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오언을 기억하며
로버트 오언은 1771년에 태어나 1858년에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성인이 된 시점은 미증유의 산업혁명의 물결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무슨 일이 벌어진지 알지 못했다. 사회 변화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산업은 물론 나라 전체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는데도 말이다. 한참 후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일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오언은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에서 인간이 비참하게 기계의 노예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인간들이 발육이 정지되고 팔다리가 잘리고 도덕성이 사라진 인간을 무엇으로 불러야 할 것인가. 영혼 없는 좀비가 아닌가. 오언 스스로도 과잉 노동의 시간에 진저리를 쳤던 경험이 있다.
아침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내내 앉지도 못하고 일을 하면서 진이 다 빠졌는지라 나는 계단의 난간을 붙잡고 거의 기다시피 침실로 올라가곤 했다. 그래봐야 기껏 잘 수 있난 시간은 5시간 정도였다.
ㅡ 로버트 오언 회상록
오언은 당대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눈치챘다. 우리가 오언을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기계제 산업 시스템에 대응하는 사람 중심의 시스템을 만들려고 평생을 헌신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계의 주인임을 잃지 않으려면 그에 걸맞는 자격을 만들어야 한다. 오언은 사람이 기계의 주인이 되는 길을 간 선구자다. 과잉노동에 시달리고 부도덕한 기업의 갑질에 치이는 한국 사회의 노동자들에게 이보다 가슴 설레는 사이다가 또 있을까?
그는 사람들이 훌륭하게 일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에게 훌륭한 물질적 도덕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 《로버트 오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오언의 유소년 교육 철학이 인상적이었다. 7세부터 학교 조교로 일하며 학비를 번 범상한 소년 오언은 유소년 시기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유소년 시절이야말로 한 사람의 일생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간이다. 뿐만 아니라 인격 형성이 환경에 따라 빚어진다고 할 때 유소년 시기야말로 사회 인격의 첫단추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지 않은가.
정치적 행동보다는 도덕 개혁으로 다양한 계급에게 설득력이 있다는 점도 오언 철학의 특색이다. 오언의 사상은 중산층 이상의 지도층을 위해서 제안되었지만, 오히려 젊은 노동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사회주의, 노동조합, 협동조합의 아버지가 된 사연도 흥미롭다. 노동절에 음미할 만한 《로버트 오언》.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