름은 ‘쿡 해협(Cook Strait)’, 오클랜드의 어느 고등학교 이름은 ‘제임스 쿡 하이스쿨’이다. 알래스카 앵커리지 아래 어느 만의 이름도 쿡 만(Cook Inlet)이다. 그가 서구세계에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는 예들이다.


그를 이런 여정으로 이끈 건 진정 무엇이었을까? 그가 탔던 배의 이름을 떠올려본다. 1차 탐험 때는 엔데버(endeavor, 노력)호, 2차 탐험 때는 레졸루션(resolution, 결심)호와 어드벤처(adventure, 모험)호, 그리고 3차 탐험 때는 레졸루션호와 디스커버리(discovery, 발견)호였다. 항해에 임하는 그의 태도가 어땠는지 짐작케 하는 이름들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의 유인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와 같은 이름 아닌가. 우연이 아니다. 실제 미국은 1990년 쿡의 항해를 기려 우주탐사선에 ‘엔데버’ 뿐만 아니라 ‘디스커버리’라는 이름을 붙였고, 1992년 디스커버리호가 발견한 화성의 운석 구덩이를 '쿡 크레이터’(Cook Crater)라고 명명했다.


이름은 거창해도 ‘레졸루션호’의 길이는 34미터에 불과했다. 거대한 태평양의 드센 파도를 헤치고 속 편히 갈 수 있는 배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노력하고, 결심하고, 모험하고, 탐험하라. 이를 두려워 말고, 늘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말라...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쿡 선장을 기리며…


그의 기록은 안타깝게도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1779년 그는 겨우 쉰한 살의 나이에 하와이 원주민의 공격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하와이 마우이 섬에 가면 그의 동상이 기념비가 남아있다고. 기념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위대한 세계일주 여행자, 캡틴 제임스 쿡. 1778년 1월 18일 이 섬을 발견하고 1179년 2월 14일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세상을 떠난 그를 기리며.'


기념비는 1874년 세워졌다. 비문 그대로 위대한 세계일주 여행자를 기리고 있지만 쿡의 원정대가 하와이에 상륙한 후 1800년까지 원주민의 48%가 사망했다. 남태평양을 여행하다 보면 서구와 다른 세계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



‘배알 없는’ 쿡 사람들?


쿡 제도는 엄연한 독립국가다. 하지만 뉴질랜드 여권을 사용하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 모신다. 쿡과 뉴에는 아직도 ‘자발적으로’ 뉴질랜드의 보호를 받고 있다. 말이 ‘자유연합’이지 완전한 자립을 이뤄낸 사모아와 비교해 보면 식민 시대와 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들 입장에서 보면 혜택은 많은데 잃을 건 별로 없으니 식민시대와는 또 다르다. 국제 연합(UN)은 쿡과 뉴에를 공식적으로는 독립주권을 가진 나라로 인정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들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갖는다.

인권, 자립을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 건지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쿡, 뉴에는 뉴질랜드와 오손도손 잘 지내고 있다. 뉴질랜드가 이들을 정치적으로 간섭하거나 통제할 권한은 없지만, 경제, 군사 측면에서 보호하고 돕는다. 외교관계도 자유롭게 맺을 수 있다. 쿡 제도는 이미 중국을 포함해 52개, 뉴에는 20개의 나라와 수교를 맺었다(2016년 기준).


자존심이 상할 수 도 있지만,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물었더니, “쿡이란 섬나라를 아무도 모를 것 같아서" 편의상 뉴질랜드 여권을 쓴다는 허무한 답을 들었다. 우리의 눈에는 배알 없이 지나 차게 실리를 따른 선택으로 보이지만, 사실 “Why Not (나쁠 것 없지 않나)?” 쿡과 뉴에 사람들은 태어나면 자동으로 뉴질랜드의 시민권도 얻게 된다. 쿡 사람들은 제 집처럼 뉴질랜드와 영국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반면 뉴질랜드 사람들은 쿡 제도에 3개월 이상 머물지 못하게 규제를 했다. 쿡에 놀러 갔다가 눌러 살려는 뉴질랜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쿡의 인구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교육, 일자리, 결혼 등을 핑계로 섬을 벗어나 살고 있는 재외 동포가 더 많아졌다. 쿡 제도에 살고 있는 인구는 2019년 기준 1만 7000명 정도인데, 뉴질랜드와 호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1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작년에 쿡에 다녀간 한국인은 고작 28명이라고 한다.



마오리(Maori)가 뭐길래


쿡 제도가 영국 식민지의 잔재를 떨어 버리기 위해 국호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이런 움직임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에 국호를 바꿀지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부결되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브라운 부총리가 나서서 입김을 모으고 있다. 강한 기독교 정신과 마오리의 전통이 담긴 이름으로 지을 예정이며, 국민들의 선호를 반영한 60개의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유력한 이름은 아바이키 누이(Avaiki Nui)로, 아바이키는 폴리네시안들이 공통적으로 믿는 조상들의 영혼이 모여있는 정신의 고향이다. 실체가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폴리네시아인들의 최초 정착지를 일컫는다고 한다. 누이는 위대하고, 웅장하다는 뜻의 마오리어다. 쿡의 공용어는 영어와 마오리 어인데, 쉽게 ‘배알 없는’ 나라로 취급하기에는 쿡 제도를 아우르는 모든 문화요소에 마오리 전통은 정령처럼 박혀있다. 쿡 아일랜더들이 일상에서 영어라는 그릇에 담아 쓰는 거의 모든 일상어는 마오리어를 모르면 짐작조차 불가능하다.


쿡의 비현실적인 풍광, 낙천적인 사람들, 의외로 편리한 교통수단과 예쁘고 캐주얼한 카페, 상점, 시장 등 훌륭한 관광지로서 이미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성격상 마냥 즐기지 못하고 진지한 고민에 빠진다. “마오리가 대체 뭐길래”


여행의 아이러니다. 여행을 떠나면 모르는 것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사정없이 깨닫는다. 폭포 줄기가 등짝을 내리치는 것처럼 아프기도 하지만 시원하기도 하다. 이래서 우리나라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새로운 곳을 찾아 들어가는 여행에 중독된 모양이다.


쿡을 이루는 15개의 섬 중에 어디부터 가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블로그에 쿡에서 찍은 사진과 글을 몇 개 올렸더니 조각 같은 미모의 여성 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라로통가를 가지 않고 아이투타키 만 가고 싶은데 어느 항공을 타야 하나요?” 나 역시 아프리카나 유럽에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엉뚱한 질문을 자주 하게 되지만, “라로통가를 가지 않고 아이투타키에 가다니요?” 전세기라도 띄우지 않고서야…


폴리네시아 인형의 집으로 놀러 오세요


‘라로통가(Rarotonga)’는 감자모양의 섬이다. 한가운데에는 큰 산이 있어 삼림이 울창하다. 동서 길이는 10km, 폭은 6km 정도다. 섬 둘레 길이는 30km를 겨우 넘긴다. 인구는 1만 5천 명. 쿡에는 타히티도 있고 뉴질랜드도 있고 사모아도 있고 하와이도 있다. 이 모든 폴리네시아 섬들의 캐주얼한 축소판이랄까. 멀리서 보면 아담하기가 이를 데 없다. 거실 부엌 옷장 있을 건 다 있는데 모양만 작은 인형의 집에 놀러 온 듯하다.


라로통가에는 맥도널드도 없고, 신호등도 없고, 코코넛 나무보다 큰 건물도 없다. 고개를 돌리면 패션 푸르츠 나무, 코코넛 나무가 보인다. 하지만 원시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괴상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무리 여행이 생활이고 생활이 여행인 사람이라도 난생처음 도악 한 여행지에 완전히 동화되어 현지인들의 삶에 적응해 만족을 얻기에 우리는 너무 나약한 존재다. 원시 자연 속에서도 ‘모던하고 깨끗한 4성급 이상 호텔’을 찾는 미개인들이다.


쿡은 그런 점에서 ‘남태평양 입 문지’로 추천할만하다. 꽃과 풀로 뒤덮인 식물원 같은 사모아 한가운데 뉴질랜드 시골 마을을 들여놓은 듯하다. 풍경은 원시림인데 딱히 부족하다 느낄만한 건 없다. 예쁜 브런치 카페, 메뉴도 다양한 레스토랑, 주말에는 큰 장도 서고, 나이트클럽도 있다. ‘이게 무슨 남태평양이란 말인가’ 원주민이 나무 위에 기어올라 코코넛을 따다가 그 자리에서 불을 때고 음식을 해줄 걸로 생각했다면 실망감이 클 수도 있다.



작다 작아


라로통가는 산호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을 가진 비치에 둘러싸인 섬이다. 섬 주위는 전부 산호인데 특히 남쪽은 산호바다의 길이가 1km에 달한다. 섬을 둘러싼 산호 암초 너머는 깊은 대양이다. 다이빙이나 낚시를 하기에는 좋다지만 왠지 무섭다. 고리 모양의 산호초인 환초(環礁) 안쪽은 얕은 바다이지만 바깥쪽은 깊은 바다와 닿아있다. 난데없이 나타날 바닷속 절벽이다. 마치 침입자를 막아 섬을 보호하려는 듯하다. 영화 <모아나>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저 환초 밖을 나가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라 경고하는 추장의 말이 쿡에 와 보니 와 닿는다.


라로통가 섬은 하나고 무척 작다. 얼마나 작으냐면 스쿠터로 섬 한 바퀴를 도는데 1시간이면 족하다. 길이 단순하고 골목골목  눈길을 끄는 마을 풍경, 산도 있으니 스쿠터를 타는 게 아무래도 쿡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쿠터를 빌리려면 면허시험을 봐야 한다. 그리 어렵진 않아 보인다. 경찰서 앞에 100미터 정도 장애물을 놓아 만든 시험장에서 지그재그로 갔다가 돌아오면 끝이다. 스쿠터를 타려면 꼭 면허를 취득해야 하지만, 정착 도로에서 헬멧을 쓴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맞아, 쿡에서 헬멧이라니, 좀 어울리진 않는다.


사진=쿡에서는 헬멧대신 화관을 쓴다.


전 시계방향 버스를 탔어요!


라로통가에는 해안을 따라 두 개의 도로가 나 있다. 해안도로인 ‘아라 타푸(Ara Tapu)’와 내부 도로인 ‘아라 메 투아(Ara Metua)’다. 버스 노선이 재밌다. “나 시계방향 탔어.” “난 시계 반대방향 탔어.” 여기선 버스를 타고 친구에게 전화라도 하면 이런 식이 되겠다. 라로통가에선 몇 번 버스를 타는 게 아니라 ‘시계방향’ 버스 또는 ‘시계 반대방향’ 버스를 탄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버스 앞에 ‘시계방향(clockwise)’, ‘시계 반대방향(anticlockwise)’이라 쓰여 있다. 동화책에나 나올 것 같은 버스지만 한 시간에 꼬박꼬박 두 대가 다닌다.


‘쿡의 삼성’ 퍼시픽 리조트


라로통가에서는 퍼시픽 리조트에 묵었다. 관광산업이 산업의 뼈대인 쿡 제도에서 퍼시픽 리조트는 ‘삼성’과도 같은 존재다. 리조트 시설과 서비스의 품질유지가 잘 되어있어, 이름은 생소해도 <퍼시픽 리조트 호텔 그룹>에 속한 리조트라면 크게 실망할 일은 없다. 그렇다고 판에 박힌 ‘쉐라톤’ 스러운 분위기가 아니라 스몰럭셔리(SLM)의 브랜드를 달고 있는 리조트가 대부분이라 개별 호텔들의 개성은 유지하되 매니지먼트의 수준을 국제규격으로 함께 높였다고 보면 된다. 쿡을 처음 찾는다면 당연히 숙소 선택이 고민일 텐데, 리조트 품질과 서비스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첫 몇 박을 예약하고 다른 곳으로 옮길지 계속 이 계열이 머물지 결정해도 좋을 것 같다.


사진= 쿡 라로통가의 퍼시픽 리조트 사진


쿡의 페르소나(Persona) 아이투타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이투타키(Aitutaki)는 쿡에 오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에어 라로통가가 독점하는 구간으로 비행시간은 약 40분, 항공료는 편도에 10~15만 원 선이다. 국내선 치고 비싸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쿡까지 왔는데 아이투타키에 가지 않는 건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물론 라로통가도 아담하고 예쁘지만, 아이투타키가 없었다면 이 정도로 쿡이 유명해졌을 리 없다. "쿡은 아이투타키로 완성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투타키 섬이 가진 극강의 바다 빛과 분위기는 한 미모 한다고 하는 세계 여느 유명 섬들과도 견주기 어려운 매력을 지녔다.

사진=아이투타키 풍경


아이투타키는 삼각형 모양의 산호섬으로 안정적인 구도다. 그래서 쿡 제도에서만 쓸 수 있는 쿡 화폐의 동전이 삼각형 인지도 모르겠다. 허니문 아일랜드, 원풋 아일랜드 등 아이투타키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과시하듯 경쟁하는 섬 들이 즐비하다. 해변을 거닐면서도 맨눈으로 1m가 넘는 큰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스노클링 기어만 끼고 바로 바다로 뛰어들면 산호 군으로 둘러싸인 언더워터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진=쿡에서만 통용되는 화폐인 삼각형 동전


실제 바다의 모습만큼이나 마 아이투타키의 위성사진은 실로 비현실적이다. 기다란 아이투타키 섬을 삼각형 모양으로 산호초가 둘러싸고 있다. 아이투타키 바다에서 사진을 제 아무리 찍어도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이투타키는 여러 면에서 비현실적인 섬이다. 보트를 타고 아이투타키 인근의 섬을 둘러보다 인적 드문 섬에 잠시 내리기라도 하면 이내 무인도에 상륙한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모래사장에서 몇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바닷속에 커다란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친다. 내가 바로 옆으로 다가가도 녀석은 관심조차 없다. 배를 타고 가다 바닷속을 헤엄치는 거북이도 보았다. 내가 탄 배는 고속보트였다. 그런데 거북이는 고속보트보다 빠르게 쏜살 같이 날아 사라졌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파충류, 거북이는 바닷속을 날아다닌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다.  


사진=아이투타키의 비현실적인 바다
사진=여권에 발바닥 모양의 스탬프를 찍었다


여권 훼손? 그래도 찍을 거야!


식사를 하거나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원 풋 아일랜드’에 갈 때엔 여권을 꼭 챙겨가야 한다. 여권에 찍어주는 귀여운 발자국 스탬프가 아이투타키를 버킷리스트에 넣게 만든 이유기도 하니 말이다. 이 섬에 위치한 작은 우체국에서만 찍을 수 있다. 여권에 이렇게 함부로 도장을 찍으면 안 되지만, 쿡 사람들이 늘 그래 온 것처럼 실리와 명분 중에 주저 없이 실리를 택하기로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고작 2일. 쿡을 이렇게 국내여행보다 못한 일정으로 가게 될 줄 몰랐다. 여권을 잃어버렸다고 할까, 아프다고 할까, 한국에 잡힌 일정을 포기할까, 아예 직장을 관둘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투타키에서 라로통가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유난히 작았다. 경비행기를 많이 타봤지만, 승객이 다 탔다고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출발하는 건 처음이다. 이 아쉬움 넘치는 내 마음도 모르고 야속하게 조종사는 자동차로 치면 엑셀이라도 밟는 것 같았다. 언제 또 쿡에 오게 될까? 다시 오더라도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그땐 누구와 함께 일까? 그 명성 자자한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그 청량한 바다를 내 눈으로 보고 카메라에 담고 아쉬워 영상도 찍고 페트병에 물도 담고 모레도, 조개도 주워 넣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 바쁜 일정에 한 여름의 꿈을 꾼 듯, 신기루를 아련하기만 할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쿡에서 보낸 이틀만큼이나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산적이 있나 싶다. 그게 쿡 아일랜드 던 서울 강남 빌딩 숲 한 복판이건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모든 날은 단 하루뿐인데, 그동안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걸 멍하니 두고만 봤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매일, 매 순간 아이투타키에 있는 착각 속에 빠져 살기로.


여행정보

항공

에어 뉴질랜드,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젯 스타 그리고 에어 타이티가 쿡 아일랜드에 취항한다. 에어 뉴질랜드와 버진 오스트레일리아는 일주일에 각 6회, 5회씩 오클랜드-라로통가 구간을 운행한다.


화폐

쿡 아일랜드 달러와 함께 뉴질랜드 달러를 쓴다. 일대일로 환전된다. 마오리족의 캐릭터(메갈로돈 수인족)인 탕가로아가 새겨진 1달러 동전, 쿡 아일랜드의 전통 카누인 바카(Vaka)가 새겨진 5달러 동전, 삼각형 모양의 2달러 동전은 꼭 챙겨 와야 할 기념품이다.

전기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쓰는 세 핀 짜리 플러그를 쓴다. 호텔에도 한국에서 쓰는 두 핀 플러그 어댑터가 없는 경우가 많이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아일랜드 나이트(Island Night)

매주 화요일 저녁, 드럼 연주와 댄싱으로 구성되는 공연이다. 관능적인 쿡 아일랜드 춤을 볼 수 있다. 식사를 하며 즐길 수도 있고, 미리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한 후 입장료만 지불할 수도 있다.  


시내 교통

버스는 한 시간에 딱 두 대가 다닌다. 하나는 시계방향으로 다른 하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운행한다. 도로는 좌측통행이다.


국기

오른편의 열다섯 개 하얀 별은 열다섯 개의 섬을 의미한다. 국기의 푸른색은 파란색이다. 새파랗다. 파란색은 쿡 아일랜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색이다. 열다섯 개 섬이 흩뿌려진 광대한 남태평양을 표현하는 색, 또는 원주민들의 평화로운 품성을 말해주는 색이자 키아 오라나 스피릿의 컬러다.


글= 박재아 (Daisy Park) / 박준 (Park Jun)

사진= 쿡 제도 관광청(www.cookislands.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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