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여행을 마치며

21살 45개국 세계여행가 데이지 여행 일기장 : 동남아시아

by 여행가 데이지


세계일주 9일 차, 지난 9일 동안 일본과 대만을 정신없이 여행하고 싱가포르 항구에 도착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가까운 인도네시아인 인도네시아의 섬, 바탐으로 향하기 위해서다. 바탐으로 향하는 페리 위에 오르니 탁 트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청록색과 푸른빛이 어우러진 바다 위에 따스한 햇살이 내려왔다. 시원한 바다 냄새 위로 바람이 세차게 볼을 스쳤다. 햇살 사이로 진 그늘아래, 앞으로 시작될 동남아시아 여행에 가슴이 미치도록 뛰었다.



<데이지 세계일주 동남아시아 일정>

동남아시아 여행(57일)

인도네시아(19일), 싱가포르(3일), 말레이시아(9일), 태국(9일), 라오스(4일), 베트남(10일), 캄보디아(3일)


동남아시아 이동 경로 (travellerspoint)



3월 6일 - 3월 25일 인도네시아: 바탐, 자카르타, 족자카르타, 말랑, 바뉴왕이, 발리

3월 25일 - 3월 28일 싱가포르: 싱가포르, 센토사

3월 28일 - 4월 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말라카

4월 7일 - 4월 16일 태국: 핫야이, 푸껫, 방콕

4월 16일 - 4월 20일 라오스: 비엔티안, 방비엥, 루앙프라방

4월 20일.- 4월 30일 베트남: 사파, 하노이, 호찌민시

4월 30일 - 5월 3일 캄보디아 : 프놈펜, 씨엠립







흰색 거품을 내뿜는 유람선을 타고 시작한 동남아시아 여행, 나는 57일간 동남아시아 7개국을 여행했다. 동아시아 대륙과 전혀 다른 문화와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종교가 지배하는 국가 분위기를 느끼고, 대부분이 중위소득국인 개발도상국을 경험하며 그동안 살아온 한국이라는 틀 밖에서 세계를 보는 기회였다. 지난 57일간의 동남아시아 여행을 정리하고, 새로운 공간인 남아시아로 이동했다. 저 멀리 비행기 창가 너머로 가파른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다. 비행기 날개의 부분이 접히면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 전, 지난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느낀 점을 기록하기 위해 메모장을 꺼냈다.




1. 무력감과 회의감


동남아시아는 대부분의 국가가 빈곤율이 높다. 싱가포르, 브루나이와 같이 고소득 국가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며 저소득인 국가가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빈과 부의 격차를 빈번히 목격할 수 있었다.


"머니.. 머니... (돈 주세요)"


가난은 국경 상관없이 존재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 가난에 대해 충격받은 이유는 가난이 어린아이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그걸 길거리 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며 길거리에서 어린아이가 구걸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영어 하나 제대로 배운 적 없을 꼬마 아이는 구걸을 위해 '머니'를 하루 종일 말하며 길거리 위에 있었다. 한국은 서울역, 쪽방촌 등 '가난'이 일부 가린다면 가려지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는 여행 내내 열악하게 사는 이들의 삶이 드러났다. 나는 무방비로 노출된 가난을 마주하며 무력감과 회의감에 휩싸였다.


작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작은 손길로 절대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지만, 구조적으로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난한 이들이 파는 휴지 조각을 사더라도 이들은 원래 삶으로 돌아가 같은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이로부터 무력감이 나왔다. 말레이시아 말라카 여행을 하며 저녁에 한 식당 밖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스웨덴 친구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자정을 향해가는 늦은 밤이었음에도 낡은 옷을 입은 노인이 다가와 휴지 조각을 팔았다. 그에게 웃으며 100원짜리 동전을 건넸다. 아래는 그 상황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이다.


"너는 왜 안 샀어?"

"나는 휴지가 필요 없으니까. 또, 나는 그에게 연민을 갖고 있지 않아. 만약 내가 이걸 사거나,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기부를 한다면, 그들은 오직 구걸하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이야.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돈 버는 게 잘못된다는 걸 알아야 해."

"아이들의 경우는 동의해. 그렇지만, 그는 은퇴자야.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팔려고 했던 거잖아.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행운을 가진 사람이야. 우리는 특권자라고."

"그렇게 생각해?

"완전히. 너는 당연히 너보다 잘난 사람들만 생각하면 안 돼. 우린 이렇게 여행한다는 사실부터 당연히 특권을 가졌고, 언제나 기꺼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

"그렇지만, 우리가 기부한다면, 이런 방식은 좋지 않아. 내가 고작 이 휴지 조각을 산다고 해서 그를 도왔다는 사실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지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그는 가난하고, 나는 그를 도와야 하니까 마땅히 휴지를 사야겠네.라는 생각이 나는 싫어. 나는 내가 행운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 이것보다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나도 동의해. 그렇지만, 이건 더 의무인 거야. 가치 있는 거라는 거지.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어쩌면 여행하기보다 모든 돈을 기부할 수 있어. 복잡한 문제야. 더 큰 구조로 생각하면 이기적인 거지."

"그래. 그렇지만 비교를 통해, 아래를 비교하면서 나의 처지에 안도하고, 기뻐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스웨덴 친구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는 본인 국가에서 태어나 '행운'이라 표현했다. 내 처지에 감사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저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야. 나는 정말 행운이라 생각하는 게 맞을까? 빈곤한 사람들을 보며 자신을 행운아라고 규정하고 안도하는 것이 맞을까?' 의문은 여행하는 내내 이어졌고, 거리 위에서 구걸하는 어린아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회의감으로 변해 무겁게 가라앉았다.


동남아시아 여행 초반은 무력감에서 사로잡혀 괴로웠다. 그러나, 가난에 노출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의 괴로움이 나만의 생각인 걸 깨달았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서 만난 툭툭기사와 만남이 있었다. 툭툭기사는 방한칸 크기도 안 되는 툭툭를 집으로 살아갔다. 아래는 캄보디아에서 만난 툭툭기사와의 대화이다.

"집을 살 수 있다고 말했는데, 굳이 툭툭에서 지내는 이유가 뭐야?"

"홀로 지내본 적이 있었는데, 적적하기만 하더라고. 가족도 꾸리지 않은 상황에서, 저 건물을 사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사랑하는 나의 툭툭에서 자는 게 더 낫지 음하하". 나는 내 일이 좋고, 지금 이 삶에 만족해. 음하하"

호탕하게 묻는 툭툭기사는 누구보다 행복한 웃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툭툭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툭툭기사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에서 만난 삶들은 가난 속에 있어도 본인 삶에서 본인만의 행복이 있었다. 나는 여행이 두 달이 넘어갈 시기부터 조금씩 깨달았다. 내가 느껴온 회의감은 다른 이의 삶을 내 기준으로 규정해 왔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삶이 가난으로 불운하다고 여기는 건 내 인생의 잣대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었다. 내가 그들 삶을 평가할 자격은 없었고, 회의감에 괴로워할 자격이 없었다. 어떤 삶도 남에 의해 평가될 수 없다. 그 속에서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했다. 바꾸지 못하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미소 짓기, 좋은 사람이 되기, 도움이 필요하면 되는 선에서 도와주기, 따뜻한 말 건네기.



*툭툭(tuk tuk):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인력을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릭샤라고도 불리며, 소형택시의 기능을 한다.



2. 종교의 힘


동남아시아는 이슬람, 기독교, 불교 등 여러 종교가 공존한다. 같은 국가여도 다른 종교 분포도 존재한다. 한국과 차이점이 있다면,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종교가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 같은 인도네시아이지만 힌두문화가 지배적인 발리, 헌법상의 국교가 불교인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는 국가 정체성에 종교는 깊이 뿌리내렸다. 그로 인해 문화 유적지 역시 종교 유적이 많다. 태국의 신성한 불교 사원인 왓 프라깨우, 세계최대의 종교 사원인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세계 최대 불교 사원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등이 있다. 무언가를 '믿는다는 행위'는 실로 엄청난 힘을 갖고 있었고, 종교가 삶과 같던 과거 흔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일 예배 안 보고 축구 차러 갔다가 벌받았나봐요. “


동남아시아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행위의 결과를 종교와 결부 지어 이야기하곤 했다. 동남아시아는 한국에 비해 무종교비율도 낮으며 종교 실천 빈도는 매우 높았다. 한국에서도 종교를 삶의 전부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지만, 개인의 취향이나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는 것이 주류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서 많은 이들은 삶에 종교가 침투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종교로 점철되었다. 종교가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그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면 나를 감시하는 무언가가, 나에게 벌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고 상정했다. 이들은 매일 하루 5번씩 알라에게 절을 올리거나, 승려에게 점심마다 공양에 가거나, 저녁마다 사원을 찾았다.


동시에 그로 인해 종교의 모순적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태국 푸껫에서 만난 무슬림 모로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과 이슬람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금식의 달인, 라마단을 함께 보냈다. 이들은 진실한 무슬림으로 알라에 대한 사랑과 본인 삶을 이슬람에 바칠 듯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이들은 밤 문화의 성지인 태국 방글라로드의 나이트클럽 VIP 매니저와 바텐더로 일하고 있었다. 이슬람에서 굳건히 금지하는 알코올음료에서 그들은 찡긋 윙크를 지었다.




3. 지구는 정말 아름답다.


세계일주의 첫 여정인 동아시아는 한국과 비슷한 문화와 자연환경이며, 일주일간 간략하게 본 맛보기였다면, 동남아시아는 한국과 다른 기후와 자연환경을 갖고 있었다. 나아가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머무르면서 자세하고 다양하게 동남아시아의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는 초반이기도 했기에 여행에서 보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처음 느끼는 순간이었던 점도 의미가 컸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발리는 힌두교 새해(녀피)를 기념하며 1년에 한 번 침묵의 날을 갖는다. 하루 종일 금욕과 정적을 하며 영적 정화를 실천하는 날이다. 발리 사람들은 매년 3월 중순 새해 날이 되면 24시간 동안 외출도 하지 않으며 저녁에는 불도 키지 않는다. 그날, 나 역시 하루 종일 호스텔에 머물다 저녁에 공기를 쐬러 호스텔 앞으로 나갔다. 그 순간 나는 지구가 가진 아름다움에 두려움을 느꼈다.


Screenshot_20230323_225300_Instagram.jpg 출처 : @folkative

별을 보러 잠깐 밖으로 나왔는데, 경이로움에 무서움을 느낀다. 내가 보아온 별 중에 가장 최고로 많은 별들이다. 지구 천장을 바라보며 뇌세포를 보는 것 같다. 하늘 위에 수놓아진 수많은 하늘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광활한 우주의 극도로 작은 일부분만 본 것뿐인데, 뇌세포 사이사이를 횡단하는 수많은 별과 별똥별을 보면서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오랜 시간을 우주만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내게 본 것은 하늘이 아니라 우주였다. 우주를 본 내 가슴이 세차게 쿵쾅거린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녀피행사 다음날 밤하늘을 바라보며>



동남아시아는 바다, 섬, 화산, 정글, 산지 등 다양한 지형과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따뜻한 기온과 풍부한 강수량으로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며 수천 개 이상의 섬들도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본 두려울 정도로 하늘을 가득 채운 별 외에도 에메랄드 빛의 바다를 품은 태 푸껫, 동화 속에 온 듯한 라오스 폭포, 짙게 깔린 안개 위에 수놓아진 베트남 사파의 계단식 논,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운 석양, 경이로울 정도로 웅장한 산맥 등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며 지구에 숨겨진 자연을 볼 수 있었다. 때로 무서움을 느낄 정도였지만, 그 무서움도 껴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지구의 모습을 알아가며 더 강렬히 지구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4. 인류애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며 자연에 감탄했다면, 동남아시아 사람들로 인해 매일 감동을 받았다. 빠르게 산업화가 이루어진 한국은 개인의 성취와 경쟁이 발달되어 개인주의 문화가 지배적이지만, 동남아시아 대체적으로 환대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라고 느꼈다. 종교가 일상에 스며든 문화도 종교적 관용과 삶의 의미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 베푸는 이에게 이유를 물으면 행동에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카르마'를 말했다. 아래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만난 친구의 말이다.

“다른 사람이 행복한 걸 볼 때 나는 행복해. 더욱이 내가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지.

신이 내게 행복을 주었기에, 나도 다른 이에게 행복을 나눠주어야 해.”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며 모르는 사람에게도, 낯선 사이에서도 느껴오는 이유 없는 따뜻함에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다. 물론 따뜻하지 못한 사람도, 불편한 상황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였다. 모르는 길을 물어보면 함께 걸어가 주는 친절은 물론 가난 속에서도 나눔의 손길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들은 삶에서 스치는 존재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고, 가난해도 풍요로웠다. 길 위에서 나는 서로에게 집중하고 미소 지었다.

왜 나에게 베푸는 거지? 어째서 바라지 않는 거지?

나는 처음에 이유 없이 따뜻함을 베푸는 이들을 보며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주고받기는 오로지 이익에 기반한다는 생각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믿음, 감정, 미소,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 좋은 감정을 나누었다는 사실은 이익보다 우선시 되는 나눔이었다.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만난 이들은 내게 세상에 따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려줬다. 미소는 강력한 언어라는 것을 알려줬다.



IMG-20230417-WA0004.jpg 라오스 메콩강 앞 레스토랑에서


지난 동남아시아에 57일간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세계일주를 시작하며 가볍게 맛보기 한 느낌으로 적절한 시간들이었다. 나는 메모장을 덮은 채, 비행기 창 밖을 바라봤다. 문득 세계일주를 준비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가슴 설레며 꿈꾸던 중학교 시절부터, 세계일주를 시작한 지 67일 차가 되는 지금까지. 동남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일주를 포함해 67일간 지구를 누비며 느낀 점들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메모장을 펼쳤다.



1. 세상은 넓은데 좁다.


동아시아 2개국, 동남아시아 7개국의 이곳저곳을 67일간 누볐지만, 여전히 봐야 할 곳과 못 가본 곳이 많았다. 이미 갔던 도시에서도 못 가본 장소와 공간이 가득했다. 실제 그 공간에 가면, 체크리스트에 체크하고 끝나지 않았다. 공간에서 알게 된 새로운 정보와 인연들로 또 가볼 곳이 몇 배로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지구가 품은 다양한 모습 속에서 세상이 넓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나, 세계는 좁다는 걸 느꼈다. 새로운 공간에서 만난 인연들은 기존 내 인연들과 연결되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6단계 분리 이론처럼, 전 세계 모든 사람은 6명만 거치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절실히 실감했다. 세상은 넓지만, 세계는 좁았다. 그래서 나는 주위를 더욱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2.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순간을 배웠다


67일간 세계일주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들은 내가 어떤 학력이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만난 이들은 대학, 출신, 나이 등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레 나를 소개할 때 대학과 학과는 필수가 되었고 나를 규정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여행하며 만난 이들은 한국에서 나를 소개하던 정보에 관심이 있지 않았다. 여행하며 만난 이들에게 어떤 국가에서 왔는지, 어떤 배경을 가지는지, 과거에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내가 얼마를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저 순간의 서로를 맞이하고 지금 우리가 가진 생각을 주고받았다. 지금의 나로서 존재하는 순간을 깨달았다.


3. 현재를 사는 법을 배웠다


세계일주 준비를 비롯해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매번 바쁘게 지내왔다. 여행 전까지도 인턴과 과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갰다. 매일 그렇게 살아왔기에 어느새 내 삶의 태도가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여행 초반에는 매일 할 일을 떠올리며 여행을 했다. 새로운 공간에 도착해 봐야 할 것, 먹어야 할 것 등으로 나 자신을 바쁘게 만들었다. 진정 내 안에 여유가 스미지 못했고, 여유를 맞이하는 법도 몰랐다. 그러나, 장기여행에서 여유는 필수적인 체력이었다. 여행하며 받는 행복은 일부 여유에서 비롯되었다.

정신없이 동아시아의 9일을 보낸 뒤, 인도네시아 바탐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지난 한국에서의 순간과 빠듯하게 여행한 동아시아가 스쳐갔다. 동시에 어린 시절 늦잠을 자며 일어난 일요일 아침이 떠올랐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일상을 놓쳐오고 있었구나.' 나는 여행을 하며 내가 놓쳐온 일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1년간 여행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은, 내게 시간을 오래 보는 시각을 주었고, 지난 67일간 여행하며 여유를 스미게 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순간의 감정을 떠올리기, 지나가는 바람에 행복해하기,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바라보기, 햇살을 보고 미소 짓기. 여행을 하며 여유를 찾아갔고, 그 속에서 순간을 사랑하며 현재를 살았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고, 다음 계획도 짜야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고, 귀찮으면 안 하는 내 모습이 태반이지만, 나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지난 67일간의 여정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지난 동/동남아시아 여행은 행복으로 인해 눈물이 가득한 날들이었다. 부족한 나 자신에, 친절한 사람들에, 아름다운 자연에, 뜻대로 안 풀리는 사실에, 너무 뜻대로 풀리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그 속에서 기록에 게으른 나 자신을, 행운만 바라는 나 자신을, 가끔 미소를 보내지 않은 나 자신을 반성했다. 동시에 순간의 행복을 사랑한 나 자신을, 순간의 바람을 음미할 줄 아는 나 자신을, 슬플 때 함께 슬퍼할 줄 아는 나 자신을, 호기심 갖고 관심을 보이는 나 자신을, 다스한 햇살과 노래한 나 자신을 포옹했다.

메모장을 덮고 창 밖에 우뚝 솟은 히말라야를 보니 다시 한번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동남아시아의 추억을 가슴에 담은 채, 남아시아에서의 여정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히말라야와 인사하며 속삭였다.


Flow the wind, Sail into the windy.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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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신예진(데이지)은 스스로 돈 벌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었습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서도 관련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