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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Mar 02. 2023

소설 속에 소설이 들어갈 공간이 있는 소설

1일1카프카. 2. [갑작스러운 산책]


카프카 장편(손바닥소설) <갑작스러운 산책>도 카프카 소설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단편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왜 한 마리의 갑충으로 변신했는지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산책>에서도 왜 화자가 갑작스럽게 산책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소설을 쓰게 만든다. 머릿속으로 이미 어떤 일 때문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가는지 소설을 쓰게 된다.




처음에는 기관원에게 붙들려서 원치 않는 산책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관원의 호출이라면 외출복 차림으로 나갈 일도 없을 것이다. 분명히 내가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나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뒤의 내용과 연결이 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갑작스러운 산책>에서는 카프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 빼고는 모조리 설명을 생략하는 본질적인 글쓰기 방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외출을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다. 어떤 느낌일 것이 분명하다.


저녁때 집에 머물러 있기로 최종적으로 결심한 것처럼 느껴져, 집에서 입는 옷을 입고, 저녁 식사 후에는 책상에 불을 켜고 앉아서 이런 일이나 저런 놀이를 ㅡ 이것이 끝난 후에는 습관적으로 자러 간다 ㅡ 시작한다면, 밖은 음울한 날씨여서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면, 이제는 꽤 오랫동안 책상에 머물러 있어서 외출한다는 것이 당연히 놀라움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면, 층계도 이미 어두워졌고 대문도 잠겨 있다면, 그리고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불쾌감 속에서 벌떡 일어나 상의를 갈아입고 곧장 외출복 외출해야만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는 짧은 작별 후에 외출하면서 거실문을 닫는 속도에 따라 다소간의 불쾌감을 뒤에 남겨놓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후략)
『카프카 단편전집』, 「갑작스러운 산책」


나는 문장 단위로 인용하는 습관이 있지만, 이렇게 끝나지 않는 카프카의 이른바 만연체 문장 앞에서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글쓰기를 배울 때는 만연체를 줄여야 하는 것으로 배웠지만, 이 글에서는 만연체가 아니면 그 섬세한 감정을 설명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카프카가 만연체를 선택한 것이 탁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운문 문장의 신인 백석 시인의 '것이다'를 사용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중략)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중략)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시인,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이것이 대가의 성취인지는 모르겠지만 금기를 가볍게 깨버리고, 문법을 뒤엉켜 버림으로써 고정된 관념이 형성되지 않게 해주는 문장들이다. 어쨌든 <갑작스러운 산책>의 화자는 평화를 깨고 외출복을 입고 산책하기로 결정하고 가족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안심시키며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의 힘을 확인하며 힘차게 나아간다. 그리고 하나의 문장이 끝난다. 이어지는 두 줄의 문장은 아마도 앞 문단에 대한 대구인 것 같은데, 짧은 만큼 강렬하다.


만약 이 늦은 밤시간에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기 위해서 그를 방문한다면, 이 모든 것은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카프카 단편전집』, 「갑작스러운 산책」

뒷문장은 나도 경험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은사님께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동문수학하는 선배가 연락해서 은사님의 조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은사님은 꽤 알려진 식자였기 때문에 조문을 하는 내내 아우라가 느껴졌다. 늦은 밤시간에 오로지 친구의 안부를 묻기 위한 방문이라면 방문자는 특별한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때는 아마도 가족뿐 아니라 이웃들에게까지 힘이 전달되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변신 - 단편전집 개정판 -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저자프란츠 카프카출판솔출판사발매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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