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년 전부터 조사가 퇴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는 조사의 영향력이 강했다. 조사는 명사와 동사 사이에서 파티션 역할을 한다. 만약 범'이'가 아니라 범'을'이라면 애시당초 범은 내려오지도 못했다. 이문재 시인은 조사는 세계관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지만, 내가 볼 때 조사에게 좋았던 시절은 다 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내려온다'가 '범'과 밀착되면서 '이/은/도'라는 조사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집에 간다'라는 말도 이제는 '집 간다'로 바뀌었다. 조사가 퇴장한다는 말은 동사와 명사가 직거래를 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동사가 명사가 직거래를 하기 시작하면 명사의 동사화 현상과 동사의 명사화 현상이 화두가 된다. 조사의 퇴장만큼이나 명사와 동사의 face off도 재밌는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