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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Apr 30. 2017

이번 대선에서 보수세력이 해야 할 일

파스칼의 《팡세》

갈피를 못 잡는 보수세력에게 잘 드는 약 같은 책. 『팡세』


또 다시 인공호흡기로 생명 연장하려는 보수정치


선거 때만 되면 '단일화' 비난을 하던 보수정당에서 단일화 이벤트가 한창입니다. 얼마 전까지 국정원장을 지내던 남재주 후보(통일한국당)가 사퇴하면서 자유한국당 홍준표를 지지했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매일 사퇴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는 진보 정치인이었던 안철수 후보가 보수 후보로 탈바꿈하면서 3자 단일화 얘기도 나옵니다. 물론 정치에서 생존이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보수세력이 패착에 빠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세계정치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흐릿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부족한 부분을 상대방에게 가장 잘 배워서 효과적으로 쇄신한 정치 세력은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집권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은 오히려 고질병으로 구분되기 쉽습니다. 보수세력은 '기회주의'라는 고질병을, 진보세력은 '위선'이라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수의 모리배 근성은 뿌리가 깊습니다. 이번에 보수세력이 궤멸되지 않는 방법은 '아름다운 패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보수의 가치를 쇄신하여 재기의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보수세력은 '희망 고문'을 내려놓지 못할 것입니다. 어설픈 표 계산과 단일화 이벤트는 60년 보수 정치를 완전히 공중분해해버릴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보수가 궤멸되면 한국정치의 건강성이 그만큼 위협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보수정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보수세력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는 불만을 조직하는 일이다”라는 오래된 정치 금언에 대답할 의무가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수취인이 없어서 적폐처럼 쌓여 있는 사회적 불만들이 두렵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보아도 알다시피, 뜸을 들여주지 않으면 안 좋은 방식으로 폭발할 테니까요.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의 자신감, 특히 이성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횃불처럼 타오르던 시대에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블레즈 파스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정반대의 철학을 전개했던 스피노자(1632~1677)보다 9년 앞선 1623년에 태어나 1662년에 세상을 떠난 천재 철학자이자 과학자죠. 저는 보수정치의 스승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파스칼과스피노자 모두 데카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근대적 지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스피노자는 근대에 발전한 수학(기하학)을 윤리학에 응용했지만, 파스칼은 미적분의 발견과 계산기의 발명 등 근대수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의아하지 않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성서가 없다면, 우리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나님의 본성과 자신의 본성 속에서 어둠과 혼란만을 보게 될 뿐이다. 
- 파스칼, <팡세>


은총의 대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에 신앙과 인간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결정론, 예정설, 원죄론, 종교적 운명론이 근대적 사고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반감이 치솟던 시절. 아니나 다를까 유명한 신학논쟁, 즉 프로벵시알(Provincial) 싸움이 격화됐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이성 능력보다는 무능력을 강조하고 신앙의 편에 손을 들어주며 싸움에 끼어들었고, 당시의 사고를 반영했던 예수회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겼습니다. 당시 종교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파스칼은 보수의 대표주자였다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수를 한다면 파스칼처럼


얼핏 보면 파스칼은 시대의 반동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근대수학의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신앙으로 귀의했다고 하면 의아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우리들이 읽었던 여러 과학자들의 책들을 보면 ‘신(神)’에 대한 암시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대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프란시스 베이컨은 “최고의 지성은 완전무결하고 위대한 신에게 귀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죠. 파스칼의 의견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 까닭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맹목과 비참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전 우주가 침묵하고 있고, 인간은 누가 자기를 거기에 놓아두었는지, 무엇을 하기 위해서 거기에 오게 되었는지,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이 모든 것들을 알지 못한 채 우주의 한 구석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지혜도 없이 자기 자신에게 내맡겨져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치 잠을 자다가 인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섬에 실려 와서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공포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도 비참한 상태를 보고서도 전혀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인지 놀라움을 느낀다.


파스칼은 대표적인 모럴리스트(moralist)였습니다. 모럴리스트란 16세기부터 18세기에 프랑스에서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법을 탐구하여 이것을 수필이나 단편적인 글로 표현한 문필가를 이르는 말로 몽테뉴, 파스칼, 라로슈푸코, 라브뤼예르 등이 이에 속하죠. 위 글은 <팡세>의 머리말로 보아도 좋을 만큼 파스칼이 호교론(護敎論)을 쓰려고 했던 동기가 담겨 있습니다.


인간은 비참하며, 스스로 비참함을 알고 있기에 위대하다는 말. 비참함과 위대함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말. 비참함을 비난하거나 이를 피하기 위해서 시간을 죽이는 오락거리나 일삼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한숨. 파스칼이 한국사회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파스칼은 수학의 천재답게 수를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머리 위에, 그리고 발 아래, 눈에 보이는 세계는 무수한 수(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도 그 수를 닮아가고 있죠. 그것은 무한(無限)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유한(有限)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세계를 자신의 유한한 사고로 재단하려고 합니다. 한쪽은 세계가 홀수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짝수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옳다고 격하게 싸웁니다. 파스칼의 눈으로 보면 오류일 뿐이죠.


진실은 상식 너머에 있습니다. 상식에 있지도 않고 다수에 있지도 않습니다. 근대인이 인간의 이성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만, 파스칼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도박일 뿐입니다. 비참함과 비열한 감정, 공포는 자연적인 감정들이며 이성을 쉽사리 제압해버리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당대인들이 놓친 것을 짚어내고 있었기에 ‘위대한 이의제기’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세를 이룰 만큼 기세가 비등한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를 외롭게 지키고, 스스로 토양이 되어 미래의 중요한 씨앗을 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게 파스칼의 주장입니다. 상식과 대세에 휩쓸리는 사람들의 오류를 짚은 논어와 파스칼의 구절을 보겠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3년 동안 학문을 계속하면서도, 봉급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 논어, 태백 편

인간의 본성은 두 가지 방식으로 발견된다. 하나는 그의 목적에 의해서. 그 경우에는 인간은 위대하고 비길 데 없는 존재이다. 다른 하나는 다수에 의해서.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말의 경주를 보거나 다수에 의해서 말이나 개의 본성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과 같다. 그 경우에는 인간은 비열하고 비천하다. - <팡세> 


지식인, 교양인, 독서인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사람들이 흘린 것을 줍는 사람입니다. 인간과 세계, 사회와 정치, 자연에 대해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시류에 영합하기보다는 외롭게 견뎌내며 쓰러져가는 기둥뿌리를 부여잡고 있어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음과 양이며 새의 양 날개입니다. 한쪽은 다른 한쪽과 경쟁하지만 의존 관계이기도 합니다. 음양조화가 일어나는 까닭은 음과 양이라는 명확한 위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정확한 자리를 갖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대선이 이렇게 빨라진 것도 보수의 정명(正名)과 정위(正位)가 없기 때문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은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선택한 정치세력이 전혀 뜻밖의 일을 벌여서 아웃되는 바람에 제대로 심판도 못하게 된 국민만 하겠습니까? 이번 대선에서 정산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보수는 오랜 방황에 빠질 것입니다. 보수세력에게는 이번 대선이 골든타임과 같습니다. 제발 유승민을 넘어뜨리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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